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흐름과 방향성

밑동 썩는 한국교회에 ‘회복의 거름’을

‘왜곡된 교회론’ 공동체성 회복·영성 회복·교리교육으로 바로 잡아가야

2014년도를 불과 20여일 앞두고 새해 한국교회 목회 흐름을 분석하는 기획 ‘2014 새해 목회 트렌드’를 2회 걸쳐 다룬다. 첫 번째 기획은 그동안 한국교회 내부에서 논의됐던 자기반성과 진단을 토대로, 바람직한 교회상을 정립하려는 목회 흐름과 방향을 제시한다. 두 번째 기획은 시대의 과제로 고민하면서 다음세대를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교회들의 교육목회 방향과 실천방안들을 소개 한다. 첫 기획인 <2014 새해 목회 트렌드를 말한다>는 성장주의에 함몰된 한국교회의 대안으로 떠오른 교회의 ‘공동체성 회복’, ‘영성회복’, ‘교리교육회복’을 점검한다. 새해에 교회의 순기능이 살아나고, 보냄 받은 교회로서 교회의 가치관과 본질이 회복되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최근 10년 사이 한국교회는 유래가 없었던 무수한 일들을 겪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을 꼽으라면 개신교인의 수적 감소의 현실화, 안티 기독교의 공개적 활동, 국내 유수의 대형교회에서 불거진 역기능적 모습들, 여기에 성직자인 목회자들의 추문까지 보태져 교회 내부는 물론 일반 사회에서까지 교회에 대한 위기감을 걱정하는 시대가 돼 버렸다.

그렇다고 이러한 상황에서 넋 놓고만 있지 않았다. 한국교회는 내부적으로 위기적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자가진단과 반성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안은 대부분 현실성 없는 선언적 의미에 그쳤거나, 상황을 전환시킬 실천적 노력이 뒤따르지 않았다.

위기의 상황임에도 진정한 위기로 느끼지 못하거나,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어 현실에 안주해 버리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내리는 공통된 진단이 있다. 바로 ‘왜곡된 교회론’이다. 왜곡된 교회론으로 교회의 성장제일주의 즉, 양적으로 성장만하면 된다는 성장만능주의를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다.

성장주의는 이미 실패했고, 아니 추구해서도 아니 될 것이지만 여전히 한국 교회를 휘감고 있는 거센 물줄기임에 틀림없다. 여기에는 교세가 크고, 작음이 상관없다. 크든 작든 오로지 성장을 목표로 무한 경쟁을 하고 있다 보니 천편일률적인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현실이다.

▲ 일러스트=강인춘
과도한 성장주의는 결과적으로 교회의 세속화라는 쓰디 쓴 열매를 맺게 했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보여준 교회의 세속화의 모습은 다양했다. 상식을 뛰어 넘은 사제주의, 과도한 교회 건물 건축, 심지어 교회 세습까지. 가장 보편적인 종교적 가치관으로 보아도 교회는 종교의 범주에서 멀어진 민낯을 사회에 보여 주었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한국교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 소위 성장신학, 번영신학은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가치관이 돼 버렸다. 성장하지 않으면 무능한 목회자, 실패한 교회로 낙인 찍는 현실을 무시하기에는 그간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너무 짙게 성장주의에 물들어 버렸다.

그렇다고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왜곡된 교회론을 극복하고 성장주의의 역기능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특히 교회의 의미를 고민하며 올곧게 본질을 찾아가려는 움직임과 실제 사례들이 저변에서 일어나고 있어 희망을 보게 한다.

교회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가장 먼저 공동체성 회복을 꼽을 수 있다. 또한 보다 근본적으로 영성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이견이 없다. 아울러 교리교육을 통해 바른 신앙관을 세우려는 노력은 기대를 갖게 한다. 이 세 가지 변화의 움직임은 한국교회가 계속 추구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 할 수 있다.

교회의 공동체성 상실은 성장주의의 역기능적 산물이다. 성장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교회는 제도와 시스템, 프로그램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인격적인 만남과 돌봄은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된다. 진정한 교제와 은사를 통한 섬김이 배제되다보니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조차 가면을 쓰고 신앙생활을 하는 구조가 됐다. 실제 자신의 과오를 드러내면 격려와 위로는커녕 무언의 비판에 시달리다보니 철저하게 가면을 쓰고 피상적인 교제만으로 교회를 다니는 실정이다.

교회의 공동체성은 특히 대형교회에서 구조적으로 빈약하다. 그렇다고 작은 교회가 무조건 공동체성이 강한 것도 아니다.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양적 성장에 집착하다보면 성장이데올로기에 휩싸여 천국백성들이 누리는 공동체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교회의 공동체성 회복과 관련해 고신대 박영돈 교수는 <일그러진 한국교회의 얼굴>(IVP)에서 “교인들 서로 간에 긴밀하게 교제하고 섬겨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가는 성령의 공동체만이 그리스도의 몸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고 자라 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공동체성 회복에 이어 영성 회복과 교리교육 회복은 김홍만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와 이상웅 교수(총신신대원)에게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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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은 관념 아닌 증거하는 것”

구원의 은혜 삶에서 실천해야 개혁신학 영성

개혁주의 영성 회복

▲ 김홍만 교수(국제신대)
“개혁신학의 영성은 구원의 은혜의 진정성이다. 즉 구원을 받은 성도가 그 구원의 은혜를 삶으로 드러내는 것이 개혁주의 신학의 영성이다.”

김홍만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는 개혁주의 신학의 영성을 이렇게 정의했다. 김 교수는 개혁교회 영성(경건)을 전공한 몇 안되는 신학자 중 한 사람이다.

김홍만 교수는 근래 한국교회에 영성이 강조되는 이유는 “세속화 되는 교회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설명했다. “교회는 사회성을 갖고 있지만 영적인 기관이다. 본질적으로 영적이다. 그러나 현대 교회는 실용주의와 성장주의로 그 영적인 특징을 상실했다. 더욱이 미국 복음주의의 영향으로 교회가 기업의 시스템으로 운영되면서 더욱 세상과 구별이 없어졌다. 이런 교회의 세속화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가 영성을 부르짖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 전통에서 ‘영성’이란 단어는 찾아보기 힘들다. 종교개혁자들을 비롯해 개혁교회의 인물들은 ‘경건’이란 말을 사용했다. 이 때문에 개혁교회 또는 장로교회 목회자들이 영성에 대해 혼란을 겪기도 한다.

김홍만 교수는 ‘영성’이라는 단어가 갖는 신비주의적 의미와 구별하기 위해 종교개혁가들은 의도적으로 ‘경건’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개혁주의 신학의 영성 곧 경건은 관념이 아니다. 개혁주의 영성은 “회심한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죄와 싸우고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이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보여주지 못하는 성도는 경건하지 못한, 영성이 없다는 것이다.

“구원의 은혜가 있는 자가 구원의 진정성을 삶으로 드러내는 것이 개혁주의 신학의 영성, 경건이다. 이 구원의 은혜의 진정성을 설명하기 위해 칼빈은 기독교강요를 저술했고, 청교도들은 회심에 대해 강조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신앙감화’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진정으로 회심한 자들의 12가지 증거를 말하기도 했다. 구(舊) 프린스톤 신학은 경건을 강조하면서 진정한 구원의 은혜의 효과를 말했던 것이다. 진정한 구원의 은혜는 삶 가운데 경건(영성)으로 증거된다.”

김홍만 교수는 오늘날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먼저 영성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고, 성령의 역사에 대한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목회자에게 가장 필요한 영성은 성령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는 영혼을 깨우쳐 죄에 대한 각성이 일어나게 하고, 죄에 대한 각성으로 인하여 죄의 용서가 필요하며, 결국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 그 성령의 역사에 대한 안목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령의 역사에 대한 안목을 바탕으로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영적인 삶을 사는 것은 성령 가운데 행하는 것임을, 마귀를 대적하고, 세상과 구별되며, 자신의 육신과 죄성을 죽이는 것임을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 개혁신학에서 말하는 영성이다”라고 김 교수는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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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와 가르침 사역 집중하길”

 굳건한 강해설교·교리교육에 결단 있어

교리교육 필요성과 적용

▲ 이상웅 교수(총신대신대원)
새해를 앞두고 목회자들은 2014년에 하나님이 기뻐하는 목회를 하고 싶은 소망으로 기도와 숙고의 시간을 갖는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목회를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동안 보여주셨던 대로 가르치고, 증거하고, 치유하는 사역(마 4:23, 9:35)을 추구하는 것이 그 표준일 것이다.

최근 목회자가 이런 사명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교리교육’이 강조되고 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나 웨스트민스터표준문서들에 대한 관심이 점증하고 있다.

물론 다른 한편에서 그런 신앙고백서들을 무시하는 경향도 있다. 교리교육에 집중할 때에 복음의 생동감과 인격적 변화를 추구하는 신자가 아니라, 지성주의로 편향된 신자가 되게 하고 소모적인 논쟁에 빠지게 한다는 불편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교리교육을 하다보면 그와 같은 부작용도 생겨날 수 있다. 그러나 교리란 우리가 마땅히 믿어야 하는 건전한 교훈(sound doctrine) 혹은 복음적 메시지라고 할 때, 교리교육을 부인하는 자들도 그 설교와 가르침이 교리적이라는 사실을 벗어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신앙이란 전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지성적인 측면도 부인할 수 없고, 개혁주의적 인간관에 의하면 사람은 지성으로 설득될 때 마음에 감화를 받게 되고 삶의 실천이 뒤따르게 된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더욱이 신천지를 비롯한 사이비 종교와 이단들이 기승을 부리는 때에 성도들의 신앙을 굳세게 세워주려고 한다면, 바른 교리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도 부인할 수가 없다.

필자 역시 목회를 할 때 이와 같은 가르침의 사명을 잘 수행하기 위하여 개혁교회의 원칙대로 대부분의 설교를 연속 강해설교로 준비하고 진행했다. 성경 66권을 체계적으로 잘 강해해 주는 것만으로도 성경의 중심 교리들 혹은 진리들을 잘 전달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방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예배시간 외에 개설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이나 조나단 에드워즈의 성령론과 부흥신학에 대해서 강의하는 것을 통해서 교인들의 신앙을 견고하게 하는 일을 도와주려고 노력했다. 또한 중직자는 성경의 교훈을 잘 요약하고 설명한 표준문서라고 공적으로 고백하게 되는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에 친숙해질 수 있도록 이런 저런 방식으로 읽히고 공부하도록 기회를 만들기도 했다.

새해를 준비하면서 목회자들이 설교와 가르침의 사역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 특히 강해설교와 교리교육에 대한 분명한 결단이 있었으면 한다. 성경 66권에 대해 제대로 된 강해설교를 추구하고, 교단이 표준문서로 수납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을 청중의 수준에 맞추어 적절하게 잘 가르쳐 줄 때에 교회는 견고하게 세워져 갈 것이다. 또한 성도들을 이단 사이비들이나 인간적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는 강건한 그리스도인들이 되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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