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창우 목사(장충교회)

하나님 사랑의 힘을 믿고 의지합시다
안전한 피난처며 삶의 원천…항상 찬송하며 기도해야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 18:2)
 

 

성경에 나타난 역사적인 인물들은 모두다 하나같이 환난과 역경과 고난 가운데 ‘만들어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도 그랬습니다. 다윗은 가난한 집의 아들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결혼을 했을 때는 장인 사울왕에게 평생을 쫓기며 살아야 했고, 왕이 되고 나서도 아들 압살롬이 역모를 꾀하는 바람에 도망을 다녀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이 고백에서 보듯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힘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사랑이 힘의 원천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가 고백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힘의 근원은 무엇이며,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은 누구입니까? 평생을 살며 하나님으로 힘을 삼고, 하나님만이 나의 사랑이라고 고백하며 사는 사람은 세상 무섭지 않습니다.

반면에 사람이나 세상이 힘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사랑이 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사람들이 변하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불안을 느낍니다.

하나님이 힘이 되고 사랑이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불안하지가 않습니다. 왜요? 그가 믿는 하나님은 언제나, 어제나 오늘이나, 또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일생 동안 세상 어떤 것으로도 힘을 삼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남이 알지 못하는 한 가지 힘이 있었습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었습니다. 다윗의 힘의 원천은 언제나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다윗은 약한 자였지만 하나님은 강한 분이었습니다.

다윗은 살아가는 힘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서 얻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힘은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돈을 사랑하면 돈에서 힘을 얻습니다. 사람 사랑하면 사람에게서 힘을 얻습니다. 자녀 사랑하면 자녀에게서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디에서 힘을 얻습니까? 하나님에게서 힘을 얻습니다. 그런 사람은 어떤 경우에서도 힘을 잃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 것은 다 변하고, 세상 것은 다 모자라고, 세상 것은 다 떠나도 하나님은 언제나 어제나 오늘이나 또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돈이 없어지면 힘을 잃습니다. 권력을 사랑하는 사람은 권력이 없어지면 힘을 잃습니다. 사람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없어지면 힘을 잃습니다. 자식 사랑하는 사람은 자식이 돌아서면 힘을 잃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돈이 없어지거나, 권력이 없어지거나, 사람이 없어지거나, 자식이 돌아서거나 해도 힘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하나님을 보고 매달리는 힘은 더 강해집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없어졌는데 어떻게 힘을 낼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힘이 하나님으로부터 솟아오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그 힘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안전한 피난처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우리가 이 사실을 언제 압니까? 어려움 당해보면 압니다. 평상시에는 여러 곳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살아도 막상 큰 어려움을 당할 때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형제도 필요 없고, 친구도 필요 없고, 이웃들도 필요 없고, 심지어는 자식과 배우자들도 다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라는 말은 내가 하나님 안에서만 안식을 얻고 안전함을 얻는 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를 끝까지 보호해 주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이 믿음 위에 서기를 바랍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일 그 위에 계시는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보면 세상에 갇히고, 문제를 보면 문제 속에 매몰되지만, 위에 계신 하나님을 보면 그 문제에 대한 답이 보이고, 내가 가야할 길이 보입니다.

세상의 힘은 달라집니다. 세상의 힘은 무너집니다. 세상의 힘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절망 가운데로 떨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할 때에는 힘을 얻습니다. 어디서나 힘을 얻습니다. 어떤 경우에서나 힘을 얻습니다. 그 하나님의 힘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랑하는 법을 자손들에게 가르치십시오. 이게 바로 나와 내 자손이 사는 길입니다. 그 길 밖에는 없습니다. 나를 벗어나야 합니다. 내 생각대로만 살지 말고, 내 틀에서만 살지 말고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는 고백처럼 내 생각과 삶의 무게 중심을 하나님께로 옮겨 살 때 사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나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나 중심적인 사고의 틀에서만 갇혀 살지 말고, 하나님과 소통하며 그 힘 가지고 살 때 사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찬송과 기도는 믿음의 최고봉입니다.

이렇게 고백하며 사는 사람의 삶의 유형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는, 찬송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우리 앞에 고난이 있을 때 찬송 부르시길 바랍니다. 마귀는 찬송을 싫어하지만 하나님은 찬송을 기뻐하십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찬송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힘과 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둘째는, 기도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하나님을 힘으로 삼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언제나 찬송과 기도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탄식하지 말고 찬송 부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기도와 찬송의 자리는 하나님 계시는 자리입니다. 하나님 만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는 자리입니다. 위로를 얻고, 길을 찾고, 힘을 얻고, 비전이 열리는 자리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땐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 고백하십시다. 힘들고 어려울 땐 찬송하고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알렉산더 솔제니친이 쓴 <이반 데비소니치의 하루>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주인공 이반은 러시아의 힘든 감옥살이를 하다가 어느 날 벽에 기대고서는 지그시 눈을 감습니다. 순간적으로 옆에 있던 감옥의 동료가 이반이 기도하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너 기도하고 있지? 너 기도한다고 감옥에서 빨리 나아갈 줄 알아?”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반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감옥에서 빨리 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어! 나는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도록 기도했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난 견딜 수 있거든.”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도록 찬송하고 기도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최고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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