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인터뷰] 권성수 목사(대구동신교회)

오래된 것을 유지하는 것이 개혁주의는 아니야
신학을 생활과 연결시킬 때 진정한 변화 일어나
3차례 찾아온 목회 위기, 은혜의 쾌감 너무 컸다

 

옷감이나 그물을 짤 때 ‘씨줄’과 ‘날줄’이 촘촘해야 제대로 된 상품이 나온다.

신학과 목회도 마찬가지다. ‘신학’이라는 씨줄과 ‘목회’라는 날줄이 잘 엉킬 때 바른 목회와 건강한 교회를 세워갈 수 있다. 물론 신학적 발전도 꾀할 수 있다.

현재 한국 교회는 교회의 정체성을 잃어버려 혼란한 시기를 겪고 있다. 그 원인으로 ‘성장신학’에 함몰돼 신학이 없는 목회를 추구한 결과이며, 신학의 혼탁이 목회에까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신학과 목회라는 씨줄과 날줄을 더욱 촘촘하게 엮어내야 할 시기가 바로 지금인 셈이다.

14년간 신학교에서 교수활동에 이어 목회자로 15년차를 맞고 있는 권성수 목사(대구동신교회)는 말 그대로 신학(씨줄)과 목회(날줄)를 겸비한 목회자로 꼽힌다. 이러한 권성수 목사와의 대화를 통해, 한국 교회의 회복을 위한 신학과 목회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본다.
 

▲ 권성수 목사(대구동신교회)

▲현재 ‘생생신앙시리즈’ 설교를 하고 계시는데, 어떤 내용인가.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해 일반 사람들이 유병언씨의 구원파를 일반 기독교로 인식하고 있는 현실을 보게 되었다. 이번 사고를 두고 기독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기독교인이 무엇”이며, “저런 것이 ‘구원’인가?”라는 인식이 커지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덧붙여 최근 기독교의 침체 원인이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들이 제대로 살면, 모든 영역에서 활력을 가질 것이라 생각하면서 생생신앙시리즈 설교를 기획하게 되었다.

▲생생신앙시리즈로 야고보서를 강해하고 계시는데, 야고보서의 내용을 보면 신앙의 이론이나 방법보다는 실천적 삶을 담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가톨릭의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가 연상된다. 교황이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이유에 대해 많은 평가가 있겠지만 권위를 버린 낮은 마음과 자세, 낮은 자와의 담이 없는 관계와 소통, 불의에 대한 단호한 개혁과 대항 때문이라는 것이 보편적인 시각이다. 개혁주의 교회는 날마다 개혁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사변적인 성향이 짙다. ‘사변’이 아니라 ‘실천’으로 변화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하겠는가?

=한국 교회 내 교황 방문과 관련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 우선 일반인 시각에서 교황의 검소하고 낮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지도자로서 존경할 만하다. 개신교 안에서도 교리나 신학적인 깊이가 없으면 천주교에 대한 이미지나 개종과 같은 상당한 영향을 받지 않겠는가 하는 입장에서 우려스럽기는 하다.

그러나 언제든지 바른 진리 안에서 바른 윤리가 나온다. 바리새인이 그랬지 않았나? 아무리 윤리적으로 탓할 수 없는 바른 생활을 한다 해도 진리 앞에서 책망을 받았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바른 진리와 바른 윤리가 나온다.

교리와 윤리가 맞물려 나가야 한다. 가톨릭의 잘못된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지만, 우리가 약한 부분은 인정하고 바르게 살려는 자성과 노력이 더 시급하다고 본다. 개혁주의가 왜 사변적인가? 실천하면 된다. 실천은 말씀대로 순종하면 된다. 개신교의 지도자나 성도가 그렇게 살지 않기 때문에 사변적이 되는 것이다.

말씀 그대로 살면 당장 어려움이 온다. 불편하고 따돌림 당할 수 있다. 저는 이런 표현을 쓴다. ‘아름다운 왕따’. 아름다운 왕따로 살겠다는 각오로 말씀대로 살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삶의 고통은 십자가가 아니겠는가? 죽으면 사는 것이 부활의 능력이다. 실제 삶에서 예수의 복음의 능력을 체험해야 한다.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의 재해석과 실천이 필요하다. 선명한 신앙생활을 하고자 할 때 고난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면 능력이 나타난다.

날마다 개혁되고 새롭게 돼야 하는 것이 기독교의 정신인데 어느 순간 현상유지에 만족해 버렸다. 날마다 처서 복종하는 긴장감과 가난한 심령의 자세가 필요하다.

형식과 문화의식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지금의 모습이며, 생명의 능력을 전혀 체험하지 못하고, 심지어 교회를 미워하는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여기에 지도자가 먼저 깨어있어야 한다. 양과 질의 성장이 있어야 하는데,  외부적인 영광과 성공만을 추구하다보면 타락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정신을 차리고 돌아서는 결단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이념논쟁이 심하다. 교회 차원에서도 실천, 낮은 자를 강조하면 ‘빨간색’으로 보며, 해방신학이라는 비판을 여과 없이 하고 있다. 한국 교회가 극렬한 이념대립 속에 신학과 실천의 균형을 찾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성경에서 고아와 과부의 아버지며, 소외된 자의 친구가 예수가 아닌가? 예수님은 계급투쟁으로 이들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교회도 예수님처럼 도움이 절실한 자의 '친구'로서 다가가야 한다.

균형적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친북, 종북은 상당히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극우와 극좌는 문제다. 중도에서 상황에 따라 강조점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교회가 먼저 바른 의식을 가져야 하며, 스펙트럼을 바로 그려야 한다. 사회적 상황에 따라 최선의 결과를 어떻게 도출할 것인가에 관심을 갖고 교회가 중심을 지켜가야 한다.

다시 강조하는 말이지만 교회가 교회답고, 신자가 신자다우면 된다. 제자다운 제자로 서면서, 낮은 자에 관심을 갖고 실천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이데올로기에 있어서는 균형을, 실천적인 삶에 대해서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소외되고 낮은 자들을 돌아보아야 한다. 지도자들의 의식이 사회의 눈물을 닦아줄 마음과 자세가 되면 된다.

▲질문을 목회로 돌려보자. 15년 전, 신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다 한 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로 전향하셨다. 개인적인 결단과 다짐이 컸을 것 같은데.

=신학교에서 기획실장을 지내면서 미래에 대한 책들을 많이 접했다. 21세기는 ‘실천적 지식인의 시대’라는 것을 깨달았고, 개인적으로 그 실천을 ‘목회’로 보았다.

사실 신학교에서 가르치며 큰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 학생들이 교육을 받으면서도 목회적 성공에 집착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학교육이 크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후 왜 목회로 오게 됐는지 목회현장에서 절실히 느낀다. 현재 교회에서 성경을 따라가는 조직신학을 진행하고 있는데, 목회에 있어 신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하고 있다.

사람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 감성위주의 설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쉽게 재미있게 전달하는 것에 머물다 보니 가치관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교육과 설교를 하지 못하고 있다.

설교에 신학적 마인드를 갖고 해야 진정한 변화가 온다고 본다. 왜냐고? 사람을 바꾸기 위해서는 ‘생각의 덩어리’를 바꿔야 한다. 마음속에는 생각의 덩어리가 있기 때문에 그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 다시 말해 신념이나 가치관의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그럴 때 인생관과 구원관이 세워지는 것이다.

생각은 가치관을, 가치관은 느낌(감정)을, 감정은 행동을, 행동은 습관을, 습관은 인생을 변화시키는 것이 하나의 사이클로 작용한다. 따라서 생각의 변화는 신학으로 바꿔야 한다. 즉 신학을 통해 성도들이 하나님의 눈으로 생각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 신학을 쉽게 생활과 연결시킬 때 반드시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다. 목회와 신학은 연결돼 있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따라서 설교는 가치관을 변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복음의식화 설교, 사상설교를 해야 한다. 그것이 교리설교다. 교리를 쉽고, 생활과 연관되게 하는 설교를 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는 지정의(知情意)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지난 15년간 담임목사로서 동신교회의 변화상과 보람을 말한다면.

=설교 수준을 낮추지 않았다. 대신 더 쉽게 전달하려 노력했다. 그러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정말 감사하다. 물론 많은 성도들 개개인의 반응을 측정하기란 쉽지 않다. 모든 교인을 만날 수 없다. 다만 변하는 것을 느낄 수는 있다. 대표적인 예로 80이 넘은 고령의 성도도 설교를 쉽게 이해하고 반응을 하며, 성도들이 나누는 대화가 설교를 근거로 하는 것을 심심찮게 보고 있다. 변화가 바로 목회의 보람이다. 생명의 변화가 일어나면 반드시 생활의 변화가 일어난다. 그것을 보게 되는 것이 보람이다. 이러한 변화의 면면은 개인적으로 쓰고 있는 ‘영성일기’에서 기록돼 있다. 영성일기에 변화된 성도들의 모습과 간증이 무수히 들어있다.

▲목회를 하면서 가장 큰 고뇌는 무엇이었나? 그리고 어떻게 극복했나?

=예수님도, 바울도, 모세도 고통당했다. 목회자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목회자는 대접 받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짊어진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세상은 죄가 시스템으로 나타나기 곳이기 때문에 목회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죄 때문에, 세상 때문에, 사탄으로부터 오는 고통이 목회자에게 있다. 그것이 오해나 욕, 괴롭힘으로 나타난다. 이럴 때 지혜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세 차례 목회를 그만두려는 마음을 가졌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미워하고 싶지만, 그 생각을 따라 가지 않았다. 감정처리를 생각의 변화로 이끄는데 힘썼다. 주님의 심정으로 축복기도하고, 주님이라면 어찌할 것인가에 집중했다. 바르게 하고, 먼저 희생하려는 자세로 대했다. 이런 과정에서 고통은 각오하되, 거기서 오는 상상할 수 없는 은혜의 쾌감이 너무 크다는 것을 체험했다.

경건성을 유지하는 것도 목회자에겐 큰 몫이다. 경건은 주님의 주시는 기쁨을 누리는 환희다. 개인 경건을 위해 새벽기도에 집중하고 있다. 새벽에 교회에 와서 일본어 성경을 본다. 1시간 동안 일본어로 기도한다. 매일 노트로 기도문을 쓰고 있다.

새벽기도 후 인근 대학교와 헬스장에서 체력단련을 하고, 집에 가서 영성일기를 쓴다.(권 목사의 영성일기는 2008년부터 시작됐다. 벌써 6년째다. 매일 쓴 일기 분량이 컴퓨터상으로 5000페이지를 넘어선 어마한 분량이 되었다. 영성일기에 그의 고민과 갈등, 사건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오후에는 목양실에서 성경을 읽고, 묵상한다. 생활전체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려 노력한다.

경건의 핵심은 주님과 교제에 두고 있다. 잘못을 하면 바로 사과하고, 회개하며 주님과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으려 한다.

▲목회에 있어 신학적 적용의 한계(괴리감)가 많다고 하는데.

=굉장히 많다. 많은 교인들의 삶을 일일이 알 수 없고, 복잡다단한 일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적용이 제한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부부관계를 이야기하게 되면, 미혼자에게는 적용이 안 된다. 의미가 없다. 부분적인 적용이 가능하지만 말이다.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크기 때문에 설교에서 좌우 이야기를 하면 바로 반응이 온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전형이다. 그래서 어렵다. 그래서 기도할 수밖에 없고, 모델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10년이 지나면서 신뢰를 바탕으로 신학적 적용이 되기 시작했다. 목회에 있어 신학적 적용의 한계를 결국 소그룹에서 훈련하는 방식을 택했다.

▲덧붙여 성경보다 앞선 것은 없다. 그러나 성경을 건전하게 보는 관점 역시 중요하다. 그래서 신학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신학의 약화가 교권주의와 맞물려 문자적 근본주의화가 되어 교회를 살리기 보다는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성경의 정신을 제대로 살리는 개혁신학의 건강성 유지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이런 점에서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위대함이 성경에 나타나있다. 따라서 생활 적용면에서 무궁무진한 금광이 성경에 있다. 성경해석에 있어 언어, 역사, 문학 모든 것이 녹아있다. 그러므로 성경과 생활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신학이 끝없이 발전해야 한다.

현재 신학의 발전이 없음이 안타깝다. 교단의 신학이 많이 경직된 것이 사실이다. 유학을 하면서 학문적으로 독창성과 창의적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진리 안에서 신학적 사고를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해, 개혁주의 신학에 혁신이 날마다 일어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이 먼저 열려져야 한다. 지나친 극단적 혁신 때문에 제약이 따르는 것을 알고 있다. 건전한 신학적 긴장감은 좋지만, 성경에 있는 대로 바르게 바꿔야 할 부분이 있다면 길을 열어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학교도 열려야 하고, 교단적으로도 열려 있어야 한다. 물론 신학을 가르치는 사람은 상당한 지혜를 갖고 가르쳐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성장의 패러다임 속에서 교단과 교파의 특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개혁주의 교회는 가장 성경적인 교회다. 그러므로 개혁주의에 입각한 교회를 세우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의 원리에 따라 이것을 주장할 때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 고려가 필요하다. 대표적인 사례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교회 강연을 들 수 있겠다.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할 때 듣는 사람을 고려해서 오해할 소지가 없도록 해야 한다. 예정론을 강조할 때,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을 동시에 이야기해야 한다.

또 하나, 개혁교회가 근본주의화로 가는 것은 문화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개혁주의는 오래된 것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경우 성장하는 교회를 보면 성경의 정통성을 유지하되 문화적응성을 갖고 있다. 개혁주의 교회는 학문 면에서 발전할 수 있도록 열어놓아야 하고, 문화도 성경적 측면에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개혁주의 예배의 경우 다양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청중의 예배 스타일에 따라 예배를 드리도록 해야 한다. 물론 쇼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정통을 지키는 한에서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성경 관해서는 변질되면 죽는다. 그러나 문화적으로도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지킴과 적응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2000년대 이후 ‘교회본질’ 회복을 많이 외치고 있지만, 정작 교회본질에 대한 ‘정의’를 쉽게 내리지 못하고 다분히 사변적으로만 이야기하고 있다. 목사님께서 생각하시는 교회의 본질은 무엇이며, 지금의 한국 교회가 그 본질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가 교회의 본질이다. 예수의 생명으로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대안공동체다. 공동체가 바로 된다면 교회는 문제가 없다.

▲앞의 질문을 이어보자. 어려움에 직면한 한국 교회의 회복을 위해 교회의 ‘공동체성 회복’과 ‘공적신앙’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본질을 따라 가면 공동체 회복과 공익성을 회복할 수 있다. 교회가 성경에 있는 대로 하면 된다. 이원론이 아니라 신앙을 따라 삶을 실천하는 것이 결국 교회 본질 회복의 길이다.

공동체 강조에 있어 규모로 말하는 요소가 있다. 성장하고 싶고, 쪼개고 싶은 것이 목회자의 다 같은 마음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아무리 쪼개고 싶다 해도 좋은 시설과 체계적 교육, 익명성, 카리스마적 지도력 등을 원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에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어찌 할 수 없다.

그러나 규모가 있는 교회는 작은 교회를 위한 역할을 해야 한다. 저희 교회에서는 작은 교회 살리기 노력을 실천하려 애쓰고 있다. 생명사역훈련원을 내년부터 가동할 예정이다. 수익을 바라지 않고 한국 교회를 위해 섬길 것이다. 진짜 도움 필요한 곳에 실질적으로 돕는 의도적 나눔을 하고 있으며, 이를 확대해 갈 것이다.

공동체성 회복을 위해서는 소그룹을 통해 극복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은 인정한다.

▲교세 감소, 기독교에 대한 배타성 심화, 개교회주의 견고화, 과도한 개인주의적 신앙생활, 인구감소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한 다음세대 복음화율 급감 등 총체적인 어려움에서 목회자는 어떤 자세와 노력을 가져야 하겠는가.

=인구감소 현상에서 교회가 다산(多産)운동을 의도적으로 일으켜야 한다. 생물학적 전도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자녀 교육문제가 결국 인구증대에 큰 한계(걸림돌)이다. 이런 측면에서 저희 교회는 학교 역할을 해서 학원에 가지 않더라도 학문적 욕구와 자기계발을 채워주려 노력한다. 대안학교와 같은 제도적인 학교를 포기하고, 대신 교회가 학교의 역할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전환했다. 앞으로 '탁아'역할까지 준비 중이다.

기독교의 배타성과 개인주의 성향 극복을 위해 성도들에게 사회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결국 교회 본질대로 살아가고, 목회자가 본을 보이는 노력을 통해 차근차근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목회자에게 설교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설교는 성경의 해석과 탁월한 상황화가 크게 작용한다. 성경해석과 적용의 향상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달리 방법은 없다. 성경의 문맥을 살피고, 문학과 역사와 원어의 이해, 성경전체를 보는 눈 등 신학교에서 배웠던 대로 연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에 영어실력을 늘린다면 성경 이해 수준을 훨씬 높일 수 있다. 풍부한 통찰을 얻기 위해서는 영어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

▲끝으로 내년에 생명사역훈련원 개원을 준비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어떤 목적인가.

=동신교회에서 '마태복음 9장 35~38절' 말씀을 근거로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생명사역에 집중했다. 15년간 목회하면서 정립한 것을 생명사역훈련원을 통해 전수하려는 것이다.

신학과 목회의 접목, 질과 양의 변화를 나눠주기 위함이다. 함께 사역을 원하는 교회와 목회자에게 우편물로 자료를 제공하고, 소셜 네트워크(SNS)를 통한 자료 나눔과 교제, 훈련프로그램 등의 활동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수익자 우선 원칙으로 철저하게 훈련자들이 도움 받을 수 있는 훈련원을 계획하고 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