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신앙/ ‘거리의 목회자’ 김도진 목사] (5)노숙인 사역 시작하다
[나의 삶 나의 신앙/ ‘거리의 목회자’ 김도진 목사] (5)노숙인 사역 시작하다
  • 김도진 목사
  • 승인 2014.05.06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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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진 목사

 
노숙인과 악전고투, 희망이 싹텄다


▲ 김도진 목사는 폭력이 난무하는 청량리에 가나안교회를 개척했다. 가나안교회는 폭력배와 노숙자가 드나들면서 난장판이 되기 일쑤였다. 이래저래 경찰서와 관계가 많은 교회가 됐다.
나는 목회자로서 자질도 실력도 없었다. 인격까지 다듬어지지 않았다. 그런 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목회자의 길을 포기하려 했던 신대원 졸업반 시절을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하는 감정으로 눈물이 북받쳐 흐른다. 결국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에 내가 움직였고 사용됐다는 사실 때문에 오늘까지 죽을 각오로 충성할 수 있었다.

청량리에서 예배처소를 구하지 못하고 무조건 들어간 복덕방에서 하나님은 나의 길을 준비하셨다. “나 전도사인데, 청량리 깡패를 잡으러 왔소.” 이 말을 듣고 복덕방 주인은 자기돈 20만원으로 15평 지하방을 계약해 주었다. 밤중이라 그 지하실을 보지 못하고, 감격한 나머지 나는 그 길로 삼각산 기도처로 올라갔다.

다음날 새벽 그 지하방을 가보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건물 3층은 무당이 사는 굿당이었고, 지하실은 깡패들이 모여 작전을 짜는 곳이었다. “깡패를 잡으러 왔다”라는 말 그대로 깡패소굴로 인도하신 격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지하방을 계약해 준 복덕방 주인은 새마을 지도자였다. 이 지하실의 깡패들 때문에 동네가 불안에 떨고 있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어 고민을 하고 있던 차에 내가 시간에 맞추어 갔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침에 청소를 하러 지하방으로 갔다. 소문대로 깡패 다섯 명이 모여 있었다. 깡패들은 나를 노려봤다. 시비가 붙을 살벌함이 오가는 순간, 그 중 한 사람이 나를 알고 있었는지 나를 소개해 주기 시작했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들은 한 마디 시비를 하지 않고 철수를 하기 시작했다.

청량리는 폭력이 난무하는 곳으로 정말 살벌한 지역이었다. 더욱이 내가 망한 곳이었기 때문에 청량리에 다시 오기가 싫었던 곳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회개하고 “나 같은 사람을 위하여 평생을 몸 바쳐 살겠다”는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 하나님은 나를 통하여 이곳에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게 하기 위하여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간섭하시고 역사하셨다고 생각한다.

청량리 지하방 예배당은 이렇게 시작했다. 성도는 한 사람도 없었지만, 새벽예배를 드리며 이사야서 58장의 말씀을 강해설교했다.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 말씀이 가나안 교회 설립 취지가 되었다.

나는 매일 혼자 새벽예배를 드렸고, 새벽예배가 끝나면 매일 삼각산 기도처인 흔들바위에서 기도하고 내려왔다. 그렇게 예배를 드리고 있을 때 7일 만에 여자 성도 한 분이 찾아 오셨다. 내가 혼자 예배드리는 것을 보고는 무서웠는 지 다시 나가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고함을 쳤다.

“왜 나가려고 해, 가기는 어디로 가, 앞으로 와서 앉아.”

처음 나를 보고 무서워서 나가려던 성도는 나의 고함 소리에 더 놀라 앞으로 와서 앉아 예배를 드렸다. 매일 혼자서 예배를 드리다가 두 사람이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또 어느 날 새벽예배를 마친 후에 노숙자 부부가 찾아 왔다. 겨울이라 형색이 말이 아닐 정도로 형편없는 상태였다. 노숙자 부부에게 3일 후에 오라고 설득을 하고 나는 바로 교회 바닥에 보일러를 깔기로 했다. 내가 부흥회를 인도하러 청송기도원으로 가 있을 때, 보일러 작업을 확인하기 위하여 전화를 했다. 그런데 거지들이 찾아와서 난리를 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집회를 마치고 금요일 저녁에 교회에 도착해 보니 말대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그 난장판을 보며 노숙인 사역을 결심했다. 가나안교회는 청량리에서 유리하는 빈민을 위하여 양식을 나누어 주고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기 시작했다. 쌀이 없었기 때문에 수제비를 주식으로 삼아서 노숙자들과 함께 먹었다. 반찬은 가락동 시장에서 채소를 다듬은 후 버려진 것을 주워다 먹었다. 그리고 매일 새벽 5시, 오전 10시, 오후 2시, 저녁 7시 연속으로 집회를 시작했다. 청량리 역전 거지, 시장의 노숙자를 교회에 데리고 와서 장의자에서 그들과 함께 잠을 잤다. 그들은 끝없이 싸웠다. 부딪히기만 하면 욕하고 싸웠다. 거지 세계에도 조직이 있어서 동냥해 온 것을 갈취한 자들이 있었다. 그들과 싸워야 하는 것이 내 사역이었고,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었다. 이후 10년 동안 집을 가지 않고 그들과 같이 먹고 자면서 생활을 함께 했다.

가나안교회의 노숙인 사역은 이렇게 시작했다. 그 이후 28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고, 결국 교회가 승리하였다. 하나님은 가나안교회 예배를 통해 만사를 형통하게 하여 주셨다. 가장 악한 자를 선한 자로 변화시켜 주셨다. 우리 교회를 힘들게 했던 자들이 이웃이 되었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폭력 조직도 사라졌다. 마약범과 연장을 들고 설치던 깡패가 회개하고 목사가 되어 집회 강사로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은 열심히 하는 복음의 일꾼이 되어 있다. 그는 나를 아버지 목사님이라 부르고 있다.

목회는 순교자의 자세로 하여야 함을 느낀다. 그 힘도 날마다 주님이 공급하여 주신다. 주님은 어려울수록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주님 향하여 목숨을 바치면 살아나는 역사가 성경 속에 약속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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