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섬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의 통치를 기뻐하는 아름다운 피조물로 시편에 종종 등장합니다. 또한 주의 제자들이 복음을 들고 찾아가야할 땅 끝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마침 2014년은 UN이 정한 ‘작은 섬, 개발도상국의 해’인 동시에, 이 땅에 섬 선교의 중대한 획을 그은 낙도선교회가 설립 3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입니다. 외롭고 고달프지만 그래서 더욱 빛나는 섬마을의 복음사역, 국내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그 아름다운 사역의 현장을 찾아가며 새해를 엽니다.


땅이 끝나는 곳에 사는 사람들

▲ 낙도는 복음이 찾아가야 할 또 하나의 땅 끝이다. 사진은 전남 신안군 도초면 동소우이도에 소재한 동리교회의 풍경. 사진제공-최종민(한국섬선교회 대표목사)

낙도단상 광대도의 김정남 아저씨, 양덕도의 문막단 할머니, 금죽도의 곽수업 할머니, 이는 한 세대뿐인 섬과 주민 이름이다. 수항도, 주지도, 소각시도, 송도라는 섬에는 두 세대만이 살고 있을 뿐이다.

한국섬선교회에서 지난 12월 초순 기준으로 조사한 섬 통계에 의하면 사람 한 명이 사는 섬은 9개, 두 명은 13개로 나타났다. 10명 미만은 51개이다. 전체 유인도(398개)의 42%인 170개 섬도 고작 50명 미만에 그치고 있다. 평균 인구가 315명으로 제법 크게 보이지만 울릉도와 백령도 등 큰 섬 몇 개를 제외하면 100여 명 정도다. 교회는 252개 섬에 모두 544개가 있다. 나머지 146개 섬에는 아직 교회가 없다. 이는 전체의 37%로써 세 개 중 한 곳은 교회가 없는 셈이다. 무교회 섬의 평균 인구는 24명이다.

땅이 끝나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바다가 시작된다. 그래서 주께서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되리라’고 말씀하실 때 땅 끝이 바로 섬이라는 것을 암시하지 않으셨을까 생각해 본다. 요즘처럼 거친 바람 속에서 인구 극소수의 무교회 섬을 찾아 나서는 방주호 뱃길에서는 더욱 그렇게 믿고 싶다.
최종민(한국섬선교회 대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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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 찾아야 할 사람이 있다”

‘등대 1호’ 타고 매월 2번 무교회섬 24곳 방문, 5년째 자비량 사역

완도한빛교회 이상현 목사

한국의 땅 끝은 전남 완도라고 한다. 완도에서도 가장 남단에 자리 잡은 망석리에 한빛교회 담임 목회와 섬선교를 병행하고 있는 이상현 목사가 있다.

경북 의성이 고향인 이 목사는 서울에서 부목사 사역을 하던 중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1995년 완도로 내려왔다. 이 목사는 “낙도로 내려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했다. 절해고도로 향하는 줄 알고 모든 것을 포기했던 이 목사는 다행히 완도가 섬이기는 하지만 육지와 연결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처음에 한 성도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서울과 완도를 매주 왔다 갔다 했다. 80만원을 주고 두 번째 예배처소를 얻어서 정착을 하려했을 때 지켜보던 주민들이 드디어 집단행동을 개시했다. 마을회의까지 열어서 완도에서 떠나라고 요청해왔다.

 이 목사는 심적으로 크게 위축됐으나 마을 일을 거들어 가면서 인심을 얻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이 목사가 뜨내기가 아니라 살려고 작정하러 온 사람이란 믿음을 심어주면서 마을 사람들의 경계심은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 현재의 한빛교회를 2003년에 건축하기까지 이 목사는 무려 6번이나 예배당을 이전했다. 한때 중고등부가 30명이나 출석했던 적이 있었지만 점차 서울로, 대처로 이전해 가고 지금은 10여명이 출석하는 미자립 상태로 남아있다.

교회 부흥에 대한 부담감이 늘 있는 가운데 이 목사가 5년째 쉬지 않는 귀중한 사역이 또 하나 있다. 하나님의 애초의 부르심에 온전히 부응하기 위한 낙도 선교이다. 이 목사는 분당중앙교회(최종천 목사)에서 선사한 ‘등대 1호’를 타고 매달 2번씩 완도군 지역의 무교회섬 24군데를 찾아가고 있다. 짧게는 1시간, 길게는 2시간 이상 바다 위를 달려 노방전도와 가정심방을 한다. 떡과 요구르트, 칫솔 등의 소소한 간식과 생필품을 들고 간다.

▲ 완도한빛교회 이상현 목사(왼쪽)와 ‘등대 1호’ 선장 문용학 집사가 선교선 앞에서 낙도복음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여러 차례 완강히 거부하다가 예수님을 믿게 된 할머니가 우도에 살고 계셨는데, 결신 후 다음에 그 섬을 찾아가니 소천하셨더라고요. 내가 전도하러 가기를 참 잘했구나하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아직까지 울타리 출입을 거부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일기가 불순한 날이면 목숨을 건 항해를 하게 되는데 섬에서 박대까지 당하면 서운함이 더욱 크다고 한다.

작년에는 배의 엔진 구입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스트레스로 뇌경색 증상이 오기도 했다. 돈을 융통해 보려고 했더니 미자립교회라서 담보도 잡힐 수 없었고 결국 서울의 낙도선교회 회장 박원희 목사가 자신의 아파트를 담보로 비용을 마련했다고 한다.

이 목사와 함께 늘 섬전도를 다니는 ‘등대 1호’ 선장 문용학 집사는 “그렇게 찾아가도 떡과 음료만 받아먹고 예수님을 안 믿겠다는 사람을 보면 얄밉다”면서 “우리 목사님은 댁으로 갖다드린 성미도 섬에 가져가실 정도로 섬기시는데 목사님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탄을 한다.

이상현 목사는 섬 선교를 하는 이유를 “거기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목사는 “섬은 날씨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곳”이라면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한 말씀의 씨를 뿌리러 계속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목사의 새해 소망은 무얼까? 섬 복음화? 그것도 있겠지만 가장 먼저 나온 대답은 완도한빛교회의 부흥이었다. “새해에는 열심히 전도할 겁니다. 2014년이 부흥의 분기점이 되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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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보자 하다가 정이 들었네요”

은퇴 후 낙도 사역…태풍 피해 후 전국교회 후원으로 열정은 더 단단해져

생일도금곡교회 이점호 목사

생일도의 겨울바람은 육지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억세다.
산기슭에 자리 잡은 금곡마을은 생일도 다섯 부락 중에서도 작은 편에 속한다. 가옥들은 수십 채를 헤아리지만 빈집도 많고, 거의가 70대 이상 노인세대들이다. 마을 중앙의 교회당 앞에 토박이 복색의 노인 한 분이 추위를 아랑곳 않고 마중 나와 있는 게 멀리서도 눈에 띈다.

짐작한대로 그가 바로 이점호 목사(78세)이다. 부임한 지 햇수로 6년째, 그는 겉모습부터 완연히 섬사람이 되어있었다. 은퇴 직전까지 함평중앙교회라는 규모 탄탄한 공동체에서 시무하며 신사의 풍모를 자랑하던 모습을 좀체 찾아보기 어려웠다.

은퇴 후 이 목사는 경기도 용인으로 이사했다. 원로목사로 현역을 마쳤기에 생활에 큰 부담도 없었고, 얼마든지 자녀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편안한 여생을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휴식은 짧았다. 주님이 그를 다시 사역 일선으로 호출하신 것이다.

▲ 생일도금곡교회를 지키는 이점호 목사와 백경자 사모 내외. 편안한 노후를 뒤로 하고, 다시 받은 사명으로 머나먼 낙도까지 찾아와 섬긴다.
후배의 간곡한 당부로 생일도에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빈 교회 강단을 두어 달 지키다가 후임자에게 넘겨주면 임무가 끝날 것이라 짐작했다. 오산이었다. 산 넘고 물 건너 이 낙도교회를 섬기겠다고 찾아오는 이는 도무지 나타나지 않았다.

열 명 안팎의 교인들과 오순도순 나누던 정을 외면하고 떠날 자신이 없었다. 손주처럼 정성껏 키워온 다섯 명의 주일학교 아이들 역시 눈에 밟혔다. 혼자 살던 동네 이웃이 돌연사했을 때,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시신을 손수 팔 걷고 염해 준 것도 이 목사였다.

그런 이 목사에게도 딱 한 번 섬을 떠날 위기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바로 재작년 여름, 태풍 볼라벤이 엄습했을 때의 일이다. 태풍은 예배당과 집기들까지 죄다 쓸어갔다. 설상가상 아내 백경자 사모는 당시 날아온 파편에 이마를 크게 다쳤다. 풍랑으로 뱃길이 일주일 이상 끊기며, 그 사이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을 수 없었다.

교회당도 사라지고, 재정은 십 원 한 푼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늙은 목회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대체 무엇일까. 하소연이라도 하려고 연락한 어느 지인은 “뭐 하러 그런데 계십니까. 얼른 포기하고 나오세요!”라는 타박으로 말을 끊었다. 동네에서도 이제 교회는 끝장났다고 수군거리는 것만 같았다.

마음이 무너져 내렸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결심을 세우고 길을 나섰다. 평소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한 번 한 적 없었던 이 목사가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머리를 조아리고, 허리를 굽히는 모습은 당사자에게도, 지켜보는 이에게도 뭉클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 겸손과 열정이 결국 교회를 다시 일으켰다.

금곡교회 교우들은 올 겨울을 ‘지진이 나도 끄떡없을’ 튼튼한 교회당에서 따뜻하게 날 수 있게 됐다. 전국 각지에서 답지한 성금과 수많은 이들의 헌신적인 수고 덕택이라며 이 목사는 공을 다른데 돌리지만, 사람들은 안다. 사라질 뻔 했던 섬 교회가 어떤 눈물과 정성으로 지탱될 수 있었는지를.

“이마에 열 두 바늘을 꿰맨 아내가 ‘하나님 앞에서 훈장하나 받았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합니다. 저도 같은 마음으로 이 섬을 지킬랍니다. 받은 은혜를, 사랑의 빚을 언제 다 갚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힘이 남아있을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야겠죠.”

허허롭게 웃는 노목사의 표정이 교회를, 섬마을을 곱게 물들이는 것 같았다. 그 표정과 더불어 생일도에서는 새해에도 새생명을 위한 하늘의 잔치가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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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복음화 뱃길 열어간다

낙도선교회 30주년…묵묵히 낙도 오지 전도사역 진력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는 상황 속 끝없는 기도·후원 필요

전 세계에서 섬이 가장 많은 나라는 인도네시아로 1만3667개이며 그 다음은 필리핀으로 7000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도 그에 못지않게 많은 수의 섬이 있다. 무려 3080개이며 사람이 사는 섬도 436개에 달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유인도 모든 곳을 전도자들이 복음을 들고 한번 이상씩은 방문을 했다는 것이다. 교회가 세워진 곳도 293개에 달한다. 화려한 예배당, 점점 더 많은 성도, 권력과의 친분관계가 한국교회의 자랑이 되어버린 또 다른 편 그늘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한 곳이라면 묵묵히 그 어디든지 달려가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낙도선교회(대표:박원희 목사)가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화려한 축하행사 계획은 전혀 없다. 올해도 예정한 대로 교회와 젊은 대학생들과 함께 낙도 오지를 방문할 것이며, 경제적 어려움과 핍박에 당면한 섬 사역자들을 돕기 위해 교회에 기도를 부탁할 것이다. 그것이 창립 취지를 지키는 것이며 그것이 섬 복음화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낙도선교회는 1984년 정식 설립을 알렸지만 활동의 기원은 그보다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3년부터 총신대 학생들은 섬을 찾아가 전도하기 시작했다. 개별적이며 자발적이었던 순수복음운동은 학생들이라는 연약한 이들이 주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계속됐다. 학생들은 10년 뒤 정식으로 선교회를 발족시켰으며 총신대와 총신신대원 뿐 아니라 칼빈대, 성서대, 고신대, 대구신대 학생들까지 취지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1990년 들어 첫 번째 섬 사역자가 파송됐으며 수많은 오지 목회자와 한국교회 지도자들을 배출했다. 30년 동안 교회 성도들을 제외하고 신학생만 1만1000여명이 낙도선교의 행렬에 동참했다. 낙도선교회는 현재 36명의 섬 사역자들과 네트워크를 가지고 이들을 돕고 있다.

그러나 낙도선교회가 사역자들에게 대단한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것은 아니다. 해외선교나 신도시 개척교회 설립과 달리 배를 타고 여러 시간을 가야 하는 국내 사역지인 낙도를 위해 후원을 하는 교회를 찾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섬의 전도 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고 있다. 무인도가 되어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청장년은 물론, 어린이를 찾아보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큰 섬도 있지만 대부분 2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고 이 가운데는 단 2명만 사는 곳도 있다.

목회자의 정기적인 사례는 꿈도 꾸지 못하고 무엇보다 목회자 자녀들의 교육이 큰 걱정이다. 목회자들을 위한 재교육과 충전의 기회도 없기 때문에 영성 고갈이라는 병에 빠지기도 쉽다. 한편 섬 선교에 참여하는 젊은 대학생과 신학생들의 숫자도 줄고 있다. 땅 끝에 홀로 서기를 꺼리는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한마디로 섬 선교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끝없는 기도와 물질의 후원이 필요하다. 분당중앙교회(최종천 목사)가 복음선 1, 2호를 기증한 것과 최근 구미상모교회(김승동 목사)가 섬 전임 사역자를 파송키로 한 것은 매우 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총회와 노회 차원에서도 오지와 섬 선교 사역자들을 위해 기본생활비를 지급하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섬 선교의 역사는 한국교회의 태동과 맥을 같이했다. 제1호 목회자이자 선교사인 이기풍 선교사의 사역지가 바로 제주도였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백령도 중화교회 담임이었고 토마스나 귀츨라프 선교사는 고대도와 백령도에서 복음을 전했다. 100년 전 선교사들과 신앙의 선배들이 뿌린 씨앗의 열매를 오늘의 한국교회가 거두고 있는 것이라면 2014년의 한국교회는 100년 후를 위해서 다시 한 번 땅 끝에 서는 정신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낙도선교회 대표 박원희 목사는 “낙도선교회는 항공모함을 모터로 움직이는 것 같이 사역하고 있다”면서 “어려움이 많지만 하나님이 세워주신 사역이니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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