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좁은 길 선택 ‘제자도’ 실천한다

8개 협력 농촌교회 방문·한달 넘는 단기선교
강행군 원동력은 ‘더 낮아지자’ 영원한 가치

 ‘제자’라는 단어가 이렇게 불신을 받는 시대가 있었던가. 그 이름과 정신을 브랜드화하고 전략으로 택했던 여러 교회들이 추락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보며 사람들은 회의를 느낀다. 제자, 과연 지금도 유효한 가치인가?

전주제자교회(박용태 목사)는 그 질문 앞에서 입술만이 아니라 온 몸으로 대답한다. 진정한 제자의 길은 쉽게 갈 수 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헌신과 인내로 걸어가는 그 길 위의 삶을 우리 주님은 틀림없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구약시대 제사의 절정이 화목제였다면, 신약시대에는 성찬식이 있습니다. 성찬식이 무엇입니까? 우리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예식인 동시에 교회 안에 부자와 가난한 자가 함께 잔치를 벌이며, 하늘의 기쁨을 미리 맛보는 자리입니다. 오늘 우리가 맞는 맥추절의 의미 또한 그렇습니다. 더 가진 사람들이 덜 가진 사람들에게 이웃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아니, 반드시 실천해야하는 ‘율법’이었습니다.”

박용태 목사의 주일설교에는 청중들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단순히 지성과 감정만을 순간 자극하는 탄력이 아니다. 귀와 마음으로 들어온 복음을 구체적인 결단과 행동으로 옮기게 만드는 추동력이다. 그래서 그 설교는 삶의 예배로 곧잘 이어진다.

이날 전주제자교회는 평소보다 주일예배를 1시간씩 앞당겼다. 오후에는 공동체 전체가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 각자 목적지를 향해 먼 길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맥추절마다 농촌교회를 방문하여 예배를 함께 하는 일은 하나의 전통이 되어간다.

함께 예배하는 일만으로도 농촌교회에는 격려가 되지만, 제자교회 성도들은 한두 가지씩 선물을 더 준비한다. 방문하는 교회에 가장 절실한 부분을 해결해주는 것이다. 이번에도 영광 늘푸른교회를 찾아간 팀은 동네 형광등 교체와 제초작업을 도왔고, 진안 신암교회를 찾은 팀과 중길교회를 방문한 팀은 각각 주민들의 토마토 수확과 메론 잎 솎는 작업에 일손을 보탰다. 작업하는 한 편에선 의료 이미용 전도 음식준비 등의 봉사가 분주하게 이뤄진다.

하지만 이렇게 수고하는 중에도 제자교회 성도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겸손’이다. 항시 베푸는 우리가 더 좋은 교회라는 착각, 더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교만을 버려야 한다. 오히려 농촌교회와 농촌목회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더 무거운 짐을 감당하는 훌륭한 존재라는 의식을 마음에 새기고, 신중한 말과 행실로 봉사에 임해야 한다.

전주제자교회는 이처럼 여덟 개의 형제 교회를 매년 잊지 않고 찾아가는 꾸준함으로, 그리고 진정성 있는 섬김으로 이웃사랑의 마음을 입증해 보인다. 해외선교 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농촌교회 방문예배가 있던 이 날, 아침예배 시간에는 특별한 파송식이 함께 열렸다. 청년대학부 소속 다섯 명의 젊은이들은 이틀 후 단기선교를 위한 장도에 오르게 된다. 말이 단기선교이지 35일, 즉 한 달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직장도 학업도 내려놓고 낯선 선교지에서 먹고 자며 일하는 강행군을 감당하는 것이다.

비전트립 형태의 짧은 일정만으로는 선교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도, 현지 선교사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도 힘들다는 판단에, 아예 한 달 이상을 현지인들과 더불어 불편한 환경을 극복해가면서 더 많이 배우며 섬기도록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이 기간 동안 젊은이들은 선교사 자녀들과 현지인 유치원 아이들을 돌보는 사역, 선교지 교회 청소년과 청년들을 대상으로 악기와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역에 참여하게 된다. 커피전문가인 이승호 집사 역시 생업을 잠시 접고, 한 주간 이들과 동행해 바리스타교육을 담당한다. 이런 모습들은 전주제자교회가 어떤 마음가짐과 철학으로 사역에 임하는 지를 보여주는 작은 사례들에 불과하다.

제자도는 성장으로 가는 넓은 길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은 더 손해를 감수하고, 다른 이들을 무한히 배려하며, 주님 앞에서 철저히 낮아져야 하는 좁은 길이다. 전주제자교회가 좇아가는 제자도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래서 ‘제자’의 가치는 여전히, 아니 영원토록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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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만나야 합니다”

제자도는 강단서 시작, 시대로 이어져야

인터뷰/ 박용태 목사

 

“요즘엔 돈을 내는 것 보다 귀한 일이 시간을 내는 것이죠. 돈만 가지고 관계를 만들어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상대라면 일단 만나야 합니다. 얼굴을 모르고, 사정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의 섬김이나 기도는 막연할 뿐입니다.”

전주제자교회 박용태 목사는 그래서 현장을 중시한다. 그곳이 복음의 현장이라면 일단 찾아가고, 가능한 오래 머물면서 배우고 살펴야 제대로 할 일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현장과 함께 중요시하는 또 다른 요소가 시대이다. 복음은 시대와 유리된 개념이 아니다.

“우리 교회가 사역의 방향을 결정할 때 우선 고려하는 요인이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그리고 한국사회의 현실입니다. 팍팍한 농촌의 현실, 꽉 막힌 남북한의 정세, 정치와 법이 한계를 드러내는 여러 지점을 살펴 교회가 할 일을 찾습니다.”

남북한의 상생과 통일을 기원하는 민족화해주일, 환경 그리고 공존의 가치를 생각하는 코이노니아데이, 시의성 있는 이슈들을 성경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느헤미야포럼 같은 사역들이 전주제자교회의 연간 일정에 들어가고, 주보에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나 내각 인사청문회와 같은 사안들이 공동기도제목으로 실리는 이유가 그것이다. 제자도는 지금, 여기에서 실천돼야 한다.

“예를 들어 구제라는 부분을 생각해봅시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정부의 몫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재물을 맡기신 이유가 곁에 있는 가난한 이웃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명시합니다. 만약 세속 정부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더욱 세심하게, 창의적으로 감당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입니다.”

그렇다고 전주제자교회의 무게중심이 행동과 실천 쪽에 쏠려있다고 여긴다면 큰 오산이다. 사역의 기초는 어디까지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기도를 통해 순종의 결단을 내리는데서 시작된다. 성경일독, 70일 이상의 새벽기도회 참여, 매일 성경묵상 등 영적 철인3종경기대회를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이유는 자칫 흐트러지기 쉬운 영적 대오를 바로 잡기 위함이다.

박 목사의 설교나 사역을 들여다보면 이처럼 진리의 복음과 함께 십자가의 긍휼로 세상을 품는 마음이 나란히 녹아있다. 그렇다면 박 목사에게 ‘제자’란 어떤 것일까?

“2년 정도의 교육과정을 통과했다고 완성되는 게 제자의 참 모습은 아닐 겁니다. 예수님과 같은 뜻, 같은 마음을 품기 위해서 온 몸으로 부딪치며 다듬어지는 것이 제자의 길이겠죠. 평생에 걸친 경주가 될 것이라고 저 자신부터 각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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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3분의 1을 ‘흘려보내다’

1986년 정용갑 목사와 몇 명의 지체들이 첫 예배를 시작할 때부터 제자교회는 건강한 제자도 아래 민족과 세계를 품고, 다음세대를 키우는 사역에 집중해왔다. 농어촌 출신 학생들을 위한 학사관을 개설하고, 진안 이랑공동체와 함께 청소년 계절학교를 운영하며 대안교육의 토대를 놓은 것이 초기 사역의 대표적 열매들이다.

 

박용태 목사가 부임한 2004년 이후로는 이 같은 기초 위에 사역의 심화와 다양화가 이루어졌다. 지역주민을 위한 사랑의 쌀통 설치, 농촌교회 교역자들을 위한 가족수양회, 전북지역 청년사역자들을 위한 성경적 세계관 세미나 등 독특하면서도 실제적인 사업들이 등장했다. 그 과정에 사역들의 성장과 정착도 이루어졌다.

농촌을 향한 긍휼은 농촌교회 방문예배로, 통일에 대한 열망은 민족화해주일 제정으로, 기독교세계관에 대한 천착은 느헤미야 포럼으로, 다음세대에 대한 책임감은 꽃비축제와 문화센터 ‘좋은씨앗’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물론 사역들의 배후에는 제자도라는 굳센 에너지가 버틴다.

말씀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질 수 있는 바탕이 다져지고 있기에 재정의 3분의 1을 선교와 구제와 장학사업 등으로 기꺼이 ‘흘려보내고’, 예배실은 비좁아도 지역아동들을 위해서는 근사한 문화공간과 도서관을 만들어주며, 수많은 해외선교사들과 농촌목회자, 학원선교사역자들을 한 가족처럼 돌보는 일들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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