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성도 함께 참여, 뜨겁게 기도했다”

대구서문교회 행사 장소로 제공… “기도회는 기도회답게 하면 된다”


제50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를 앞두고 증경총회장 이성헌 목사(대구서문교회 원로)를 찾았다.

총회설립 100주년과 맞물려 희년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과 관련해 교단의 많은 원로들 가운데 굳이 이성헌 목사를 선택한 이유는, 목사장로기도회란 명칭을 처음으로 사용한 제2회 기도회가 대구서문교회에서 열렸고, 그 기도회에 이 목사가 순서를 맡았기 때문이다.

전국목사장로기도회 제1회 대회로 꼽는 1964년은 목사와 장로가 따로 모여 기도회를 가졌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65년에는 목사와 장로들이 함께 모여 기도회를 가졌는데, 그 장소가 바로 대구서문교회였다.

이성헌 목사는 1950년 명신홍 목사에 이어 전도사 신분으로 대구서문교회에 부임해 1995년 원로로 추대를 받기까지 45년간 대구서문교회에서 담임목회를 했다. 제2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가 열릴 당시 이 목사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강단에서 말씀을 전할 기회를 가졌다. 그래서 당시의 기도회 모습을 생생하게 듣기 위해 그를 만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성헌 목사는 그 때를 뚜렷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현재 90세라는 나이, 중대한 수술을 받은 것, 명설교가라는 명성으로 현역 시절 무수한 집회를 인도해 한 사건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함 등의 이유로 애써 그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어렵게 기억을 되살린 이 목사는 이렇게 운을 뗐다. “미안합니다. 제가 너무 늙었고 오래된 일이라 잘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대구에 많이 거주했었습니다. 신앙의 열정을 가진 피난민들은 대구에서 열리는 어떤 집회라도 참석해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아마도 당시 기도회에도 일반 성도들이 참석해 다같이 뜨겁게 기도했을 겁니다.” 이 목사의 말대로 대구서문교회에서 열린 2회 기도회는 300여명의 목사장로 외에도 500~600명의 대구지역 성도들이 매 집회에 참석해 기도의 열기를 보탰다.

이어 이성헌 목사는 “당시 시설도 낙후됐고 특히 식당이 협소해 불편을 끼친 것 같아 미안했던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당시 행사 장소를 제공한 교회의 대표자로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목사에게 올해 전국목사장로기도회의 역사적 의미를 설명했다. 이에 그는 “지금은 초대교회처럼 은혜를 사모하는 순수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는 기도회가 돼야 합니다. 이것이 사라지면 행사에 불과하고 어떠한 은혜와 감동, 변화를 꾀할 수 없습니다”라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또한 “예전에는 총회 모든 행사가 진심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서 진행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총회 정치가 들어오면서 은혜로운 분위기가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물었다. 바람직한 전국목사장로기도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교단의 원로로서 한 말씀 부탁했다. “내 시대는 이미 지나갔는데 제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저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기도회는 기도회답게 진행하고, 총회를 위한다면 겸손함과 순수함과 깨끗함으로 섬기는 자세를 가져주기를 바랍니다.”

총회의 지나친 정치성향 형식적인 기도회로 바뀌고 있는 전국목사장로기도회에 대해 조심스럽게 던진 교단의 원로의 말에 이번 기도회가 총회와 기도회의 순기능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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