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강인춘
최치량(崔致良, 1854~1930)은 장로교 장로이자 평양 최초 교인 중 1인으로 1854년 9월 22일 출생하였다. 선비 가정에서 출생했으나 부친이 일찍 타계하였다. 1866년 9월 3일 대동강가에서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에 동승했던 토마스(R. I. Thomas) 선교사가 순교했는데, 이때 그도 숙부와 함께 이 장면을 구경하다가 토마스 선교사가 뿌리는 한문 성경 3권을 주웠다. 그러나 집으로 가져오지 못하고 나졸에게 주었으며 토마스의 순교 장면을 목격하고 돌아왔다.

그후 그는 사업에 성공하여 물상객주가 되었으며 평양 대동문 안에 여관을 차렸다. 그런데 그가 여관을 차린 집의 전 주인은 박영식(朴永植)이란 자로 그는 영문주사(營門主事)로 있으면서 토마스 선교사 순교 당시 강가에 뿌려진 성경을 집으로 가져와 보관하고 있다가 그것을 찢어 바람벽에 발라 놓았었다. 1892년 10월 마펫(S. A. Moffet) 선교사는 한석진(韓錫晉) 조사에게 평양선교부 개척의 책임을 맡겨 평양으로 파송했고, 한석진은 최치량의 여관을 숙소로 정했다. 한편 그해 겨울에 마펫이 평양에 와서 최치량의 여관에서 선교사업을 시작했다.

이때 바람벽에 붙여진 한문성경의 내력이 밝혀져 마펫은 큰 감명을 받게 되었다. 최치량은 한석진에게 전도받기 시작하였고, 그의 집에서 열리는 예배에 참석하는 중에 평양에서는 최초로 마펫에게 세례를 받고 평양교회 초석이 되었다. 그는 널다리골의 홍종대(洪鐘大)의 집을 사서 예배를 드렸는데 이것이 후일의 장대현교회가 되었다. (기독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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