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립 개척으로 건강한 공동체 밑그림…가정교회·기독교학교로 색을 입히다
아프간 사건 아픔 통해 복음 능력 체험…선한 영향력 전할 때 교회가 희망된다


박은조 목사. 그를 가리키는 수식어는 크게 4가지로 압축된다. 근거리에서 봐온 사람들은 가장 먼저 ‘교회분립 개척’을 떠올린다. 반면 원거리에서 단편적으로 알던 이들은 ‘샘물교회 아프간 피랍’으로 박은조라는 이름을 기억한다. 여기에 소그룹 활성화를 위해 선택한 ‘가정교회’와 가정 세우기 운동의 핵심인 ‘기독교학교’도 그를 대변하는 수식어이다. 가을이 무르익던 11월 중턱에 샘물교회의 두 번째 분립교회, 판교샘물교회에서 박은조 목사를 만났다. 작지만 강한 교회분립의 현장에서 박은조 목사가 쥐고 있는 4가지 키워드를 들여다봤다.<편집자 주>


교회분립 개척으로 그린 건강한 교회


‘한국 교회분립운동의 모태’, 바로 서울영동교회를 두고 하는 말이다. 박은조 목사의 첫 번째 목회현장에 이와 같은 칭송이 따라오는 까닭은 이 교회가 무려 11개의 직간접적인 줄기를 뻗고 있기 때문이다.

직접 분립한 교회가 5개, 첫 번째 분립교회인 빛소금교회에서 1개, 네 번째 분립교회이자 박은조 목사가 서울영동교회에 이어 섬긴 샘물교회에서 5개의 교회를 분립·개척했다. 1990년 3월 빛소금교회를 일군 이래, 평균적으로 3년에 1교회를 분립·개척한 것이다. 다시 말해 ‘교회분립 개척’은 박은조 목사 목회의 중점사역인 셈이다.

그의 선택은 왜 교회분립 개척이었을까. 박은조 목사는 먼저 ‘교회공동체성 회복’을 강조했다. 교인 수가 몇 천 단위에 이르게 되면 하나의 공동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교회공동체성을 고려할 때 1만 명 교회 1개보다 1000명 교회 10개가 낫다. 성경이 말하는 코이노니아 공동체성관점에서도 그렇고, 특히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도 중형교회로 가는 것이 옳다”

물론 교회 규모가 건강성의 척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큰 교회가 꼭 문제가 있고 작은 교회가 꼭 건강한 것도 아니듯이 말이다. 그러나 교회가 대형화되면 성도는 물론 장로들의 목소리도 사라지고, 결국은 담임목사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담임목사에 집중되는 교회 구조에서는 건강한 교회로의 발걸음이 어렵다는 것이 박은조 목사의 생각이다.

“교회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건강하고 성숙한 교회, 이것이 바로 교회분립 개척의 목표였다”

그렇다고 뚝딱 교회만 분립한다고 건강한 교회가 될까. 그것으로 모자라다. 박은조 목사는 지역사회를 섬기면서 지역사회를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가 발 벗고 나서 장애인사역단체 ‘말아톤복지재단’을 설립하고, 문 닫기 일보 직전에 놓였던 성남시 무료급식소를 재건해 ‘사랑마루’를 탄생시킨 이유다.

여기에 보태 파격적인 시도를 단행했다. 자신의 급여를 40%나 줄여 교역자 생활비를 균등 책정했고, 목회자 장로 임기제 실시, 부교역자와 외부인사 강단세우기 등으로 건강한 교회를 일구는 작업은 계속됐다. 무엇보다 목회자의 권위와 특권을 내려놨다는 점에서 한국 교회에 경종을 울렸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는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목사의 권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권위가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결과적으로 교회분립 개척을 정점으로 지역사회 벗 삼기, 목회자 권위 내려놓기로 이어지는 결단은 서울영동교회와 샘물교회를 비롯한 12개 교회를 건강하고 성숙한 교회로 이끄는 발판이 되었다.

 

 

▲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는 공동체다. 목사의 권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권위가 세워져야 한다.” 박은조 목사는 교회분립 개척, 목회자 권위 내려놓기 등 개혁적인 과제를 실천하며, 목회자 중심의 대형화를 추구하던 한국 교회에 커다란 경종을 울린 인물이다.


샘물교회 핵심사역 가정교회와 기독교학교

2002년 샘물교회는 건강한 교회를 위한 과제로 소그룹 활성화와 평신도 사역자 양육을 선정한다. 두 개의 과제를 한꺼번에 잡기위해 연구를 거듭한 박은조 목사는 2007년 가정교회로의 전환을 과감히 결심한다. 셀과 G12도 검토했지만, 가정교회가 제격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특히 휴스턴서울침례교회 사례가 충격으로 다가왔다. 교회출석 교인수가 1000명인데, 목장출석 숫자는 1100명으로 소그룹에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회에 직접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소그룹에 참여해 교회를 미리 맛보는 건강한 교회의 표본을 보여준 격이었다.

가정교회는 박은조 목사가 구상했던 소그룹운동과 빼닮았다. 각 목장에서 목회자 역할을 맡는 평신도 사역자를 계속해서 양육한다는 장점을 지녀 만인제사장 정신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목장모임은 예배는 간단한 형식으로 드리되, 구성원들과 1주일간 하나님이 내 삶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를 말하며 삶과 생활을 나누는 것이 핵심이다.

“목장 안에서 삶과 생활을 나누게 되면 공동체의 진가를 느끼게 되고, 가족 같은 분위기가 생겨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된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가정교회를 선택한 이유다”

가정교회가 평신도 사역자를 세우기 위해 시작됐다면, 기독교학교운동은 성도의 자녀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키우기 위한 고민에서 비롯됐다.

박은조 목사는 서울영동교회 때부터 수차례 학교 인수를 시도하면서 미션스쿨 설립에 뜻을 품었지만, 해당학교의 문제, 정부 인가 등이 겹치면서 매번 무산되고야 말았다. 그런데 미션스쿨이 아닌 기독교학교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한 후 일사천리로 일이 풀렸다. 사실 교과과목에 성경은커녕 채플조차 마음대로 진행할 수 없는 미션스쿨보다 기독교학교가 취지에도 가까웠다.

2006년 3월 샘물초등학교가 드디어 문을 열었다. 2009년에는 샘물중학교가 2012년에는 샘물고등학교가 개교했다. 샘물학교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설립된 한국 최초의 교회학교로 기록됐다.

샘물학교는 명문대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키우겠다고 약속하는 가정의 아이들만 입학이 가능하다. 불과 3개월 만에, 결단을 하고 입학시켰던 부모들의 반응은 나왔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성품교육과 공동체교육을 진행해 아이들이 일반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확실히 다르다,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친밀하고, 고등학생이 되면 자기 인생에 대한 확신이 서있는 모습에 보람을 느낀다”

지금 샘물학교에서는 그리스도를 배우고, 그리스도에 따라 살도록 인도하는 희망의 교육이 절찬리에 진행 중이다. 다음세대를 양육하는 하나님나라 운동의 시발점인 셈이다. 즉 교회분립 개척이 건강한 교회의 밑그림을 그렸다면, 가정교회와 기독교학교는 그 위에 색을 덧입힌 사역이었다.

간혹 샘물교회는 여건이 되니 교회분립 개척이나 가정교회, 기독교학교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묻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교회분립 개척 때도 그랬지만, 돈이나 사람은 문제가 안됐다. 박은조 목사는 비결을 이렇게 말했다. “돈도 사람도 부족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실천했다”고 말이다.


오보에 휩싸인 아프간 피랍

2007년 7월 19일 발생한 ‘아프간 피랍 사건’은 샘물교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샘물교회 성도 20명과 현지선교사 3명이 탈레반에 납치돼,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 형제가 희생되고야 말았다. 나머지 성도들은 피랍 42일 만에 극적으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샘물교회는 고통의 십자가를 져야했다.

무엇보다 선정적인 언론이 토해낸 오보가 도배되면서 샘물교회는 극심한 비판에 시달렸다. 먼저 언론이 퍼낸 오보를 하나씩 짚어보자. 아프간행의 목적은 개종 및 포교, 공격적 선교가 납치 원인, 정부의 아프간행에 대한 경고 묵살, 죽음을 각오한 유서 작성, 이상은 언론을 통해 보도된 내용이다. 그러나 모두 거짓이다.

교인들이 아프간으로 간 목적은 개종이나 포교가 아니라, 샘물교회가 파송한 장기사역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공격적 선교 역시 있을 수가 없다. 정부의 경고 묵살은 애초에 말이 안된다. 정부로부터 어떠한 경고나 공문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샘물교회는 정부가 만류했다면 당연히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서는 20명 중 9명이 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죽음을 각오하고 쓴 것이 아니라, 단순한 훈련 목적에서였다. 기독교인이라면 알 것이다. 교회 프로그램 중 유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다수 있다는 것을.

그러나 진실은 왜곡되고 샘물교회를 향해 집중포화가 쏟아졌다. 안티기독교나 불신자들로 모자라, 교회 관련 단체도 성명서를 내며 비난을 했다. 심지어 박은조 목사는 살인교사죄로 고발까지 당했다.

너무나 억울했다. 박은조 목사는 식음을 전폐하고 잠도 못 이뤘다. 하나님께 왜 이렇게 억울하게 하느냐며 기도까지 했다. 그런데 너무 섭섭해서 눈을 감고 있는데 머릿속에 한 장면이 스냅사진처럼 스쳐지나갔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돌에 맞고 있는데 내가 팔짱끼고 쳐다보는 장면을 봤다. 한국 교회로 날아오는 돌팔매를 맞는 것이 싫어 억울해하느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콧물을 흘리며 통회하는 기도를 했다”

박은조 목사는 고백했다. “나는 한국 교회와 다르다, 나는 잘못하는 교회와 다르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나도 양적성장에 매몰된 적이 있었고, 앞만 보고 달려갔던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그 순간 내가 곧 한국 교회라는 깨우침을 얻었다”

그 이후 박은조 목사는 여러 목회자들이 비윤리적인 문제로 비판을 받을 때 손가락질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 비난마저 자신이 짊어져야 할 한국 교회라는 짐이었기 때문이었다.

차마 지울 수 없는 기억이지만, 고통의 시간은 서서히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그 다음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프간 피랍사건을 겪은 성도들이 선교사로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5가정이 파송 및 협력선교사로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 형제가 순교한 그 선교현장으로 향했다. 앞으로도 더 나갈 예정이라는 이야기다.

“아프간 피랍사건을 겪으면서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길을 걷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길을 걷도록 하신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겪은 성도들이 다시 그곳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그래도 교회가 희망이다

 

박은조 목사는 최근 30년 동안 걸어온 목회사역을 정리한 <그래도 교회가 희망이다>를 펴냈다. 한국 교회가 그 어느 때보다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오늘, 교회가 희망이라는 말을 꺼낸 까닭은 무엇일까. 그는 앞서 단서를 달았다. 교회의 본질을 회복할 때 교회는 곧 희망이 된다고 말이다.

“교회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표현이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강하게 이끌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전할 때 교회가 희망이 된다. 교회 외에 이런 희망을 가진 곳이 없다”

박은조 목사의 목회여정이 줄곧 그래왔다. 목사의 권위를 주저 없이 내려놨으며, 성도의 참여와 교제를 강화해 공동체성을 회복했으며, 단단해진 그리스도의 몸은 이웃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분립·개척이라는 줄기를 타고 또 다른 반석 위에 교회를 세웠다.

그의 30년 목회일지가 진솔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이 책의 책장을 덮었을 때 당신도 ‘그래도 교회가 희망이야’라며 분명 속삭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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