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환 편집국장

한국전쟁이 치열했던 1950년 12월, 영하 20~3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 속에 진행된 흥남철수작전은 세계 전쟁역사상 가장 극적인 철수작전이었다. 그해 12월 12일 시작돼 12월 24일 끝난 이 철수작전은 193척의 함정이 동원돼 군인 10만 5000여 명과 35만 톤의 장비, 그리고 9만 8000여 명의 피란민이 대피했다. 당시 철수작전에 계획에 없던 민간인이 포함된 것은 미군이 북쪽의 기독교인들을 피신시킨 것이 단초였다. 이 작전은 희생자 없이 성공적으로 마침에 따라 한국판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불린다.

영화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1944년 겨울 발지대전투, 벨기에 국경 근처 휘트르겐 숲 열두 살 프리츠 벤켄의 오두막집에는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두고 지치고 부상당한미군 병사 셋과 독일병사 넷이 잠시의 시차를 두고 찾아든다. 긴장 속에 서로 총을 겨누는 병사들에게 벤켄의 어머니는 평강을 위해 오신 아기 예수를 상기시키며 함께 음식을 나눌 것을 제안한다. 지친 병사들은 어머니의 설득에 총을 내려놓고 함께 음식을 먹으며 부상한 병사를 치료해 주고, 안전하게 돌아갈 길까지 가르쳐 준다. 크리스마스가 부른 기적이었다.

제1차 대전이 시작된 1914년 벨기에 이프르 벌판,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영국군과 독일군이 대치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독일군 진영에서 시작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총성을 멈추게 했고 참호를 촛불트리로 장식했다. 그들은 축구시합을 하고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휴전은 단 하루였지만 크리스마스가 연출한 또 하나의 기적이었다.

캐나다 저가 항공사인 웨스트제트는 얼마 전 토론토에서 해밀턴 공항으로 가는 탑승객들에게 탑승 전 이번 성탄절에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한 탑승객들은 공항 수화물 게이트에서 자기가 원했던 선물을 받고 감동했다. 항공사가 만든 광고성 이벤트였지만 감수성이 메마른 이 시대에 훈훈한 감동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각박했던 마음들을 풀고 금년 성탄절, 우리 주변에서도 작은 기적들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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