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예수님만 보이심 (눅 9:28~36)

변화산상에서 일어난 이변적 사건을 생각하며 ‘오직 예수님만 보이심’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산상의 모습은 예수님께서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며 문득 두 사람과 말씀하시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로서 구약 율법과 선지자의 대표자였습니다. 이 모습을 목도한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황홀했습니다.

당시 산하에는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는 아홉 제자의 불신앙으로 어두운 곳이었습니다. 산상은 천상과 같이 화려하고 신앙인들이 모인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산상에서 있어서는 안되는 이변적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첫째 예수님과 세 제자들의 행동이 이변적이었습니다.

본분 28절을 보면 예수님이 산에 오르신 목적은 기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동행한 세 제자는 깊이 졸았습니다. 기도하는 예수님과 깊이 잠든 제자들의 모습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기도 모습은 용모가 변화되고 옷이 광채가 날 정도였습니다. 기도하실 때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셨던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했는데도 불구하고 깊이 잠들었습니다.

▲ 김동권 목사
오늘 우리는 목사 장로로 하나님께서 선별하여 세우신 일꾼입니다. 기도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잠들고 있는 망령된 모습은 불충이요, 깨어 기도하지 못하고 시험에 빠진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그리스도의 종의 위치에서 탈선한 행위입니다. 오늘 우리는 진실된 회개의 눈물이 있는 기도가 있습니까?

둘째 예수님의 마음과 달리 베드로 요한 야고보의 생각은 이변적이었습니다.

본문 31절과 33절을 보면 산상에서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의 대화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일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멸망 받을 우리들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고난 받으시는 심각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산상의 화려함에 취해서 집을 짓고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오래도록 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과 제자들의 제안이 너무도 상반된 이변적인 사건입니다. 산에 머물면 십자가는 누가 집니까?

산하의 제자들과 군중들은 생각지도 않고 베드로 자기만 산상에 머물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의 잣대로 모든 일들을 도모하려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마음과 전혀 다른 마귀의 속성을 가지고 고집을 피우는 과오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는데 두려워하는 제자들의 행동은 이변적입니다.

본문 34절을 보면 “이 말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 하더니.” 산상에 예수님이 함께 계시는데 모세 엘리야가 떠나고 화려한 환경이 변하자 제자들은 무서워합니다. 생명의 주가 계시는데 무서워 하는 것은 불신앙의 태도로서 이변적 사건입니다. 불신앙은 곧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 힘든 기도를 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저들이 잠들었기 때문입니다. 깨어 기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예수님의 마음에 맞지 않는 자기들 생각으로 이변적 사건이 속출했던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환경에 지배받는 불신앙자들로서 두려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 봐야겠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물질 명예 교만 등 세상적인 것들에 가리워져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 가증스런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제50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가 성령의 능력과 사랑으로 하나되어 뜨겁게 부르짖는 기도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는 역사가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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