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측 이탈 후 ‘교단 단합’ 강한 열망 반영


1959년 예장합동에서 통합측이 분열되어 나간 뒤 내부적으로 양측은 다시 합동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어났다. 1960년 3월과 1963년 1월이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WCC 에큐메니컬 문제와 관련하여 벌어진 깊은 간극은 좀처럼 좁힐 수가 없었다. 특히 신학교는 물론 병원 학교 등 각종 재산권을 통합측이 가져가 총회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심정으로 고군분투할 수 밖에 없었다. 1960년 9월 30일 총회 결의에 따라 ‘금식기도에 대한 지시’를 전국 교회에 하달할 정도로 총회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갈망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혼란한 시기에 총회는 총회임원회와 총신 교수의 제안에 따라 1964년 2월 22일부터 25일까지 충현교회에서 제1회 기도회를 개최했다. 첫 기도회는 목사 중심으로 진행됐다. 특이한 점은 기도회 기간 중 하루를 금식일로 선포하여 교단의 단결과 부흥을 사모했다는 점이다. 기도회 기간에는 외출을 금지하고 온전히 기도에만 전념해 줄 것을 요구하는 광고도 있었다.

첫 기도회는 박형룡 박사와 정규오 목사 김윤찬 목사 등이 강사로 나섰으며, 박윤선 박사는 그 해 총신대에 부임하여 제2회부터 기도회에서 강의했다. 당시 박형용 박사는 강의를 통해 교단의 방향성과 진로를 제시하며 차근차근 보수신학의 기틀을 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도사 신분으로 제1회 기도회에 참석했던 증경총회장 신세원 목사는 “총회가 갈라지고 교단이 어수선하여 친교와 단합을 우선시했다”며, “기도회의 열기는 정말 뜨거웠다”고 술회했다. 증경총회장 최기채 목사는 “금식기도가 생각난다”면서 “지금 생각해도 은혜가 엄청났다”고 회상했다.

▲ 1964년 2월 충현교회에서 열린 제1회 기도회 참석자들.(사진제공=장영학 목사)
한편 제1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는 교단 차원에서 기획하여 실시한 ‘순수 기도회’로서 타 교단은 물론 한국교회에 대규모 기도의 불길을 지폈다. 또한 총회의 시련기에 기도회를 통해 교단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잡아갔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대회로 평가받고 있다. 한 마디로 예장합동의 가장 높은 브랜드는 바로 전국목사장로기도회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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