‘선교적 이중직’ 인식 확장, 목회 보폭 넓혀가자

목회자 필요로 하는 다양한 사역 찾아야…새로운 개척 모델 개발 위한 이중직 재해석 시급


지난 기획 2편에서 만났던 정영한 목사(가명·마천동 OO교회)는 생활고와 자녀교육 때문에 결국 밤일을 시작했다. 밤 10시부터 새벽 4시30분까지 택배를 쉴 틈 없이 분류하는 작업이었다.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피곤한 날은 일을 끝내고 새벽예배를 드린 후, 저녁 6시까지 잤다. 도저히 목회를 할 수 없어 1년 만에 그만뒀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김성환 목사(가명·신월동 OO교회)도 50세 초반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이중직을 시작했다. 그러나 금방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사장이나 주방 선배들 보다 나이가 많은데 누가 나를 쓰려고 하겠나. 주일날 쉬는 직장은 더 구하기 힘들었다. 50군데 넘게 이력서를 넣고 겨우 지금 식당에 일자리를 구했다.”
 
▲ 부천시 역곡동 ‘뜰 안의 작은 나무’ 도서관은 지역에 꼭 필요한 사역으로 복음을 전파하면서, 또 다른 목회의 모습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목회와 다른 일을 겸직하고 있는 이중직 목회자들은 정영한 김성환 목사가 처한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중직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다른 목회자나 성도들의 눈을 피해 밤일을 하거나, 목회와 동떨어진 직업을 구하고 있다. 목회사회학연구소 조성돈 교수는 “각 교단이 ‘목회 이중직 금지’ 규정을 풀고, 이중직을 새롭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목회 이중직을 금지하는 교단의 뒤쳐진 인식과 달리, 목회 현장은 이중직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중직을 새로운 시각에서 보는 목회자들은 ‘목회 겸직이 성경적·신학적으로 충분히 근거가 있다’고 설명한다.

오산 하늘땅교회 이재학 목사는 중형교회 담임 자리를 뿌리치고 오산에 내려왔다.

“돈 있고, 사람 있고, 건물이 있어야 교회가 된다고 말하는 시대다. 이것이 올바른 교회론인가? 하나님의 백성이 있는 그곳, 사람들이 일주일 동안 5~6일 머무는 그 일터로 목회자가 가면 왜 안 되는가?” 이재학 목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2011년 3월 계란공장에 취직했다. 그 일터에서 오산 주민들을 만났고, 그들에게 필요한 사역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고 했다.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서 사역하는 나유진 목사는 도서관 사역을 하고 있다. 나 목사는 목회 외에 도서관 ‘뜰 안의 작은 나무’의 관장을 겸직하고 있다. 나 목사에게 도서관 사역은 ‘주민들을 더 가까이 만나기 위한’ 사역이었다. 이재학 목사는 지역 주민을 만나기 위해 밖으로 나갔지만, 나 목사는 주민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초대한 것이다.

“개척할 때부터 지역의 필요를 채우는 교회로 만들고 싶었다. 찾아본 결과 이 지역에 꼭 필요한 것이 도서관이었다.” 나유진 목사는 도서관에서 부모를 위한 교육특강, 아이들을 위한 구연동화와 점토만들기, 인디밴드 공연 등 다양한 사역을 펼치고 있다. 주민들은 적극 환영하며 도서관을 찾아오고 있다.

나유진 목사는 도서관 관장으로, 학교 학부모회 부회장으로,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로 섬기고 있다. “전통적 목회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일들이 목회 시간을 제약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주민들과 만나는 사역 자체가 목회라고 생각했고, 이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믿고 있다.”

이재학 목사와 나유진 목사는 냉정하게 말하면 ‘목회 이중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목회관과 삶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런 생각은 최근 목회현장에서 부각되고 있는 ‘미셔널 처치’, 곧 선교적 교회론과 너무도 닮아 있다.

현대 사회는 이미 이중직을 금지하며 전통적인 목회 형태만 집착할 수 없게 됐다. 교회론과 목회론을 새롭게 인식하고, “그 일을 어떻게 복음전파의 통로가 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각 교단 총회는 새로운 교회개척 모델을 개발하고, 목회자들은 겸직에 대한 인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정재영 교수(실천신대)는 이중직의 형태를 생계형, 자비량형, 선교형으로 구분한다. 생활고 때문에 이중직을 하는 ‘생계형 이중직’에서 벗어나, 이재학 목사와 나유진 목사처럼 겸직을 통해 하나님 나라 확장을 이루어가는 ‘선교적 이중직’을 추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자비량 이중직이 목회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겸직을 하는 것이라면, 선교적 이중직은 직업 활동 자체를 목회로 여기는 것이다. 이제는 이중직을 비즈니스 선교와 같은 맥락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교단과 목회자들은 기존 목회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이중직을 새로운 교회 개척의 모델로 바라봐야 한다.”

이미 많은 목회자들이 이중직을 불법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복음의 길로 이끌기 위한 사역으로 여기고 있다. 자신의 일을 복음전파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목회자들이 늘어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이제 목회현장의 변화를 인식하고 이중직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교단 차원에서 재고를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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