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 목사(한주교회)

▲ 김태훈 목사
“15세기말 중세시대의 영적 암흑기 속에서 고민하던 종교개혁가들은 쿠텐베르크의 인쇄술을 바라보며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시대는 ‘소통의 시대’이다. 정치, 경제 및 사회 전반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소통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소셜 미디어 시대를 맞아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카카오톡, 트위터, 페이스북 등과 같은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 기기의 발전과 보급으로 인해 기존의 전통적인 소통의 방법과 범위를 넘어선 새로운 소통의 시대가 우리 앞에 열려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통의 시대’에 직면한 교회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이 땅의 교회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 즉 복음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소통케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지만 ‘소통의 시대’를 직면한 교회는 오히려 불통으로 인한 고통을 겪고 있지는 않은가! 이 시대의 교회들을 보라. 복음 증거에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예배시간에 빈자리가 점점 늘어간다. 젊은 세대들이 교회를 떠나며 복음을 외면하고 있다. 이는 분명 이 시대를 향하여 끊임없이 복음을 전해야할 교회의 소통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복음의 소통은 그 시대의 언어를 통해 이루어져 왔다. 마치 선교지에서 그 곳의 언어를 통해 복음을 전할 때 효과가 있듯이 복음도 시대에 따른 언어, 즉 그 시대의 미디어를 통해 증거되어 왔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음성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던 최초의 복음이 필사 미디어를 통해 소아시아 지역으로 확대되어 전달되었고, 종교개혁 시대에는 복음이 인쇄 미디어를 통해 온 유럽으로 증거 되었다. 또한 영상 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교회는 이제 영상 미디어를 통해 세계 곳곳, 오지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달해 왔다. 그리고 이제 우리 앞에 새로운 미디어 환경, 곧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개인의 삶 깊은 곳까지 도달할 수 있는 소셜 미디어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물론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대한 반작용과 부작용은 역사적으로도 늘 존재해 왔다. 필사 미디어를 거부하며 신비적인 계시를 받아야 한다던 영지주의 논쟁, 인쇄 미디어를 거부했던 구교(가톨릭) 등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끊임없는 반작용이 있었다. 특히 면죄부 발행을 위해 사용되었던 인쇄 미디어, 세속의 문화를 전파하는 도구가 된 영상 미디어 등 새로운 미디어의 무분별한 사용은 지금도 수많은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 속에서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이 있다. 새로운 미디어 시대의 도래는 곧 복음 증거의 기회이며 새로운 부흥의 시대를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필사 미디어 통해 전해진 복음으로 인한 초대교회 부흥, 인쇄 미디어를 통한 종교개혁의 부흥, 영상 미디어를 통해 가능해진 세계 복음화와 부흥을 보라! 이처럼 복음은 시대를 초월하여 그 시대의 언어를 통해 놀랍게 확산되었고 영적 부흥을 이루어 내었다. 그리고 또 반드시 부흥을 이루어 낼 것이다.

이제 우리 교회들의 손에 새로운 시대의 언어, 소셜 미디어가 쥐어졌다. 이 새로운 언어는 교회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서재를 넘어 개인의 침실까지 복음을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소통의 기회와 방법을 열어주었다. 실제로 필자의 교회에서는 SNS를 통해 복음을 날마다 전하고 나아가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함께 복음을 나누는 일들이 가능해졌다. 그러다 보니 날마다 모이고 함께 떡을 떼는 초대교회의 모습이 요즘 필자의 교회의 모습 속에서 보이는 것을 느끼곤 한다. 복음, 하나님 말씀은 살아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이 시대에도 확장될 것이며, 정복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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