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강인춘
박태로(朴泰魯 1870~1917?)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으로 1912년 평양 장로회회신학교를 졸업(5회)하고 그해 6월 28일 황해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재령읍교회 위임목사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1912년 9월 1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조직되었고 총회 창립을 기념하여 중국 산동(山東)에 선교사 파송을 결의하였는데 이때 김영훈(金永勳) 사병순(史秉淳)과 함께 3인 선교사로 선출되어 이듬해 산동성 내양(來陽)으로 파송되었다. (제2회 총회회의록 6,8,13쪽)

산동에 도착하여 어학습득과 토착민 전도에 착수하여 1915년 총회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교인 총수 40여명에 3명에게 최초로 세례를 베푸는 성과를 얻었다. (제4회 총회회의록 10,11쪽)

그러나 산동에 도착한 후 병을 얻은 그는 1916년 병으로 일시 귀국하여 휴양하였다. 1917년 제1대 선교사가 철수한 후 사병순과 김영훈 등은 재차 선교사로 임명되어 파송되었으나 그는 병으로 눕고 말았다. 귀국한 후 병중에 있다가 별세하였다.

비록 목회자로서 많은 업적은 쌓지 못했지만 제1대 산동선교사로서 산동지방 선교에 남긴 공헌은 크며 자신의 두 동생 태화(泰化 당포교회 장로)와 태선(泰善 모동교회 장로)을 전도하여 가문 전체를 기독교화 하였다. 후에 가문 중에 경구(1903~1950, 박태화 장로의 아들) 창환(昶環 목사, 장신대학 교수, 박경구 목사의 아들) 등 목회자가 배출되었다. (기독백과)

선인(先人)들은 총회 창립을 기념하여 외지 선교사를 파송함으로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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