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 동안 죽음과 사투 벌이며 기도 …
다시 가야할 곳 잿더미 속으로 향합니다”

왜 이토록 큰 아픔을 … 태풍 하이옌을 통해 주신 하나님 메시지를 묵상합니다

필리핀 박노헌 선교사

▲ 필리핀 박노헌 선교사
(인광교회 파송)
매일 눈을 감으면, 며칠 전에 있었던 너무나 엄청난 일이 주마등같이 스쳐갑니다. 지금 타클로반의 하늘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아주 청명하고 평화롭게 보이지만 11월 8일, 그 날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우리 가족, 아내와 딸 아람이는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두마게티에서 지영구 선교사님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두마게티엔 비가 많이 오는데 타클로반은 괜찮은지 안부를 물었습니다. “선교사님, 저희는 아직 괜찮습니다. 태풍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바람만 조금 불고 있네요!” 그것이 외부로부터 온 마지막 전화였습니다.

아침식사를 마치기 전에 갑자기 강한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면서 비가 창문 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이 잿빛으로 변하고 어두워졌습니다. 모든 구멍에서 빗물이 치고 들어오더니, 천장이 들썩들썩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20분쯤 계속해서 천장이 흔들리다가 양철로 튼튼하게 만든 지붕이 뜯어져 날아가서 마당으로 처박혔고, 천장이 갈라지기 시작했고, 비가 그 사이 틈으로 쏟아졌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었습니다.

문을 열면 사람이 날아갈 것 같아 집에서 빠져나갈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창문 밖을 내다 보니 나무 조각이나 유리파편, 쇠붙이들이 하늘을 날아다녔습니다. 그때 함께 살고 있었던 현지 필리핀 목사가 밧줄을 몸에 묶고 뛰어와서는 우리를 교회까지 가도록 보호해주었습니다.

교회에 들어가니 아이들을 포함해 교인 20명 이상이 대피해 있었습니다. 서로가 부둥켜안고 공포에 질린 얼굴로 두려워 떨었습니다. 교회 안으로도 시커먼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며칠 전에 교회에 다락을 만들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 다락으로 아이들을 먼저 올리고, 저와 어른 몇 명이 올라갔습니다. 나머지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의자를 포갠 채 그 위에 올라앉았습니다. 계속 물이 교회 안에 들어왔고, 배꼽까지 물이 찼습니다. 4~5분 이후면 우리는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울면서 예수님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 끔찍한 태풍을 경험한 타클로반 박노헌 선교사가 현장의 소식을 전해왔다. 박 선교사는 필리핀의 회복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며 관심을 가져줄 것을 요청했다. 사진은 구호물품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필리핀 이재민들의 모습. (사진제공: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저는 흔들리는 천장을 붙들고 목숨을 건 기도를 했습니다. 다락과 천장은 머리가 바로 닿을 만큼 가까웠고, 지붕과 천장 사이의 틈으로 강한 바람과 비가 삼킬 듯이 불어왔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 주시옵소서!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그렇지만 강풍은 아랑곳하지 않고 더 강하게 지붕을 날려버릴 듯이 불었고 물은 더 차올랐습니다. 기도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지금 여기서 죽게 하시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목숨을 살려주시면 주님 위해서 더욱 충성하겠습니다. 우리 죄를 용서해주세요.” 회개의 기도가 이제 생명을 맡기는 기도로 변했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생명을 주님께 맡깁니다,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이 백성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이들이 주님께 돌아오게 하옵소서….”

그때 기도하던 아내가 말했습니다. “여보! 주님이 말씀으로 내게 두 번이나 말씀하셨어요. 안심하라는 그 말을 제가 정확하게 들었어요!” 아내의 말을 듣는 즉시 제 마음 속에 평강이 몰려왔습니다. 눈물이 쏟아지면서 엉엉 소리를 내면서 울었습니다.

바람은 여전히 강하게 불었고 비도 강했지만, 내 속에 하나님이 생명을 살려주신다는 강한 확신이 자리 잡았습니다. 공포와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5시간이 넘게 확신으로 주님께 매달리던 중 누군가가 소리쳤습니다. “물이 빠지고 있어요!” 눈으로 아래를 내려 보니 물이 조금씩 빠지고 있었습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면서 감사의 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락에서 내려와서 보니 교회 안의 성도들은 다 살아있었습니다. 5시간 동안 벼랑 끝에 서서 죽음과 사투를 벌인 것이었습니다.

그 날 오후에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사방을 둘러보니 폭격을 맞은 것처럼 집은 무너져 있고, 나무도 넘어져있고, 전봇대가 바닥에 쓰러져있었고, 사람들의 입에서 아무개가 죽었다는 소식, 일가족이 쓰나미에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죽었다는 소식, 시장 가족이 죽었다는 갖가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전기가 끊어졌고, 통신이 되지 않아 누구에게 연락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이 되니, 수많은 사람들이 마치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눈빛이 변해서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가게나 상점에 들어가서 생필품을 훔치기 시작했고, 이제는 먹는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거리에 나가보니 시체들이 즐비했고, 한 죽은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의 시체를 물로 닦으면서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월요일이 되자 우리는 교회의 성도들을 격려하려고 마음을 잡고서, 집안 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타클로반에서 사역하던 두 선교사님이 찾아와서 현재 외국인들이 매우 위험하다는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타클로반 시의 감옥에서 죄수들 2000명이 탈옥했는데 그들이 외국인들을 노린다는 것이었습니다.

통합 측의 사공세현 선교사님 가정도 문을 두드리면서 급히 찾아왔습니다. 지금 떠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시말섬에 잠시 대피해 있다가 한국에서 보내준 전용기를 통해 마닐라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밤에 저는 구호활동을 위해 다시 그 땅에 들어갑니다.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저들을 심판하셨나요? 왜 저 가엾은 사람들에게 큰 아픔을 주셨나요? 왜 죄 없는 아이들을 데려가셨나요?” 아직도 저는 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제가 그 선교지에 살고 있는 와라이 부족을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일로 인해서 하나님께 완전히 발목이 붙잡혀 그곳에 생명을 드릴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생명을 받은 자, 살아남은 자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사명이라는 것임을 그들의 핏값으로 깨달은 것입니다.

내가 가야 할 곳, 내가 서야 할 곳, 내가 죽어야 할 곳, 그 곳은 바로 잿더미로 변해버린 레이테 섬 타클로반입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양들이 있는 그 곳이 저의 제2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그 땅에 봄날이 다시 올 것이라는 희망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다시 그 땅으로 가렵니다. 하나님, 내 영혼을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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