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팽팽한 긴장은 시민들의 편안한 밤이죠”

24시간 계속되는 주말근무 …필요한 곳 어디든 ‘총알같이’
현장과 사투 벌이고 동료들과 무사히 복귀할 때 가장 보람

연말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요즘이다. 수많은 인파와 화려한 불빛이 겨울밤을 수놓는다. 서울시 광진구에서 가장 번화한 건국대 앞 먹자골목도 마찬가지다. 손을 꼭 잡은 연인마다, 어깨동무한 친구끼리 온정을 나누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중이다.

같은 시각, 불과 1km도 떨어져있지 않은 장소에서 전혀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오히려 연말연시라 긴장감이 배가 된다. 화려한 겨울풍경 사이로, 안전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365일 24시간 깨어있는 광진소방서(김위환 서장) 소방대원들 이야기다. 지난 주말, 서울시민의 밤을 지키는 이들의 밤샘 근무 현장을 찾았다.

광진소방서 소속 직원은 총 336명. 구의119안전센터, 119구조대, 상황실 등 부서별로 나눠 화재진압대원, 구급대원, 구조대원들이 서울시민 안전에 첨병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관할지역은 광진구와 성동구지만, 타지역 지원출동도 빈번하게 나간다.

근무는 3교대로 꾸려진다. 주간 근무조는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야간 근무조는 저녁 6시부터 다음날 9시까지다. 여기에 주말근무는 24시간 동안 진행된다. 왕성한 체력을 자랑하는 대원들도 힘든 나머지 손사래 치는 근무인 셈이다. 기자가 방문한 이날도 주말 근무자 36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구의119안전센터 팀장 김명진 소방위는 “아무래도 주말근무가 매우 힘들죠. 밤을 지새우는 것도 그렇지만, 그 시간동안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보니 더욱 그렇겠죠”라고 말했다.

잠시 휴게실에서 최인호 에세이를 읽고 왔다는 넉살 좋은 인상의 달변가 현우철 소방장을 마주했다. 경력 20년을 넘긴 베테랑 화재진압대원에게 밤샘 근무를 보내는 노하우를 물었다.
현우철 소방장은 “언제라도 신속하게 출동할 수 있도록 상황실 지시에 예의주시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래도 짬나는 시간에 저처럼 책을 읽기도 하고, 쪽잠을 자기도 하고, 소방 관련 자격증 공부를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다. 소방서만큼 바쁜 곳도 없기 때문이다. 화재진압 외에도 응급수송, 위치 추적, 가정집 문 개방부터 하다못해 애원동물이 아파도 소방서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더구나 요즘 같은 겨울철에는 화재사고가 다른 때보다 많아 대원들의 신경이 곤두서있다.

▲ 광진소방서 소방대원들이 한국전력 왕십리변전소 화재현장에 출동해 화재진압을 하고 있는 모습. 소방대원들은 서울시민의 안전과 재산을 지켜주는 고마운 이들이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안전 사각지대에서 급박한 상황을 겪기도 한다.
“긴급 출동! 긴급 출동! 송정동 폐차장 화재 발생, 송정동 폐차장 화재 발생” 경적을 깨우는 사이렌 소리가 관내에 울려 퍼진다. 그 순간 어디에 있든 소방대원들은 50초 만에 소방차에 탑승한다. 반사적으로 튕겨나가는 격이다.

지난주 발생한 송정동 폐차장 화재현장에서 광진소방서 화재진압대원들은 거대한 화염과 사투를 벌였다. 화점을 찾던 대원들, 결국은 가장 뜨거운 지점까지 들어가고야 말았다. 물이 증발하는 현상마저 보이는 불기둥 속에서 온몸을 파고드는 고통이 찾아온다.

대원들은 “귀불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낀다”고 했다. 그럼에도 만약 그 안에 사람이 있었다면 몸에 물을 뿌리고 불속으로 뛰어들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것이 바로 소방관의 숙명이라면서 말이다.
생명이 오가는 위험 가까이 있는 소방대원들, 그들은 동료를 먼저 보낸 슬픈 기억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현우철 소방장은 같이 일하던 선배를 불속에서 잃은 기억을 살며시 꺼냈다.

“가장 아픈 순간이었어요. 저도 이런데 선배 가족들 심정은 오죽하겠습니까. 소방관처럼 힘든 직업이 없습니다. 순직한 소방관 가족들을 위한 보상이 개선되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
겉으로는 건장해 보이지만 사실 현역에 있는 소방대원들의 몸도 성치 못하다. 광진소방서 대원 대부분도 고질적인 직업병을 안고 살아간다. 구급대원 김일환 소방사에게 보다 소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김일환 소방사는 “허리가 안 좋은 것은 보통이고, 근육이 항상 긴장된 상태에서 있다 보니 근골격질환에 시달리는 대원들이 많아요. 게다가 교대근무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사선에서 동고동락하는 소방대원들, 그들의 동료애는 참으로 애틋했다. 위기의 순간 믿고 의지할 사람은 그들의 손을 붙잡고 있는 동료뿐이기 때문이다. 이날 밤 광진소방서에서도 느껴졌다. 묵묵하게 일을 하고 있는 가운데에도 서로를 바라보는 남다른 눈빛을 말이다.

광진소방서 대원들은 밀어주고 끌어주는 동료가 있기에,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기에 언제나 보람차고 소방관이라는 직업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김일환 소방사는 “환자를 병원으로 옮기고 나서 호전됐다는 소식을 들을 때”, 구조대원 김대환 소방사는 “한 가족을 지켜줬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명진 소방위는 “밤을 새우며 화재진압을 하고, 고생한 대원들과 본부로 복귀할 때 가장 보람찹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팀장답게 시민들은 향한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모든 사고는 사소한 부주의에서 시작됩니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화재나 다른 사고를 줄일 수 있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길, 몸도 마음도 든든해졌다. 밤을 지키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의 겨울이 더욱 더 따스하고 아름답지 않을까. 지면을 통해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광진소방서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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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같은 남자들도 가족만 생각하면…

새해에는 소방관 근무여건 나아지길 기대

소방대원들의 성탄·새해 소망

성탄절이 다가왔다. 그리고 이제 곧 새해가 밝아온다. 이 시점에서 광진소방서 소방대원들의 성탄 및 새해 소원을 물었다.
포문은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구급대원 김일환 소방사(사진 가운데)가 열었다. 그의 관심사는 무엇보다 결혼이었다. 그런데 결혼이 고민거리이기도 했다. 이유는 이렇다.

“아 결혼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소방서는 그야말로 남자들만 득실거리는 조직입니다. 여자는 극소수고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당차게 한 마디 덧붙였다. “사진이 나간다고 했는데, 저를 보시는 은행 병원 관공서에서 근무하는 참신한 여성분들의 많은 관심을 원합니다. 아니면 소개라도 해주세요”

일에 대한 열정을 맘껏 드러낸 대원도 있다. 광진소방서의 몸짱, 부산사나이 김대환 소방사다. “저는 구조대원이라는 제 직업을 정말 사랑합니다. 정말 노력해서 프로가 되고 싶습니다. 서울에서 구조대원하면 김대환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키고 싶어요. 그리고 부산에 계신 부모님이 건강하셨으면 좋겠고요. 동생이 천안에서 학교를 다니는데 밥 잘 챙겨먹고 공부 열심히 했음 합니다”

결혼을 한 선배 소방관들은 자신의 소원보다 가족들을 향한 안녕이 앞섰다. 고등학생 딸과 중학생 아들을 둔 김명진 소방위는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무 잘 커줘서 고맙다. 건강하고, 바람이 있다면 공부도 중요하지만, 대인관계를 잘 가졌으면 한다. 우리 아들 딸 사랑한다”

현우철 소방장은 내년 군대를 갈 예정인 아들을 떠올렸다. “아내와 자녀들이 건강하고, 특히 아들이 내년에 군대를 가는데 편한 부대를 갔으면 좋겠어요. 고생은 아빠가 대신하니까, 아들은 조금 편한 곳으로 가도 되지 않을까요(웃음)”

또한 대한민국 모든 소방대원들의 소원을 대신했다. “경찰과 교도관도 4교대하는데, 저희 소방관들은 2교대 인원을 쪼개서 3교대하고, 주말은 24시간 근무합니다. 그러다보니 가족들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새해에는 꼭 대한민국 소방관의 근무여건이 나아지기 바랍니다”

저마다 다른 이유, 다른 색깔을 가지고 새해소원에 답했다. 아무쪼록 이들 모두의 소원이 꼭 이뤄지는 2014년이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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