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용담요로 추위 견디며 밤새도록 기도”

북에 두고 온 혈육 생각하며 매 기도회 참석… “교단사랑 배웠다”


김한범 장로(일로제일교회)는 또 여행 짐을 꾸렸다. 92세의 나이에 전남 무안에서 멀리 강원도까지 떠나는 여정이 결코 쉬울 리는 없지만, 그의 가슴에는 여전히 조국에 대한 열정과 교단에 대한 사랑이 들끓어 다시 목사장로기도회의 자리를 찾는 것이다.

그는 1964년 서울 충현교회에서 처음 시작된 집회에서부터 금번 집회까지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목사장로기도회에 참석한 역사의 산 증인이다.

“초창기에는 기도회가 3월에 열렸습니다. 아직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을 무렵이어서 교회에서 나누어주는 군용담요 하나씩 덮고 추위를 견디며, 새벽부터 밤이 새도록 기도하던 시간들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김한범 장로는 오래 전 겸이포라고 불리던 황해도 송림 출신이다. 제25대 총회장을 지낸 이승길 목사를 모시고 신앙생활을 하다, 해방 후 북에서 벌어진 탄압을 견디지 못해 월남을 강행했다. 단신으로 월남한 후 다시 북에 남아있던 아내(조인선 권사)와 자녀들을 목숨 걸고 찾아오며, 이후 전쟁 발발로 피난길에 오르기까지 그는 격랑의 시대 한가운데 있었다.

“두고 온 고향과 혈육들을 생각하면 항상 그리움에 사무칩니다. 그래서 매일처럼 새벽예배에 나가 기도하는 제목도, 목사장로기도회에 참석해 가장 열심히 기도하는 제목도 다름 아닌 나라를 위한 것들입니다.”

5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김 장로가 목사장로기도회에 개근할 수 있었던 데는 이처럼 겨레와 통일에 대한 남다른 마음가짐이 있기도 했지만 다른 배경도 있다. 바로 자신을 이끌어준 신앙의 리더들에게서 배운 교단에 대한 사랑이다.

남쪽으로 내려온 후 김 장로는 한 동안 인천에 머물며 생활하다, 전남 무안으로 거처를 옮겨 정착한다. 이곳에서 몸담게 된 믿음의 공동체가 바로 일로제일교회의 전신인 부흥정교회였다. 시무장로를 거쳐 원로장로가 되어서까지 70년간 시무한 그에게는 두 명의 잊지 못할 담임목사가 있다.

“제4대 전상성 목사님과 얼마전 은퇴하신 제6대 박창오 목사님, 두 분 다 30년 넘게 일로제일교회를 담임하시면서 목회는 물론 총회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게 가지신 분들이셨습니다. 이 분들의 지도 덕택에 교단에 대한 자부심과 동질감을 배울 수 있었고, 목사장로기도회 기간에는 모든 일정을 비우고 달려가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던 것 같습니다.”

장로 70세 정년제가 총회에서 정식 결의된 바로 그 해 교회에서 첫 원로장로가 되고, 은퇴 후에는 전국장로회 총회에서 제1호 모범장로로 선정돼 표창을 받는 등 김한범 장로에게 있어 교단은 생애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 은퇴한 지 20년을 넘기고서도, 목사장로기도회에 지역의 후배 장로들을 이끌고 와 일체감을 형성하는 일에 앞장선다.

“초창기 목사장로기도회에는 새벽기도부터 모든 집회에 출석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고, 철야기도 또한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는데 갈수록 그런 기도 중심의 분위기가 희석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외부인들의 출입도 막고, 교단 어르신들이 현장에서 기도 외에 다른 일들은 일체 하지 못하도록 단속하던 엄숙한 분위기가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

김 장로는 끝으로 우리 교단의 긍지인 보수신앙이 결코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목사장로기도회를 통해 이를 잘 지켜나가고 젊은 후배들도 이를 위해 열심히 기도했으면 한다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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