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욱 목사(서울 한성교회)

온 민족이 예배하게 선교해야 합니다
살아있는 예배로 영육이 깨끗하고 성령에 순종하는 교회돼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행 13:2)
 

 

사도행전 13장은 사도행전의 새로운 전환점입니다.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대를 거쳐 땅 끝까지 뻗어가면서 복음의 센터가 새롭게 등장하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안디옥 교회입니다. 선교적 관점에서 보면 예루살렘 교회 중심의 사역이 안디옥 교회 중심으로 옮겨갑니다. 안디옥 교회는 우리가 꿈꾸는 교회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교회가 벤치마킹해야 할 모델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안디옥 교회를 사용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본격적인 이방선교에 나서지 못하는 내부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할례나 율법준수 등을 고집하는 유대성향이 교회 내부에 강하게 남아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주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는 선교의 바통은 수리아 안디옥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AD 70년 로마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 자취를 감춥니다. 그때부터 이방 선교를 수행한 안디옥 교회가 초대교회의 중심축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교회가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의 사명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내부적 문제에만 관심과 역량을 집중시키려 할 때 교회는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교회의 본질적 사명은 주님의 선교적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것에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 교회가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어떤 교회였습니까? 이방인 가운데 세워진 최초의 교회였습니다(행 11:20~21). 성도들이 이곳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았습니다(행 11:26). 예루살렘과 유대에 사는 교회 형제들이 흉년을 만났을 때, 기꺼이 도움을 주었던 교회입니다. 무엇보다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한 순종하는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모습 속에서 오늘 교회의 꼭 필요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방인의 전초기지로 삼으신 안디옥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1. 성령이 말씀하시는 교회

먼저 1절은 안디옥 교회의 핵심 멤버들을 소개합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행 13:1)

안디옥 교회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출신 성분도, 인종적인 배경도 달랐습니다. 권면의 은사로 소문난 바나바, 피부색이 검은 시므온, 아프리카 사람 루기오, 왕족인 헤롯왕의 젖동생인 마나엔, 학문과 신앙이 뛰어난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모두가 하나 되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교회였습니다. 예수의 오심은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인종적, 문화적 장벽을 깨트리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또한 안디옥 교회를 교회되게 만든 것은 ‘예배’였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행 13:2) 여기 “주를 섬긴다”는 말은 예배를 드린다는 겁니다. 새번역 성경에서는 “주를 예배하며 금식하고 있을 때에”라고 했습니다. NIV 성경에는 ‘Worshipping’이란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예배를 잘 드리는 교회였습니다. 예배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냥 예배드린 것이 아니라 금식하며 예배를 준비했습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예배에 목숨 걸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더 좋은 예배, 하나님이 만나주시는 예배에 대한 초대교회 성도들의 몸부림이었습니다.

이렇게 안디옥 교회가 금식하면서 집중하여 예배드릴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행 13:2) 즉 성령이 “하나님의 꿈 선교를 위하여 일꾼들을 세우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그렇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사람이 말하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교회였습니다. 준비된 예배에는 이런 은혜가 주어집니다. 그래서 역대하 16장 9절을 보면,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예배가 살아나기 시작하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늘 듣던 말씀이 내게 새롭게 확신으로 다가옵니다. 살아있는 예배를 통해 모든 것이 새로워지고 성도의 영육이 깨끗함을 덧입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가 세움을 입어 구원받는 수가 더하므로 부흥합니다. 정말 귀한 것은 예배에 성공하면 사람이 변한다는 겁니다. 예배가 죽으면, 믿음이 죽습니다. 예배가 죽으면, 선교도 죽습니다. 예배가 죽으면, 교회도 죽습니다. 예배 때마다 성령의 음성을 듣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마다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복음에 목숨을 걸고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게 됩니다.

 
2.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교회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사울 따라 세우라’는 성령의 요청에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행 13:3) 즉 살아있는 예배를 통해 깨달은 은혜를 순종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시 금식하며 기도한 겁니다. 그리고 기도를 끝내고 확신하며, 바나바와 바울을 세워 안수하여 선교사로 파송합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과 바나바를 주축으로 하는 제1차 선교여행입니다(행 13:4~12).

안디옥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였습니다. ‘금식’과 ‘기도’를 교회운영의 중요한 방식으로 삼았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 무엇보다 뜨겁고 간절하게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고 성령의 감동으로 시작된 일이라 해도 기도가 충분하지 않으면 장애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대적 사단은 할 수만 있으면 세계복음화를 방해하려고 악을 쓰고 덤벼듭니다. 그러기에 만약 안디옥 교회가 강수를 놓으며 금식하고 기도하지 않았다면 세계선교는 힘들었을 겁니다.

안디옥 교회 성장에 결정적인 요인은 바나바와 바울이 그 교회의 지도자였다는 겁니다. 그들은 초대교회를 대표할만한 최고의 지도자들이 아닙니까? 그와 같은 지도자가 있으면 교회는 당연히 부흥하고 발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안디옥 교회는 그들 스스로 그들의 영적 지도자인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합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일은 안디옥 교회가 그 일을 놓고 논쟁을 한 일이 없다는 겁니다. 그것이 당연한 일인 줄 알았습니다. 보다 중요한 하나님의 교회와 선교를 위하여 가장 소중한 보물을 아낌없이 내어놓았습니다.
 

결론

사실 교회는 두 가지를 하는 곳입니다. 첫째, 구원받은 자들이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둘째, 예배시간에 받은 은혜와 감동으로 선교하는 곳입니다. 주일예배를 잘 드린 성도라면, 교회 밖에서 선교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도는 세상에 파송된 선교사이기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여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시간과 은사, 물질을 드려 선교에 헌신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가장 큰 사명은 땅 끝까지 가서 제자를 삼으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만으로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다 받으셨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분명하게 선포하셨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5~6) 하나님이 이스라엘로부터만 예배를 받으시기 위해 그들을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온 세계가 다 하나님의 것이고 모든 민족이 다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온 세계의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때까지 쉬지 않고 선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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