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농촌지역을 적신 문화의 향수-국수교회


공연에 최적화된 예배당 … 수준 높은 공연 정기 개최, 지역의 자랑 되다

최근 들어 다양한 내용과 형식을 품은 문화목회가 떠오르는 추세다. 목회의 목적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온전케 하는 데 있다면, 문화는 사람의 삶과 연결된 모든 생활양식을 뜻한다. 이 삶이라는 공통분모 아래 목회와 문화가 접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물론이고, 지역주민과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쳐 세상의 모든 영역에 기독교적 세계관을 전파시키는 문화목회 현장을 찾아가는 것이 이번 기획의 목적이다. 그중에서도 보다 특별하고 보다 전문적인 문화목회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배경과 동기, 사역 이야기, 목회철학까지 순차적으로 담아본다. 더불어 문화목회의 장단점과 여전히 불명확한 문화목회의 정의를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지난 4월 5일 어둠이 내린 시골교회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교회 성도들과 마을 어르신, 그리고 동네 개구쟁이들과 주민들이 발걸음을 재촉한 곳은 양평 국수교회(김일현 목사). 이날 국수교회 드림터에서는 절대미성의 음악인 박희수의 공연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객석을 가득 메운 지역주민들과 입소문 따라 온 손님들에게 봄소식과 함께 찾아온 감성이 돋아났다.

의정부에 사는 친구를 초청한 국수교회 김옥자 집사는 “친구에게 교회 자랑을 하고 싶어서 데리고 왔죠. 주로 클래식 공연이 많이 열리는데 여기 양평만이 아니라, 근처 용문, 덕소에서도 찾아올 정도로 우리 교회에서 열리는 공연은 유명하답니다”며 신이 나 교회 소개를 했다.

두 딸과 함께 온 마을주민 박미영 씨는 교인은 아니지만 문화행사가 있을 때마다 국수교회를 찾는 단골손님이다. “문화적 혜택이 거의 없는 농촌지역에서 문화 향유의 기회를 국수교회를 통해 갖습니다. 더구나 유익한 공연이 많이 열려 아이들 교육에도 너무 좋아요. 고마울 뿐입니다”

이들의 얘기는 빈말이 아니다. 한적한 시골교회의 온기 넘치는 이야기는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져 왔다. 지명 덕에 몇몇 국수집도 유명하긴 하지만, 양평 국수리의 명소 중에 명소는 바로 여기 국수교회이다.
여러 찬양사역자들을 비롯해 색소포니스트 심상종, 프랑스의 대표적인 파이니스트 파스칼 갈레, 모스크바국립오케스트라 등 세계 유수의 음악인들이 국수교회 드림터를 벗 삼아 공연을 가졌다. 한국브람스회와 서울예술가곡연구회는 때마다 이곳에서 정기전을 열고 있다.

어느덧 음악하는 사람들이 꼭 한번 서보고 싶은 공간으로 자리 잡은 국수교회. 서울행 직행버스 한 대 없는 농촌교회가 그들의 선택을 받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비결은 문화공연에 최적화된 예배당에 있다. 원형 예배당인 드림터는 음향위주로 설계돼 벽돌 하나하나의 위치와 흡음재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드림터 중앙에서 소리를 내면 마이크를 대고 말하듯 공명이 있고, 천장을 향하면 웬만한 공연장에 버금가는 조명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농촌목회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사서 고생한 격이다. 누구를 위한 건축이었을까. 먼저는 하나님께 바쳤다. 그리고 지역사회에 필요한 예배당을 짓자는 데 마음을 모았다. 하나님이 이어준 농촌지역 주민들, 문화의 사각지대에 있는 그들의 삶에 선물을 안겨주고자 말이다.

김일현 목사는 “문화는 누구나 누릴 권리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밭에 나가 일하고, 자기 돈 내고 극장 한번 가본 적 없는 주민들을 보면서 교회가 문화 향유의 통로가 쓰임 받는 것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1995년부터 문화를 접목한 목회에 기초를 닦아나갔다. 1년에 20~30회 문화행사를 통해 주민들의 지치고 갈라진 손등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어느덧 문화목회 20년, 굉장한 가능성도 보았고, 목회철학도 세워나갔다.

‘새로운 기독문화를 만들어내는 교회’, 국수교회의 표어다. 문화가 사회봉사나 전도를 위한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문화목회가 중심이 되어 복음의 본질을 정립해 나가는 역할을 하고, 터전과 시대에 알맞은 새로운 교회, 새로운 기독문화를 세우겠다는 의미 깊은 뜻을 담고 있다.

김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본질에 따라 지역주민의 절박함을 외면하지 않고 행복을 줄 수 있는 교회, 사회와 소통하고 변화시키는 역동적이고 능력 있는 성도를 키우는 장치가 바로 문화목회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역주민을 보듬고 사회와의 소통을 위해 국수교회의 문턱은 한참 낮춰져 있다. 국수교회를 다녀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국수교회는 닫혀 있는 교회가 아니라 지역사회를 위해 열려있는 교회다”라는 칭찬을 덧붙인다. 그들의 말처럼 빗장을 푼 국수교회의 문화목회는 지역사회 깊숙이 스며들고 있었다.

 
“문화목회를 잘 하려면 먼저 교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김일현 목사의 첫 번째 조언은 ‘교회 공간 나눔’이었다. 문턱을 낮춘 교회의 공간이야말로 지역사회를 제대로 섬길 수 있는 엄청난 자산이라는 것이다.

“공간이 크든 작든, 비워있는 시간에 지역사회를 위해 내어준다면 그때부터 접촉점이 생깁니다. 한국 교회가 비판을 받고 있지만 우리가 먼저 손을 내민다면 교회를 보는 시각이 차츰 달라질 것입니다”

농어촌지역에서 문화목회를 꿈꾸는 목회자들에게는 당부가 앞섰다. 문화목회를 단지 문화예술행사로 꾸미는 목회로 한정짓지 말고, 형편과 장점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전도프로그램이 유행하는 것도 그렇고 무작정 따라하는 것이 한국 교회의 맹점 중 하나입니다. 교회와 지역의 형편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목회자가 가진 장점을 살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교육에 관심이 있다면 공부방을 열 수도 있고, 운동에 강점이 있다면 동호회를 조직해 교제하는 것도 문화목회의 또 다른 방법이라는 말이다. 그것조차 여건이 허락지 않는다면, 밭에서 거둬들인 음식을 대접하고, 노인들의 이불을 빨래하는 등 다양한 사역으로 섬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수교회가 가진 것이 많아서 문화공연을 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제가 성악을 공부해서 전공을 파고든 겁니다. 각자의 특기를 살려 의욕을 가지고 사역한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입니다”

가끔 문화목회 상담을 위해 신학생들이 교회를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마다 김 목사가 강조하는 것은 목회의 시야를 넓히라는 이야기다.

“기존의 교회는 포화상태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교회가 놓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특별한 목회자가 되라고 조언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보다 목회자가 훨씬 많아져도 됩니다”
예비목회자들이 갇혀진 틀에서 목회를 규정하지 말고 사회 각 분야에서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는 점을 부각했다. 특히 문화목회가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화목회는 꼭 교회를 통해 펼치는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통해 복음을 전달할 수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찾지 않는 교회 밖 사람들을 접촉하는데 문화목회가 더욱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어요. 문화목회가 나아갈 방향이기도 하고요.”


농촌문화목회, 전통문화 살리다

국수교회와 지근거리에 있는 양평 봉성리에서도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마다 문화의 꽃이 활짝 핀다. 양평 성실교회(이정훈 목사)의 민들레음악회가 동네 주민들의 어깨가 들썩이는 토요일 밤을 제공한다.
10년 전 교회를 서울에서 양평으로 이전한 후, 주민들의 벗이 되고자 시작된 민들레음악회는 벌써 80회를 맞이하고 있다. 처음에는 입소문을 통해 다른 지역에서도 많은 손님들이 방문했지만, 최근에는 20여명의 동네주민들과 재미나게 문화소통을 나누는 중이다.

 
“양평에서 목회를 시작한 후 딱한 처지에 있는 동네 아이들, 아이 엄마들을 봤어요. 그들에게 힘이 되고자 작은 음악회를 시작했습니다.” 이정훈 목사 역시 동네 주민들의 주린 손을 맞잡기 위해 문화목회를 진행 하고 있었다.

민들레음악회에서는 전통예술공연이 자주 열린다. 농촌지역 주민들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문화콘텐츠이자, 이정훈 목사가 평소에 관심이 많던 분야였다. 최근에는 클래식 공연, 가족영화 관람 등 다양한 주제로 성실교회의 토요일 밤은 무르익어 간다.

초기 한국 교회 신앙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영천 자천교회(손산문 목사)는 배경을 잘 살려 ‘신성학당’을 운영 중이다. 과거 권헌중 장로가 자천교회에 설립한 신성학교의 전통을 이어 받은 배움터인 셈이다.

신성학당에서는 처치 스테이를 비롯해 한국기독교역사교실, 독서교실, 문화체험교실, 작은음악회 등을 국내 유일의 ㅡ자형 목조 한옥 예배당(경북문화재자료 제452호)을 터 삼아 진행하고 있다. 해마다 자천교회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무려 1만여 명. 직접 강의도 하고 문화해설에도 나서는 등 담임 손산문 목사의 문화목회는 쉴 틈도 없지만 한국기독교역사를 알려야 한다는 일념이 더 크다.

“한국기독교역사는 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역사 성찰을 통해 현재를 진단하고 한국 교회에 비전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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