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강인춘
한국 교회가 은혜롭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무서운 시험이 생겼다. 1894년 4월 7일 한석진 조사와 감리교회의 김창식 전도인이 평양감사 민병석(閔丙奭)에게 체포되었다. 한석진 전도사는 삼일기도회 인도 중에 포졸에게 구금되었다. 이때 송인서, 최치량, 신창호, 우지룡 등도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다.

그중에서 고문에 굴복하여 배교를 약속하고 풀려 나온 자도 있었으나 한석진과 김창식은 끝까지 버티었다. 평양감사는 하늘을 향해 하나님을 욕하면 놓아 주겠다고 망발하자 한석진은 오히려 평양감사를 향해 호통을 치면서 그의 불의를 꾸짖었다. 이에 감사는 대노하여 한석진을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하였다.

사태의 위급을 느낀 마펫 선교사는 급히 서울로 올라가 고종황제의 시의(侍醫)였던 스크랜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미·영 공사에게 구원교섭을 요청하였다. 그래서 고종의 어명으로 한석진은 무사히 구출됐다. 평양감사는 손해배상 500냥을 교회에 지불함으로 평양에서의 선교 박해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후에는 선교 활동을 보장받았다.

이 사실은 옛날 바사에서 간신 하만의 흉계로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이 몰살될 위기에서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고 대결한 결과 오히려 하만이 죽고 유대인에게 해방의 부림절이 된 역사적 사실의 현대판이라고 하겠다. (교회사총람)

예나 지금이나 진리(요 14:6)는 항상 살아서 역사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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