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환 교수(광신대·조직신학)

 
기독론 빠진 동성애 포용은 정치행위일 뿐이다

사회적 약자로 인식, ‘회원으로 수용’ 주장은 종교적 행위 아닌 정치적 통합시스템
교리나 신조 없는 선교는 일종의 ‘선교중독’… ‘창조질서 회복’ 명령 잊지말아야


▲ 한수환 교수
1제10차 총회를 2013년 부산에서 개최하기로 결의하였던 세계교회협의회(WCC)는 현재 세계 110개국 349개 개신교단과 로마 정교회 그리고 성공회 등을 회원으로 가지고 있다. 한국에는 통합측과 기장, 기독교대한감리회, 대한성공회 등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WCC는 ‘선교’라는 이름으로 교리나 신조들은 도외시하면서 모든 종교들과 교회, 단체, 집단들을 다 회원으로 가입시키고 있다. 거기에서 파생되는 종교다원주의와 사회윤리 문제들, 무엇보다 동성애에 대한 포용적 태도들은 앞날의 한국 개신교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그들의 사회윤리 입장은 무엇이고 거기에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2
WCC는 세계에 다양하게 퍼져있는 종교들과 인종, 성별, 혹은 교파들을 초월해서 소위 ‘하나’되기 위한 교회를 위해 1948년도 8월 23일부터 9월 24일까지 네덜란드의 암스텔담에서 공식적으로 발족된 교회의 에큐메니칼 운동 연합회였다. 물론 이전에도 ‘연합’을 강조하면서 모인 많은 종교회의들이 있었지만 암스텔담 회의부터 WCC는 기독교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구원에 관하여는 종교다원주의의 노선을 택하기 시작하였고 이로 인한 사회윤리적인 문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

흥미로운 점은 1938년 네덜란드 우트레이트(Utrecht)에서 14명의 위원들에 의해 논의, 수정, 작성된 WCC 헌법의 기본원칙 제1조이다. 거기에서 “WCC는 한 하나님과 아들, 성령의 영광을 위해 공동의 소명을 함께 실현하는 교회들의 교제이다”고 정하면서, 이런 “기본원칙에 동의를 표명하는 교회들을 WCC 회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규정했다. 이 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도신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그 어떤 모임이든, 단체이든 상관없이 전부 회원이 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는 점이다. 이 의도는 WCC가 기독론보다는 신론을 가지고 기독교의 ‘통합’이라는 아이디어를 실현하겠다는 의도이다. 말하자면 기독론 없는 신론을 배경으로 하는 교회운동이 WCC의 밑바닥인 셈이다.


3 WCC의 시회윤리 입장에 대한 두 번째 문제는 개인 구원을 전제로 한 사회구원이나 사회복음 혹은 사회정의 실현이 아니라 단순히 교회들간 일치, 연합 그리고 세계선교 혹은 세계교회라는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포용적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WCC는 개별성과 개인성의 가치보다 보편성 내지 집단성이 강조되는 운동의 형태를 가시화시킨다. 그 예로 오로지 믿음으로 주어지는 개인 영혼의 변화나 회심에 대한 관심보다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 질병과 빈곤문제, 인간해방이나 사회정의 등과 같은 가시적이고 외형적인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진다.

특히 1968년 웁살라 총회에서는 “보편성(Catholicity)이 교회의 예배, 참된 인간성 회복을 위한 증거, 봉사, 삶 등 여러 측면에서 표현되어야 한다”고 결정했으며 1975년 나이로비 총회에 가서는 세계교회협의회에 가입하지 않은 모든 교회들까지 수용해야 한다고 ‘보편성’의 원리를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나아가서 1978년 인도의 뱅갈로에서 있었던 신앙과 직제위원회 보고서는 ‘하나의 희망을 나눔’이라는 제목으로 신앙고백들이 일치하지 않는 로마 가톨릭교회나 비성경적 세속적 연합운동과도 적극적으로 협력사업을 벌였다. 무엇보다 제 3세계의 저개발과 가난 인권 성차별주의 인종주의를 포함한 사회 정치 경제 문제 더불어, 핵무기 자연파괴와 지배계급횡포, 인권운동 신분제도 등 소위 사회 구조악 제거에 큰 관심을 보였다.


4 이런 토대 위에서 WCC는 동성애 조차 포용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최근 동성애자들이 소수의 사회적 약자로서 간주되면서 그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적인 근거도 많이 마련되고 있다. 동성애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이들 자신들과 이들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WCC는 동성애에 대단히 호의적인 태도를 가진다. 동성애자들끼리 만든 교파는 ‘만국친교공동체교회(Universal Fellowship Metropolitan Community Church, 일명 UFMCC)’인데 1968년 미국 LA에서 페리(Troy Perry)목사에 의해 조직되었으며 2005년부터 페리의 자문인인 낸시 윌슨(Nancy Wilson)이 이끌어가고 있다. 지금은 23개국에 250개 교회가 있으며 회원들은 늘어나는 추세이다. 동성애자들로만 구성된 교파는 미국에만도 291개와 3만 명의 신도들, 그리고 296명의 목회자들을 가지고 있다(1995년도 통계). 그들은 ‘글로벌 교회’ 표방하면서 레스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들과 함께 하는 교회 공동체를 실현하려 한다.

동성애 문제는 340개 회원 교단 960명과 5000여명의 옵서버가 모인 짐바브웨의 하라레(Harare)에서 개최한 제8차 WCC 총회(1998년)에서 구체적으로 취급된다. 그런데 UFMCC 교파가 1983년 캐나다 밴쿠버 총회와 1991년 오스트레일리아의 캔버라 총회에 옵저버(Observer)를 파견하였고 1998년 제 8차 하라레 WCC 총회에까지 회원들을 파송하였다. WCC는 이미 동성애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인 태도를 가졌기 때문에 1993년 11월에 2000명의 여성들이 참석했던 미네소타주 미네아폴리스에서의 ‘리-이메이징(Re-Imaging)’ 대회를 적극 후원도 했다. 그 대회에 참석한 연사들 중 대다수는 여성 동성애를 조장하였는데, 대략 100명의 여성 동성애자들 무리는 자신들의 동성애를 자축했을 때 주위로부터 기립 박수를 받았다.


5 위의 사실들을 종합하면서 WCC가 가지고 있는 사회윤리의식의 정체를 보게 된다. WCC 신학의 밑바닥은 사도신경이며 여타의 많은 다른 신조들은 ‘일치’에 방해물이 되기 때문에 배제한다. 다르게 말하면 신론에 대해서만 토론하지, 기독론은 서로 불일치와 논쟁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배제시킨다.

과연 기독교가 기독론 없는 신론으로 지금까지 그 역사를 이루어 왔던가? 역사적으로 2000년간의 수많은 신학적 논쟁도 결국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이라는 기독론에 기인하고 있지 않는가? 이것을 무시하고 신론에 만족하는 선교의 길은 종교다원주의의 길뿐이다.

WCC의 두 번째 문제는 개인성을 간과한 사회구원인데 과연 이것이 성경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가르침인가? 한 인격을 천하의 가치에 비유하시는 기독교의 가르침에 비하면, WCC는 정치지도지나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하려는 오지랖 넓은 행동들로 비친다. 교회의 본 사명은 외적인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개인의 내면의 변화에 있다는 이 간단한 진리를 WCC는 잘 알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의 일을 사회 구조변화나 빈곤퇴치로 대신한다면 열심당원이었던 예수의 제자들의 행위와 다를 바가 있는가? 로마의 압제 속에서 공생애를 사신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고 그 제자들도 그렇게 하도록 허용하지 않으셨다.

세번째 문제인 동성애자들을 사회적 약자로 보고 회원으로 받아들이겠다는 WCC의 주장은 기독교를 사회구원의 종교로 이끌려는 일종의 정치적 통합시스템이지, 결코 종교적인 행위로 비치지 않는다. 외형은 기독교라는 얼굴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지만 성경에 그렇게 저주하고 금지하는 동성애까지 용납하는 것은 기독교라는 종교의 얼굴을 가진 정치시스템이 분명하다.

동성애도 최근의 의학 자료에 따르면 치료가 가능하다고 한다. 때로는 동성애가 유전과 선천적인 병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으로 인식이 되어, 자칫하면 인간 본능의 ‘자연적 성향’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그러나 이 병도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의 곡해에서 기인된 하나의 질병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인격적인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변화와 치료가 충분히 가능하며 현대 의학적 도움을 통해 꾸준한 노력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의학은 이런 점에서 창조질서를 세우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이다.

교회는 이런 일반은총의 도움과 아울러 인간 자신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바르게 세움으로 이 질병에서 자유하도록 도와야 한다. 교회는 이런 자들을 내치기 보다 사랑과 배려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다고 동성애 자체를 ‘자연’으로 보거나 태어날 때부터 생긴 질병으로 이해하는 행위는 죄이다. 성의 왜곡은 왜곡일 뿐이지, 결코 자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들을 옹호하여 회원으로 삼는다면 다른 문제들도 함께 발생한다. 예를 들어 매춘을 업으로 하는 자들이 일반 교회에서 적응 못하고 자신들끼리 모여서 교파를 만들어서 WCC에 가입하겠다고 하면 그들 역시 소수의 억압된 자로서 간주하고 WCC가 받아줄 것이 아닌가? 과연 선교가 성경의 핵심인가? 기독론과 교리나 신조들을 간과한 선교를 성경과 전통은 결코 말하지 않는다. 예수 시대에도 동성애자나 매춘이나 가난한 자나 억압받는 자나 인권을 유린당한 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에게 외형적으로 대항하라고 선교의 사명을 주시지 않았다.

교리나 신조 없는 선교는 일종의 선교중독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개인 내면의 변화를 무시한 집단적 외적인 힘의 선교는 오히려 기독교를 정치화시켜 나중에는 종교가 신이 되는 이데올로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