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9일 완공감사예배…고흥군 ‘공원화’ 추진

▲ 순교자 김정복 목사의 묘역정비 완공을 축하하는 감사예배에서 총회장 안명환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소록도의 순교자 김정복 목사의 묘역 정비사업 완공을 축하하는 감사예배가 8월 29일 전남 고흥 등암리 묘소에서 열렸다.

사회부(부장:박양진 장로) 주관으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총회장 안명환 목사를 비롯한 교단 인사들과 소록도연합교회 성도들, 남중노회(노회장:김선호 목사)와 고흥보성노회(노회장:김수현 목사) 관계자들, 박병종 고흥군수를 위시한 지역기관 장 등 120여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예배를 통해 김정복 목사의 묘소가 뒤늦게나마 제대로 단장되고, 후세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을 감사하며, 고인이 보여준 섬김의 모습과 순교신앙을 계승하는데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안명환 목사는 설교를 통해 “한센 환우들을 가족처럼 사랑으로 섬기고, 선한 목자의 모습으로 끝까지 사명을 다하신 김정복 목사님을 추모한다”면서 “고인을 비롯한 믿음의 선배들이 목숨바쳐 지킨 신앙을 이어받는 목회자와 성도들이 되자”고 강조했다.

금번 김정복 목사의 묘소가 대대적으로 변신한 것은 지난해 12월 총회장 안명환 목사가 소록도교회를 방문했을 때, 고인의 묘소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고 사회부를 통해 묘역정비를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소록도연합교회가 모금한 1000만원과 사회부의 지원금 300만원을 더한 기금으로 지난 봄 묘역 주변에 축대를 쌓고 순교기념비를 건립하는 1차 공사가 이루어졌고, 사회부의 추가지원에 따라 금번에 추모시비 건립 등 2차 공사까지 완료될 수 있었다.

교단과 소록도교회의 움직임이 지역사회에 알려지면서, 고흥군에서도 이에 호응해 묘소 주변을 다듬고 이팝나무와 무궁화 등 식물들을 심으며 본격적으로 가꾸기 시작했다. 특히 고흥군은 고인의 호를 따 묘역주변을 ‘샛별부활동산’이라 명명하고, 추가 시설공사를 거쳐 현지를 공원화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예배는 박양진 장로 사회, 순교자기념사업부장 송회용 장로 기도, 소록도연합교회찬양대의 찬양, 안명환 목사 설교, 소록도연합교회 사무장 이남철 장로의 약사보고, 총회 서기 김영남 목사 축도로 진행됐다.

또한 총무 황규철 목사, 회록서기 최우식 목사, 고흥보성노회장 김수현 목사, 국제IDEA협회장 정상권 장로, 전국장로회연합회 수석부회장 신신우 장로, 고흥군의회 장세선 의장 등이 축사를 맡았다. 특별히 이 자리에서 죽암그룹(회장:김종욱)이 소록도에 11대의 컴퓨터를 기증하는 순서도 마련됐다.

예배 후에는 월간목회 대표 박종구 목사가 김정복 목사를 기리며 쓴 추모시 ‘목자의 향기’의 시비 제막식이 진행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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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복 목사는 누구인가

 

소록도의 김정복 목사는 애양원의 손양원 목사와 쌍벽을 이루는 한국교회 대표적 순교자이다. 한센환우들을 위해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았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옥고를 치렀으며, 6·25 전쟁 중에 순교한 것까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김정복 목사는 오랫동안 소록도교회 성도들의 기억 속에만 살아있는 외로운 존재로 남아있었다.

1882년 충남 서천에서 출생한 김정복 목사는 1946년 소록도교회에 부임해 사랑의 목회를 펼쳤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다 1940년 5월부터 3년 넘게 광주형무소에 수감되기도 했으며, 해방 후에는 손양원 목사 등과 더불어 한국교회 재건을 위해 힘썼다. 6·25전쟁이 터진 후에도 소록도의 4000여 양떼를 버릴 수 없다며 박해를 각오하고 교회를 지키다 인민군에 체포됐다.

결국 인천상륙작전 후 퇴각하던 인민군에 의해, 1950년 9월 30일 고흥경찰서 뒷산에서 69세의 나이로 목숨을 잃고 고흥읍 등암리 야산에 묻혔다. 고인의 순교자 등재는 남중노회가 제86회 총회에 헌의해, 순교 후 50년만인 2001년 11월 16일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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