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실 교수(총신대·교회사)

 
‘바른 신학·진정한 선교’ 되묻게 할 역설적 총회

‘마닐라 문서’ 근거한 새로운 선교 지침 예고했지만 이전의 낡은 선교 이해 답습
‘기독교 토착화’ 미명 하에 이방문화 무분별 허용, 종교다원주의 확산 우려 커져


▲ 박영실 교수
WCC의 정체성을 간략히 정리해 보자. WCC 10차 총회 한국준비위원회에서 제공하는 자료집에서 정병준은 이 WCC의 발달사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20세기 에큐메니칼 운동은 세계 교회 협의회(이하 WCC)를 탄생시켰고 WCC는 개신교 선교 운동으로 출발해서 개신교회와 동방정교회를 포함하는 세계적인 기독교 운동으로 발전했다.” 이 간략한 진술에 통해 기독교 역사에 표출된 WCC의 기본 성격은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WCC는 개신교에서 시작된 운동이다. 하지만 WCC는 특히 개신교 내에서의 종교 개혁이후의 교회 분열 현상을 회복하는 데 그 목표를 둔 교회 운동을 표방한다는 것이다. WCC라는 역사적인 세계 교회 기구를 창출하는데 기여했던 지도자들은 “에큐메니칼 운동 전반에 보다 더 효과적인 자기 표현의 기구를 부여”하고자 했던 것이다.

둘째, WCC는 교회연합 운동이다. 그것은 2012년 1월 현재 전 세계 140개국에 349개의 교회들과 5억 8000만의 신자를 가진 교회연합 기구이다. 동방정교회는 그 시작부터 회원이었으며 로마 가톨릭 교회는 WCC 내의 ‘신앙과 직제’ 위원회의 회원교회로만 등록되어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12억의 인구를 가진 로마 가톨릭 교회가 그 절반 밖에 안 되는 신자를 가진 WCC에 회원 교회로 가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부산 총회의 개막식에서 교황의 영상 인사가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보듯이 로마 가톨릭 교회는 WCC의 진로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셋째, WCC는 우선적으로 선교운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WCC는 다음의 세 흐름의 조합의 형태로 구성된 것이다. 1937년에 영국 땅인 옥스퍼드에서 생활과 봉사 국제 대회와 동년에 에딘버러에서 신앙과 직제 세계 회의가 통합을 결정하였다. 그 이듬해인 1938년에 우트레히트에서 세계교회협의회 헌법 초안을 마련하여 WCC를 출범시킬 계획이었으나 2차 세계 대전으로 10년이 지난 1948년에 이르러서야 화란의 암스테르담에서 WCC 제 1차 총회가 개최됨으로 WCC가 출현한 것이다. 이 WCC에 국제선교위원회(IMC: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가 연합한 것은 1961년 인도의 뉴델리 총회에서였다. IMC의 합류는 늦었다지만 그래도 WCC는 선교운동이었던 1910년 에딘버러 대회에서 그 역사적 연원을 찾는다. 따라서 WCC의 선교 이해는 그것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하겠다.

현재의 WCC은 그 본래 의도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1, 2차 총회 기간 사이에 WCC 내에 이미 “하나님의 선교”와 같은 변질된 선교 이론이 유포되었다. WCC의 이런 경향은 결과적으로 한국 교회 내에서도 보수와 진보간의 신학적인 충돌을 야기하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전쟁으로 WCC의 근본 성격을 더 조사해 볼 겨를이 없었다. 전쟁이 끝나자 한국 장로교회는 김현정과 명신홍 목사를 제 2차 총회인 에반스톤 총회에 파견하면서 WCC의 신학사상에 관한 자세히 보고할 것을 당부하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총회에 참석하고 귀국해서 신학사상에 관하여 서로 상반된 보고를 하였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한국교회 내에 일찍부터 WCC의 정체성에 관한 신학적 견해차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 교회에서의 WCC 이슈는 교권적 사안이기 전에 이미 신학적인 이슈로 출발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 교회 내에서 WCC의 정식 멤버십을 갖게 된 것도 초기가 아닌 제 3차 뉴델리 총회(1961)에 가서야 기독교 장로회 교단이 가입함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로부터 반세기 이상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도 한국 교회에는 여전히 WCC에 관한 신학적인 논쟁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혹자들은 WCC가 적어도 한국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을 준 기관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의 남침으로 대한민국의 안위가 풍전등화와 같을 때 WCC의 중앙 위원회는 북한의 도발을 성토하면서 UN의 참여를 독려했을 뿐만 아니라 UN을 통해서 들어온 구호품 보다 더 많은 양의 물품들을 회원국들의 협조를 받아서 한국에 전달해 주었다 한다. 또한 이번 총회 개막전 행사로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고려하여 독일에서 출발하여 러시아를 거쳐서 그리고 북한을 경유하여 서울에 도착하는 평화 열차나 평화 협정과 같은 행사들도 기획되어 있다고 한다. 한국 국민으로서는 WCC의 이런 면들이 매우 고마울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한국 교회적인 입장에서의 그런 평가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WCC는 일차적으로 교회 운동을 표방하는 기구이기에, 그 정확한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신학적인 고려가 우선적이어야 하기 때문인 것이다. WCC의 선교관에서는 어느덧 죄로부터 구원이라는 전통적인 선교의 의미가 퇴색하고 사회구조적인 불의한 구조 개선을 시도하는 등의 사회 운동적 혹은 사회 윤리적 해석을 강조하게 되었다. 로마의 속박 하에 있던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이스라엘을 로마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해 주실 것을 기대했지만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의 영적 구원자로서의 본질에 충실하셨던 점을 기억할 때인 것이다.

WCC 10차 총회의 진행과 관련해서는 기본 프로그램 외에 개최 나라와 또 그 나라가 속한 대륙의 역사와 전통과 문화에 따라서 특색 있는 장외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이러한 장외프로그램으로는 8차 총회 개최국 짐바브웨 하라레에서는 ‘파다레’(Padare)가, 그런가 하면 9차 총회가 열린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에서는 ‘무치롱’(Muchirao)이 운영되었다. 금년 부산 총회에서는 한국적 의미를 살려서 ‘마당’ 프로그램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 마당 프로그램을 통해서 세계 교회가 갖고 있는 다양한 경험을 전시하며 나누고 토론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전시와 토론의 장이 기독교의 전통적인 경건에서의 이탈의 현장이 되곤 하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파다레’와 ‘무치롱’에서 볼 수 있듯이 기독교의 ‘토착화’란 미명하에 이방 문화적인 요소들의 무분별한 허용의 결과 종교다원주의적 분위기의 확산으로 이어지곤 우려되는 것이다.

이번 WCC 총회의 주제는 ‘생명의 하나님, 정의와 평화와 치유를 주소서!’이다. 매 총회의 주제는 개최국과 그 개최국이 속한 대륙의 특수한 상황들의 고려 하에서 결정된다고 한다. 원래 한국준비위원회 측의 주제 제안은 ‘삼위 일체 하나님, 생명, 평화, 치유’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시아 교회들에서 ‘정의’를 제안해서 결국 ‘생명의 하나님, 정의와 평화와 치유를 주소서!’가 이번 총회의 주제로 채택되었다. 하지만 그 형식이 사회적 구조적인 악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하나님의 선교의 기본 개념의 도식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번 부산 총회에서는 또한 WCC의 갱신된 선교 선언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1961년에 WCC와 IMC가 통합된 이래로 WCC의 선교와 전도 위원회(이하 CWME)에서 나온 WCC의 공식적인 선교와 전도 지침서로는 1982년의 ‘선교와 전도: 에큐메니칼적 확언’이라는 문서가 있었다. 그 이후 30년 동안의 지구상의 환경과 인간과 교회의 변화를 감안하여 갱신된 WCC의 선교 이론에 기초한 새로운 선교와 전도의 지침서가 이번에 부산 총회에 상정되기로 예정되어 있다. 이 지침서는 제 9차 브라질의 포르토 알레그레 총회 후 CWME 멤버들이 새로운 선교와 전도의 확언을 세우기 위해서 작업을 하였고 이 작업의 결과물이 2012년 3월에 마닐라에서 개최된 CWME 위원회에 제출되어 검토하였다.(이후에는 ‘마닐라 문서’). 이 마닐라 문서는 ‘에큐메니칼적 확언’(1982)에 비해서 훨씬 더 분명하게 그리스도 중심적 보편주의에서 삼위일체 하나님 중심적 보편주의로 선교의 관점이 이동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선교를 개인 간, 공동체 간, 국가 간, 그리고 우주적 차원의 생명신학 틀 안에서 고려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기독교 역사에서의 전통적인 선교가 ‘중심부’에서 ‘주변부’로의 이동이라는 양상을 가졌다면, 마닐라 문서는 지구상의 환경파괴와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의 현상 하에서는 환경과 인간과 교회가 ‘주변부’에서의 ‘중심’으로의 이동이라는 선교의 패턴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마닐라 문서에서는 ‘불의 숨결’로써의 ‘변혁적 영성’을 의미하는 성령의 선교를 말하지만, 그것은 결코 기독교의 보편적 개종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즘적 다원화와 다변화 가운데서 종교간 대화와 교차 문화적 의사소통을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이 두 지침서들(1982년& 2012년) 모두 1960년대 이후로 WCC의 선교이론으로 자리매김을 한 ‘하나님의 선교’ 신학적 강조점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선교’ 이론이 그리 평가되듯이 선교는 삼위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라는 점에서는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으며 교회야말로 삼위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가장 분명한 지상의 결과물임에도 불구하고 선교에서의 교회의 역할이 너무 무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죄에 대한 강조와 예수의 유일성에 관한 주장은 거의 자취를 감춘 상태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선포로서의 선교 이해는 이미 낡은 것으로 간주되어 버리는 것이다.

1961년에 WCC의 선교가 너무 약화되었다는 비판을 의식하여 WCC와 IMC의 통합을 적극 추진하였던 그 당시의 IMC 총무였던 레슬리 뉴비긴은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더 분명해지는 WCC의 종교 다원주의적 경향과 타문화 선교의 쇠퇴를 확인하면서 이전의 자신의 행동을 크게 후회하였다한다. 30여년이 지난 20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뉴비긴은 WCC가 너무 종교 다원주의 경향이 심화된 나머지 그리스도 중심적 연합체라는 주장에 크게 반하여 사실상 연합정신의 구심점을 상실했노라고 탄식하였던 것이다. 뉴비긴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자기가 아는 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야말로 인간의 죄와 용서, 고통과 평안 그리고 죽음과 삶을 확인하는 유일한 장소라고 언급하는 것이다.

부산 총회 개최와 관련하여 한국에서의 WCC 이슈는 참된 복음이 무엇이며 또 진정한 선교가 무엇인지를 우리로 하여금 다시 성찰하게 한다. WCC가 ‘가시적 교회 연합’에만 집착한 나머지 바른 신학, 바른 교리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거기에는 종교개혁자들의 ‘Sola’(오직)로 대변되는 바른 진리 표방은 물론이고 박형룡 박사도 지적하듯이“명백히 정의된 신학”마저 제시되지 않는다. 그런 WCC의 경향성은 바른 ‘진리 회복’을 목표로 출발한 개신교 종교개혁과 그 이후의 지난 500년의 역사를 허사로 돌리는 격이 된다. 차제에 WCC라는 신학적인 이슈와 관련하여 형성된 최근의 한국 교회의 신학적 지형도를 바라보면서 바른 신학의 보수를 위한 보수주의자들의 단합과 협력의 필요성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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