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은 나를 흔들어 놓았다”


여보세요, 베들레헴입니다. 지금 이곳은 수시로 하루하루가 다릅니다. 그래도 평온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수화기 건너편에서 전해오는 강태윤 선교사의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한국에서 베들레헴대학교에 왔던 교환학생이 책을 낸 것 같은데 어떻게 소개 좀 시켜 줄 수 없냐는 부탁이었다. 한국 사람이 출간하는 팔레스타인 관련 르포 에세이는 아마도 처음 일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여러 차례 분쟁지역을 다녀온 적이 있어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렇게 양기선 학생(22·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을 만났다. 전형적인 젊은 학도였다.

“미국이나 영국 그리고 네덜란드 등의 학교에도 갈 수 있지만, 남들이 해보지 않은 일을 겪어보고 싶었습니다. 순진하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판단하여 베들레헴대학교에 갔습니다.”

그는 대다수 젊은 청년들이 그렇듯이 베들레헴에 오기 전까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무엇인 줄 몰랐다. 종종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공습했다는 외신을 들었을 때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교회나 학교에서 배운대로 아니, 주변에서 주워들었던 풍월대로 유대인은 선민이기 때문에 무조건 지지하고, 아랍인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는 악의 무리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세계를 보는 시각이 초등학문 수준이었다. 그러나 베들레헴에 가서 그의 인생은 확 달라졌다. 세상을 보는 눈이 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상 이상이었다.

“문화체험을 갔다가 분리장벽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날, 지인들에게 울면서 메일을 보냈습니다. 시오니즘이 과연 성경적인지, 베들레헴에 영적인 희망이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메일에 답신을 해 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현지 분쟁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오히려 귀찮은 듯 아예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는 찢긴 생채기를 안고 그날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가 절규하다시피 써내려간 젊은 날의 베들레헴의 탄식(?)은 결국 <베들레헴은 지금>이란 책의 소재가 되었다.
 

그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군사점령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오로지 영토만을 회복하는 것이 이스라엘을 되찾는 길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는 언약과 예언을 부인하지 않지만, 공의의 차원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토착민의 권리를 존중하는 가운데 이스라엘 민족이 거주해야 하며, 유대인이 토착민을 쫓아내고 무력 점령하는 방법은 공의로운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거기다 서방 중심의 여론은 강자의 입장만 대변하여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이슬람 세력의 테러리스트로 규정, ‘악의 축’으로 설정하는 것은 반성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유대인이든 팔레스타인인이든 모든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만나보면 우리가 주위에서 접하는 이웃 아저씨나 아줌마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도 한국의 대학생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한 쪽 편만 드는 것은 잘못된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고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는 베들레헴에 진정한 평화가 오기는 하는 걸까? 인간의 지혜로는 풀 수 없는 난제를 앞에 두고 갈등과 투쟁으로 범벅이 된 성지에서 그는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

그는 아직 배울 게 많아 잘 모르겠지만, 공의는 약자와 함께 있어주는 것이라며, 세월호 사건 역시 기독교인이 일단은 유족과 함께 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라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베들레헴대학교 교환학생으로 와서 시리아와 이라크 난민들의 애환을 알았고, 아직도 분쟁이 정리되지 않은 제3세계 국가의 어려움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짧은 생애 기간에 느낀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여태까지 온실 속에 자라 정작 바라봐야 할 시선들은 보지 못했던 것이 안타까울 뿐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그의 꿈은 원래 유명한 건축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세계적인 훌륭한 작가가 되어 곳곳에 그의 이름을 딴 건축물들을 짓고 싶었다. 그러나 그 마저도 생각이 바뀌었다.

“건축은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을 위한 작업입니다. 돈이 그만큼 많이 들어야 미관이든 내부든 좋은 작품이 나옵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건축은 그림의 떡 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일단 건축가의 꿈은 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는 아직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아주 평범한 대학생이다. 영어는 기본이요, 단기 유학도 다녀오고, 건축사 자격증 등 몇 가지 스펙을 더 쌓아야 한다. 그런 다음, 이리저리 좇아다니며 기업체에 원서를 내야 한다. 그래야 취업이 된다.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것이 한국 대학생들이 걷는 정석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길을 버렸다. 내년 초에는 베들레헴이 아닌 아프리카 말라위로 떠난다. 아프리카미래재단에서 모집한 자원봉사자에 이름을 올렸다.

“공부는 다른 게 아니라 제가 팔레스타인이나 말라위에서 보고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기 전에 더 많이 보고 배울까 합니다.”

그는 팔레스타인에서 자유를 갈망하며 몸부림 치는 사람들의 현장을 목도했다면, 말라위에서는 기초식량이 부족하여 생존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경험하지 못한 또다른 ‘배움’이 말라위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설레인다고 밝혔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달라졌다고 한다.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러나 책 한 권 출간한 것을 두고 대단한 사람처럼 치부하는 것이 그는 못내 속상하다. 아직도 그가 말하고 싶은 진심을 친구나 또래들은 모르는 것 같다.

“이기적인 내 모습을 발견하고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가 있다는 것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짧지만 팔레스타인에서 보냈던 한 시기가 내 생에 거름이 되어 피와 살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베들레헴은 제게 있어서 세상을 보는 창이었습니다.”

그를 보면서 대학생의 모습이 새롭게 각인됐다.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지내는 젊은 학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케케묵은 책장을 던지고 밖으로, 밖으로 나오라고. 열린 세상은 박제가 된 학문에 있지 않고, 내가 거닐면서 보고 느끼는 곳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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