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인생은 크건 작건 간에 ‘고난’이라는 숙명과도 같은 담벼락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럴 때면 “도대체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 “왜 나에게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가?”라는 한탄어린 질문을 곧잘 합니다. 그럼에도 여기에 대한 답을 찾기란 예나 지금이나 쉽지는 않습니다. 각자가 겪는 고난은 그만큼 무겁고 아프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개 그 고난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쩌면 그것은 오직 그 고난의 한 가운데에서 맨몸으로 맞선 이후에 느낄 수 있는 은혜입니다. 피하거나 물러서 버리면 느낄 수 없는 일종의 고난 뒤의 카타르시스일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은 위장된 하나님의 축복’이라 하는지도 모릅니다.
2013년 한 해의 끝자락에서, 그 누구 못잖게 큰 고난을 당했던 분들을 여기에 소개합니다. 이들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뉴스의 한 가운데 있었던 아이 둘과, 청년실업이라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온 몸으로 겪어내야 했던 청년입니다.
단 한 번뿐인 단막극과 같은 인생의 무대에서 만나는 이들의 모습은 우리가 겪었던, 겪어야할 우리의 삶을 직간접적으로 대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삶에서 인생의 본질, 더불어 살아가는 인생의 맛, 다시금 용기 내어 걸어갈 힘을 얻는 인생의 아름다움을 느껴보는 의미 있는 송구영신이 되기를 기대합니다.<편집자 주>



 “이 깊은 상처, 언젠가 꽃이 될거야”

사고로 가족 4명 잃고 이모집서 생활…천진한 아이로 조금씩 회복 중

▲ 지난 6월 캄보디아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던 고 방효원 선교사 생전의 가족 사진. 아빠의 품에 안겨 있는 두 아이가 다은이(왼쪽)와 다정이다.
쉽지 않은 만남이었다. 만남의 대상은 지난 6월 18일, 캄보디아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큰 충격을 던져 주었던 고(故) 방효원·김윤숙 선교사 가족 중 생존자인 다은(11)이와 다정(4)이기 때문이었다. 이번 사고로 다은이와 다정이는 아빠와 엄마, 언니와 오빠 모두 네 명의 가족을 잃었다.

엄마 아빠와 가족을 잃은 아이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할지 난감 그 자체였다. 하지만 2013년 한 해를 지내면서, 다은이와 다정이만큼 큰 고통을 겪은 사람도 드물기에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용기 내어 경남 거창으로 향했다.

다은·다정이는 현재 거창에 있는 둘째 이모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이의 보호자로 외할머니와 외삼촌이 함께 이곳으로 내려와, 한 지붕에 8식구가 살고 있었다. 때마침 다은이는 미술학원에서, 다정이는 어린이집을 막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다은이의 안내를 따라 이모집으로 들어갔다. 둘째 이모의 또래 두 아이와 정신없이 노는 다정·다은이를 두고 사고 직후부터 아이들과 함께 했던 외할머니와 외삼촌과 대화를 이어갔다.

다은이는 이번 사고로 왼팔을 잃었다. 다행히 고관절 수술이 잘 돼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완치되었다고 했다. 조만간 왼팔에 의수도 착용한다고 했다.

사고 직후 뇌출혈로 뇌에 피가 고여 의식불명이었던 다정이도 수술이 잘 되었단다. 다행히도 다은이는 뇌출혈 외에 외상은 전혀 없었다.

인터뷰 내내 방과 거실을 오가며 소란을 피우며 뛰어 노는 두 아이에게서 영락없는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이 애들도 사람인지라 불쑥불쑥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한다. 다은이는 사춘기와 겹쳐 신경이 점점 예민해지는가 하면, 서러운 일을 당할 때면 부모를 잃은 신세한탄을 하곤 한단다. 다정이는 아직 어려 표현을 못하다보니 밥을 먹고도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먹을 것을 달라고 무작정 떼를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이 모두 치료를 요하는 정도는 아니며, 본능적으로 위험을 받아들인 상태라 잘 이해하고 기다려 준다면 나아질 것이라는 진단을 받은 상태다.

▲ 다은이와 다정이는 지금 경남 거창에 있는 둘째 이모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외할머니와 이모와 함께 사진을 찍을 때 천진난만하게 브이(V)를 그리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예컨대 이모나 삼촌한테 혼날 때는 자신의 처지를 두고 울면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모습을 보면, 여전히 속에는 가족을 잃은 충격과 아픔은 가슴 깊숙이 남아 있다. 하지만 정상 아닌가? 어린아이답게 어리광도 부리고 떼를 써야 정상이지, 너무 점잖게 굴면 보는 이로 하여금 더 마음이 무너지지 않겠는가?

다은이는 현재 꿈 많은 나이다. 병원에서건 어디서건 친구를 쉽게 사귄단다. 캄보디아 귀국 후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만난 아이와 친해지면서 나이가 차면 함께 걸그룹을 만들자고 약속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고 직후 다은·다정이를 처음 품에 안은 외할머니와 삼촌은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사태가 마무리되고, 생존한 두 아이가 잘 자라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나이가 어려 합리적인 이야기나 꿈을 이야기할 때는 아니다. 그래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가끔씩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 천국 가서 꼭 만날 거다”는 표현을 하는 것을 보면 가족에 대한 애틋함과 좋은 추억이 남겨져 있는 것이다.

다은이와 다정이. 언젠가는 왜 부모가 캄보디아에 갔는지, 무엇 때문에 자신들이 고난을 당했는지, 그래서 자신들이 하나님을 위해, 먼저 천국에 간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을 때가 올 것이다.

그래서 기대해 본다. 2013년 6월의 고난이 일생의 짐이 아니라, 아름다운 복음의 꽃을 활짝 피우기 위해 가지를 친 잠시의 아픔이기를 말이다. 그리고 기대해 본다. 생존한 다은·다정이가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한국 교회가 관심을 갖고 기도하고, 관심을 가져주기를 말이다.

고(故) 방효원 김윤숙 선교사 가족 인터넷 추모관 - http://banghyow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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