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들은 많은 목회자들이 좋은 설교를 통해 명예도 얻고, 교회 성장의 성공도 추구하고 싶은 욕망의 신드롬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중한 설교 준비와 목회성공 부담에 ‘쉽게 베끼기’ 유혹 쉽게 노출
한국교회 영성 해치는 독소 … 치열한 자기결단으로 목숨 걸어야


수년 전 한 설교방송 인터넷업체에 항의가 빗발친 적이 있었다. 인터넷 상에서 설교방송과 함께 노출했던 설교 본문을 복사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다. 수십일 동안 업체는 항의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항의자들은 대부분 목회자들이었다. 왜 설교 복사를 막느냐는 단순한 비난부터 사용료를 내더라도 복사할 수 있게 해달라는 애걸까지 전화 내용은 다양했다. 작은 교회를 담임하고 있다고 신분을 밝힌 한 목회자는 설교 준비를 어떻게 때때마다 할 수 있냐며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설교 본문을 그대로 복사해 자신의 설교 때 사용해왔다는 고백이었다.
 
설교 표절 유혹 많아져

한국교회에서 설교 표절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7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가 363명의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타인의 설교를 그대로 사용한 경험이 있다’는 답변자가 43%에 달했다. 설교 아웃라인을 그대로 가져오거나, 내용을 짜깁기해 사용하는 경우를 포함하면 그 수치는 훨씬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인터넷 등 각종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설교 표절의 기회와 유혹이 더 많아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실제 현재 설교를 영상이나 글자로 서비스하는 인터넷업체가 수십 개에 달하고 있고, 그 중에는 유료 사이트도 다수다. 검색 기능도 좋아 성경 본문이나 주제를 입력해 몇 번만 클릭하면 금세 설교 한 편을 완성할 수 있을 정도다. 오프라인도 마찬가지로, 서점에 가면 수십 종의 설교집들이 즐비하게 나열돼 있다.

“설교는 마땅히 설교자 자신의 말씀 묵상을 통해 나와야 한다”는 통념을 넘어 전문가들은 설교 표절에 대한 몇 가지 구체적인 잣대를 제시하고 있다. 고려신학대학원장을 역임한 한진환 목사(서울서문교회)는 ‘의도적인가’, ‘반복적인가’, ‘위선적인가’란 세 가지 잣대를 제시했다. 타인의 설교를 처음부터 베끼기로 작정하고 시작했는지, 과거에 본 자료들이 무의식 중에 표출되었는가 하는 의도성이 설교 표절의 잣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설교 표절 행위가 반복적이거나, 여러 설교를 끌어와서 편집하거나 짜깁기해서 자신의 설교인양 하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주채 목사(향상교회 은퇴)는 ‘설교자의 인격적인 주체성’을 설교 표절을 검증하는 기준으로 제시했다. 설교자의 치열한 기도와 고민, 인격과 삶의 산물이 설교라고 할 때, 설교자 자신이 주체적으로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을 거의 생략한 채 설교집이나 다른 자료를 참고하거나 인용해 설교를 준비하는 것은 표절이라는 것이다. 정 목사는 “특히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설교 준비의 바탕”이라며 “말씀묵상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고 소통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여기서 설교 준비의 바탕이 닦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학교 설교 커리큘럼 강화해야

목회자들이 설교 표절에 빠지는 이유는 대략 몇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설교 횟수가 너무 많아서다. 지난해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목회자들은 일주일 평균 7.5회 설교를 하고, 설교준비 시간은 평균 4시간 4분으로 나타났다. 작은 교회 목사의 경우 새벽기도회를 포함해 일주일에 10회 가량 설교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빠듯한 시간에 여러 편의 설교를 준비하다보니 설교 표절의 유혹에 쉽게 노출되는 것이다. 둘째, 설교에 대한 바른 신학이 없기 때문이다. 은혜를 끼칠 수만 있다면 방법은 어떻게 해도 된다는 인간적 욕망에 빠져 설교 표절에 잘못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안진섭 목사(새누리2교회)는 “설교가 교회 성장이라는 결과를 낳을 수는 있지만, 설교가 교회 성장의 방편이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강단을 도구화하는 순간 설교자는 효율성의 함정에 빠진다”고 지적했다. 셋째, 설교자로 기본자격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해 설교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자가 목회자로 서야 하는데, 그런 능력을 갖추지 못한 자들이 설교를 계속해야 할 때 자연히 남의 설교에 눈길을 기울이는 것이다. 정주채 목사는 “신학교에서부터 별다른 검증 작업 없이 학점만 이수하면 자격을 부여하고, 더 나아가 부실한 신학훈련을 받은 자들을 걸러낼 장치도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외 자신을 영성 깊고 실력 있는 설교자로 보이고 싶어 하는 인간적인 욕망, 게으름, 저작권에 대한 인식 부족 등이 설교 표절의 대체적인 이유다.

설교 표절이 심각한 문제인 것은 단순히 설교자 자신의 영성을 해치는 것을 넘어 공동체 전체에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다른 교회에서 은혜로웠던 설교가 자신의 교회에서도 은혜로우리라는 보장은 없다. 안진섭 목사는 “성경에 담겨있는 영원한 진리를 ‘지금 여기에’ 있는 청중에게 적실하게 들여지도록 전파하는 것이 설교”라며 “표절 설교는 청중을 완전 무시한 적실성 제로의 설교로, 그런 설교에서 교인들의 영적 성장을 기대하는 것은 난망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설교 표절은 공동체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난 해 부산의 모 교회에서는 담임목사가 6년 이상 설교 대부분을 표절한 것이 드러났고, 그로 인해 교회는 지금까지 몸살을 앓고 있다. 해당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한 성도는 “성도와 목회자간의 신뢰가 깨진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그 후부터는 설교를 들을 때마다 저건 어디서 베꼈을까 비딱하게 보게 되고, 목회자 역시 그런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설교를 잘 할 수 있겠나”고 토로했다.

더 우려되는 점은 가뜩이나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따가운 상황에서 설교 표절이 한국교회가 수모를 당하는 빌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언론에서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거의 모든 말과 글이 인터넷에 공개되는 시대에 설교 표절 문제는 언제라도 한국교회 전체를 뒤흔드는 위해요소다.
 
목회 성공주의 신드롬 극복해야

설교 표절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과중한 설교 사역을 재고해야 한다. 설교 횟수를 줄이는 방법부터 천편일률적인 예배 형식을 바꾸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새벽기도회를 설교 중심 대신 묵상과 나눔 중심으로 변경하는 것도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목회자 자신이 목회 외적인 활동에 지나치게 시간을 뺏기지 않도록 절제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여기에는 목사와 당회, 교회 전체의 양해와 노력이 함께 요청된다. 보다 근본적인 방법으로는 ‘설교 교육 강화’가 필요하다. 신학교 때부터 설교 커리큘럼을 강화해 설교 훈련을 집중적으로 받도록 해야 한다. 현재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신학대학원에서 설교 관련 과목은 한두 개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학생들은 그나마 개론 수준에 불과한 과목을 배우고, 준비되지 못한 채 목회 현장에 투입되는 실정이다. 따라서 신학교에서 준비된 설교자를 길러내기 위해 특화된 커리큘럼을 도입하고, 소규모 강의나 일대 일 맞춤 교육을 시행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 이외 교단에서 목회자들을 위한 연장교육기관을 만들거나 개 교회 담임목사가 부목사들의 멘토가 돼 설교 지도를 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설교 표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치열한 자기 결단이 요구된다. 한진환 목사는 “목사는 말씀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입’으로 부름 받은 자”라며 “영광스러운 소명을 자각하고 설교 사역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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