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강인춘
만주에 이주해 살던 한인들이 점점 생활범위를 넓혀 몽골지역에까지 확장되었듯이 한국교회의 몽골선교 역시 만주선교의 연장으로 시작되었다. 특히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던 내몽골(內蒙古:고비사막 이남지역을 지칭한 것으로 중국 만주의 지배를 받는 열하, 찰합니, 수원, 영하 등인데 이 지역은 만주국 설립과 함께 열하성, 흥안성에 편입되었다)이 주요 선교지역이 되었다.

몽골선교는 1925년 감리교의 최성모 목사에 의해 이루어졌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1인이었던 그는 1924년 만주 봉천에 부임하여 내몽골 지역에 선교를 전개하여 이듬해 백음태래(白音太來)에 화흥교회 설립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몽골선교에 오래 헌신하지 못하고 1926년 국내로 귀환하였고, 이와 함께 감리교회의 몽골선교는 중지되었다.

몽골선교의 두 번째 시도는 대한기독교회(후의 동아기독교)의 이현태 교사에 의해 이루어졌다. 19세의 나이로 만주, 몽골 선교를 꿈꾸고 만주로 건너간 그는 길림성에 있으면서 중국인, 몽골인, 조선인을 상대로 선교활동을 펴다가, 1930년경 주거지를 왕야묘로 옮기고 본격적인 몽골선교를 추진하였다.

그는 1936년부터 조남현 와방으로 옮겨 몽골선교에 힘을 써 신자 400여 명, 예배처소 4∼5처를 개척하면서 성경학교까지 설립하여 큰 성과를 얻었다.<기독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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