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서 맵다” 교회 고추밭 기적 일구다

‘영농부’ 설치, 교회 농사 주관 … 미자립서 해외교회 개척·지역섬김 놀라운 변화 이끌어

▲ 도암교회 오용균 목사와 성도들이 직접 재배한 고추를 꺼내 들며 “도암교회 고추가 최고!”라 외치며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경북 의성 도암교회(오용균 목사)를 찾은 날은 어김없이 36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오용균 목사와 성도들을 만난 곳은 교회 뒤 언덕에 있는 고추밭이었다.

그늘 한 점 없는 밭에서 내리쬐는 태양을 피하기 위해 밀집모자를 쓰고 목에 수건을 둘둘 말은 오 목사와 10여명의 성도들은 고추 따기에 여념이 없었다. 유난히 더운 올해 고추 농사가 예년에 비해 대풍년이란다.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새빨갛게 물든 고추는 보기에도 곱다. 풍작의 기쁨은 저마다 손 안에 가득한 고추를 내밀며 “도암교회 고추가 최고다!”라고 외치는 그들의 얼굴 속에서도 가득했다. 풍성함과 웃음이 있는 이곳 고추밭에서 도암교회의 기적 같은 농촌교회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 목회자의 헌신

지금의 도암교회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담임목사인 오용균 목사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결혼 초창기 빈털털이였던 청년 오용균은 하나님 앞에 한가지 서원을 했다. 먹고 살만하면 노후에 목회자를 모시지 못하는 농어촌교회에 가서 봉사하겠다는 서원이었다. 그의 가정은 안양에서 하는 일마다 족족 잘 풀렸다. 어렵게 구한 집이 좋은 값에 팔리고, 식당을 해 ‘대박’이 났고, 이후 벌인 건어물 장사도 잘됐다. 나이 서른 둘에 어엿한 상가 건물도 마련했다. 말 그대로 먹고 살만하게 됐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것은 계획했던 노후가 아니라 젊을 때였다. 거부할 수 없는 부르심에 이끌려 그는 신학교에 입학을 했고, 1995년 10월 10일 목사 안수를 받던 날 곧장 <기독신문사>로 달려가 농촌교회 사역지를 찾는다는 광고를 자비로 실었다. 광고를 보고 전국의 34개 교회에서 연락이 왔다. 그 후 10명 이하의 목회자를 모시지 못하는 7개 교회를 선정해 일일이 방문한 결과 생면부지의 의성땅 도암교회에 부임하기로 결정하게 됐다.

▲ 전형적인 농촌 미자립교회였던 도암교회가 그간 아프리카 케냐에 2개 교회를 건축할 정도로 저력있는 교회로 탈바꿈했다. 교회가 운영하는 ‘영농부’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다.

1996년 1월 부임 당시 도암교회는 6개월째 목회자가 없었으며, 교인이 고작 7명에 불과했다. 더욱이 십일조를 내는 성도는 단 한 명도 없었고, 그나마 두 사람 정도만 성미를 낼 정도였다. 그야말로 농촌의 미자립교회 전형이었다.

오용균 목사의 도암교회 부임. 여기서부터 도암교회는 큰 변화를 맞게 된다.

헌신이 기적을 일구다

부임 후 오 목사는 마을 일대를 샅샅이 돌며 인사를 하고, 전도를 했다. 끈질긴 전도와 애살있는 관계성으로 부임 첫해에 11명이나 전도의 결실을 거뒀다. 도암교회 역사상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것으로 도암교회의 기적 같은 이야기 그 첫 페이지가 시작된다.

내친김에 도암교회의 놀라운 변화를 열거해 본다. 오 목사 부임 이후 3년 만에 자립했다. 단 두 명만 성미를 바치는 것이 고작이었던 것이 이제는 전교인이 십일조를 내고, 심지어 선교헌금까지 참여하고 있다.

별도의 건축헌금 없이 교회 식당 및 휴게실과 사택도 지었다. 올해는 교회 내부에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실시했다. 이 뿐 아니다. 농촌의 작은 교회가 아프리카 케냐 2곳에 교회를 건축하기도 했다.

미자립교회 목회자 부부를 초청해 소록도에서 위로회를 열었고, 지역의 은퇴목회자를 위한 위로행사도 가졌다. 전교인들이 필리핀이며, 제주도며 선교여행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신앙적 성숙, 교회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 고질적인 미자립에서 자립으로 바뀌는 자리에까지 오면서 맛 본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선교에 대한 보람 등등. 교인 16명이 만들어낸 지난 17년간의 역사는 이처럼 기적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영농부에서 희망을 찾다

도암교회가 기적 같은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영농부’에서 비롯된다. 도암교회 영농부는 오용균 목사 부임 첫 해인 96년도부터 시작됐다.

천성이 부지런한 탓인지 오 목사는 마을 전도와 동시에 농촌진흥청에서 진행하는 농기계 교육을 자청해서 받았다. 이후 마을 일대 최초로 콤바인을 구입해 타작을 도맡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오용균 목사는 ‘농사짓는 목사’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곧이어 교회에 영농부를 개설했다. 휴경지를 빌려 논농사부터 시작했다. 그렇다. 교회가 교회 이름으로 농사를 시작한 것이다.

열심 있는 목회자의 말에 따라가긴 했지만 성도들은 반신반의했다. 교회가 농사를 짓는 것이 생소할 뿐 아니라, 자신이 경작하는 논밭의 일만해도 버거운데 교회 농사까지 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영농부는 17년이 지난 현재 규모가 꽤 크게 성장했다. 도암교회가 작농하는 규모만 4000평에 이른다. 여기서 벼, 고추, 콩, 씨를 받는 채농도 이뤄지고 있다. 영농부에서 나오는 모든 농산물은 대도시에서 직거래를 통해 팔려 나간다. 작황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해마다 2000만원 안팎의 수익을 낼 정도가 됐다.

1년 결산이 780만원이던 교회가 자립을 넘어 세계를 섬기는 교회로 탈바꿈한 저변에는 이처럼 영농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피폐한 농촌교회도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 한 목회자의 아낌없는 헌신과 노력, 지역사회에 녹아드는 교회운영과 섬김이 있는 도암교회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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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한 영농목회자”

오용균 목사 “농사 기본 아는 성도 함께 해 감사”

오용균 목사

도암교회 오용균 목사는 농사꾼임을 자처하는 예수꾼 목사다. 그리고 도암교회를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순애보 목사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껏 교회와 교인을 섬기는 마음으로 해왔고, 교회가 믿음 안에서 든든히 서 가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교인들과 교회에 대한 오 목사의 헌신은 실로 대단하다. 지금껏 교회에서 받는 사례비 전액을 교회와 선교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 지금도 선교를 위해 개인적으로 적금을 들고 있다. 같이 농사를 짓는 입장에서 농번기에는 고달픔을 달래기 위해 교인들에게 직접 밥도 지어주고, 설거지도 거침없이 한다. 교인들과 함께 농사를 짓지만 씨를 뿌리고 거두는 일 외에 다른 잡다한 농사일은 오 목사가 도맡아 하고 있다.

“농사는 정직한 일입니다. 신앙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필요하듯 농사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농사를 짓다 보면 성경의 진리와 깨달음이 사실적으로 다가옵니다.”

농작물 관리를 잘 못하면 농사를 망치는 것처럼 목양 역시도 잘 관리를 해야 아름답게 세워져 간다는 것을 알기에, 날마다 하나님께 은혜를 구할뿐더러 교인들과 마찬가지로 흙먼지를 덮어 쓰며 농사를 짓는 것이다.

그의 나이 이제 60. 예전만 못한 체력으로 피로감이 더 크게 다가올 나이다. 그럼에도 농사를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어려운 교회 형편을 경험했던 교인들이기 때문에 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영농부를 하지 않으면 과거처럼 피폐해진다는 것을 잘 알기에 신앙과 교회 일에 열심히 참여하는 교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영농목회는 제게 행복입니다. 이를 통해 마을 사람들과 더 친밀해지고, 농사의 기본을 알기에 그들의 눈높이에서 신앙교육을 하고, 교제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하나님 앞에 서원한대로 미자립교회에 와서 농촌목회를 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며, 사역을 마치는 날까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잘 섬기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17년간 강단과 논밭을 목회지로 삼은 오용균 목사는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한 손에는 쟁기를 든 진정한 목회자요, 농사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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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농부는 공동경작 … 대화·타협이 우선

도암교회 영농부는 운영을 위한 별다른 원칙이 없다. 암묵적인 원칙이 있다면 첫째, 서로 대화와 타협으로 운영한다. 둘째, 모든 우선순위는 교회 농사일이고, 나중에 개인의 일을 한다. 셋째, 관리는 목사의 몫이다.

영농부는 엄밀히 말해 공동경작이다. 아무리 원칙을 세워도 자발적인 참여가 없다면 운영이 어렵다. 이런 점에서 17년간 단 한 차례도 갈등 없이 영농부가 존속되고 있다. 이것이 도암교회의 저력이요, 영농부가 지탱할 수 있는 힘이다.

도암교회 구성원들은 영농부가 이처럼 자리잡은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성도들이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라 이구동성이다. 무엇보다 담임목사의 목사라는 자존심과 욕심을 내려놓고 희생과 헌신을 솔선해 보여준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목회자로서 자존심은 성도들로부터 오는 존경심에서 지켜지는 것”이라는 오용균 목사의 말에서 그의 영농목회에 대한 철학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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