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타계로 세상 분노는 커졌다

 

내 나이 77세다. 필자는 1938년 12월 일제 암흑기에 일본 나고야에서 아버지 김상용과 어머니 이분이 사이에 차남으로 출생했다. 왜 그 곳에서 출생하게 됐는지 나는 모른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일본에서 출생했고 여덟 살까지 거기서 살았다.

일본에서의 기억은 사이렌이 울리면 방공호에 가족과 같이 대피한 것과 지진이 나면 어머니의 손을 잡고 길 건너 대나무 밭에 대피한 기억 밖에 없다. 나의 할아버지 김성숙 옹은 3·1운동에 가담하셔서 옥고를 치르신 독립군이셨고, 나의 아버지 역시 애국자로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내에서 독립운동을 도우셨던 분이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독립의 기쁨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본 생활을 마치고 경남 함안의 아버지 고향 땅을 밟은 것이 여덟 살 때였다. 지리산 밑의 시골이었다. 전염병과 기근에 시달려 신발을 신은 아이도 없고 쌀밥도 없는 비참한 삶을 살아갈 때였다. 전쟁 후의 질병은 온 부락을 휩쓸었고 시체가 얼마나 실려 가는지 셀 수도 없었다. 우리 가족도 병에 걸렸다. 나는 살았지만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어느 날 아침 냇가에서 세수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어머니께서 나를 불렀다. “도진아, 도진아~” 계속해서 나를 부르신 기억이 난다. 전염 병 때문에 새끼줄이 집집마다 쳐져 있었고 아버지는 내게 어머니 곁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셨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몸에 머리는 산발을 하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모른 체하고 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머니의 음성을 들은 것은 그 날이 마지막이었다. 언제 장례를 치렀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마을 일을 도맡아 하셨는데 사람이 죽으면 ‘천보’라는 늙은 총각과 함께 지게로 시체를 운반해서 산에 매장하셨다. 나의 어머니도 가마니에 싸여서 천보라는 늙은 청년의 지게에 실려 매장되셨다.

내 인생은 그 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치마폭에서 자라나야 할 시기에 어머니의 타계는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했다. 사람들을 볼 때마다 분노가 치솟았다. 감사, 축복, 용서라는 단어 자체를 몰랐다. 잠시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나와 아무 관계도 없었고 왜 사는지, 왜 살아야하는지도 모른 채 그 날 그 날 살아갔다. 나의 생이 이렇게 비참하게 망가질 줄은 몰랐다.

함안에서 중학교 과정을 마친 후 부산으로 무작정 떠났다. 학창시절 중학교 때부터 반장을 하고, 전체학생회장도 맡았지만, 함안은 내가 살기에 너무나 좁은 곳이었다. 아무도 없는 부산으로 가서 광성고등학교에 다니던 때, 내 삶에 결정적인 시련이 찾아왔다. 4·19혁명이다.

나는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4·19운동에 참가했고 졸업 몇 개월을 앞에 두고 지명수배를 받아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여기 저기 도망을 다니다가 생각한 것이 군 입대였다. 병무청은 나를 받아주지 않았지만 면사무소 병사계를 찾아가서 무조건 입대시켜 달라고 협박했다. 결국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논산훈련소로 떠났고 군복무를 시작했다. 내가 군복무를 거의 마쳐 갈 무렵 존경하고 사랑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 때문에 속이 많이 썩어서 속병으로 돌아가신 것이다.

나는 지금도 부모에게 효도하지 못한 것이 평생 한으로 남아있다. 교회를 개척하고 노숙인 쉼터를 운영하면서 오갈 곳이 없어 찾아오시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나의 부모님 생각이 난다. 지금 우리 쉼터에는 65세 이상 어르신들이 예순 분 정도 계신다. 한 때는 나라와 민족과 가족을 위해서 헌신하셨던 분들이다. 나는 이 분들을 통하여 부모님께 하지 못한 효도를 늦게나마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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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진 목사는 격정의 삶을 살았다. 청년 시절 알코올중독에 빠지고 깡패로 밑바닥 인생을 살았다. 40대에 하나님을 만나 자신과 같은 밑바닥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로 거듭났다. 청량리588 한 가운데에 가나안교회를 세워 무수한 위협과 협박을 받으면서도 노숙자와 부랑자 출소자 깡패 등을 주님께 인도했다. 최근 경기도 파주에 노숙자 자활자립시설을 건립해 노숙자들의 안정된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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