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일 목사(이스라엘 밥 아카데미 대표)


제사는 하나님께 다가가는 것

우리의 코르반, 예수께 철저히 의지해야


▲ 장재일 목사
누군가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장벽이 될 수 있는 것을 모두 제거하고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해본 사람이라면 그는 제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자격과 경험을 갖춘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히브리적 관점에 의하면 제사란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제사의 근본적인 의미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1.코르반의 의미와 필요성

목회자들에게 ‘코르반’이 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신약 마가복음 7장 11절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라고 대답한다. 그렇다. 코르반은 어떤 물건을 하나님의 것으로 선포할 때 사용되기도 했던 단어였다. 하지만 그 원래적 사용처는 ‘제사’ 또는 ‘제물’이라는 표현을 할 때 사용했다. 그래서 모든 제사를 표현할 때는 코르반이라는 단어가 먼저 붙는다. 예를 들어 번제라면 ‘코르반 올라’, 화목제라면 ‘코르반 샬라밈’, 속죄제라면 ‘코르반 하타아트’라고 하는 것이다. 즉, 코르반이라는 단어는 ‘제사’ 또는 ‘제물’이라는 단어로 쓰인 단어였다.

그렇다면 왜 코르반이라는 단어가 ‘제사’라는 단어로 쓰여지게 되었을까? 랍비들의 견해에 의하면 ‘코르반’이라는 단어의 근본은 ‘카로브’라는 단어에서 왔다고 한다. ‘카로브’라는 단어는 거리적으로 ‘가깝다’라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이 단어에서 제사를 의미하는 ‘코르반’이라는 단어가 나왔기 때문에 결국 ‘코르반’은 ‘가까이 다가간다’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결국 히브리사람들의 관점에서 제사란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코르반의 이유

왜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제사일까? 첫 번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관계성 때문이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에덴을 창설하시고 그 안에 아담과 하와를 두셨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고 에덴에서 쫓겨나게 된다.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를 비롯한 모든 인간들은 다시금 하나님께 회복되기를 원한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상태가 되려고 할 때, 거기에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이 있었다.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남의 근본적인 이유가 된 ‘죄’를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 관점에 의하면 사람에게 있어서 죄를 해결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일생의 가장 큰 목적이 된 것이며 죄를 해결하는 행위를 제사 의식에 담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행위의 제사를 코르반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3.제물의 필요성-안수와 피 뿌림

(1)안수(스미카)

▲ 제물 양.
이렇게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해결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제사라고 했다면 그 제사에는 죄를 대신 해결해 줄 제물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제물을 가져온 사람은 절대적으로 제물에 의존한다는 안수의 행위가 표현되어야 했다. 왜냐하면 히브리어로 안수는 ‘스미카’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기댄다’는 것이다. 이것은 안수의 방법적인 면과 개념적인 면을 동시에 표현한 단어로써 제물을 가져온 사람이 안수할 때 취하는 행동이 마치 제물의 머리에 기대는 것처럼 했기 때문이며 또 안수할 때는 자신의 죄를 참으로 비통하게 고백하며 이 제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기댄다(의존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2)피뿌림(즈리캇트 하 담)
또 제물이 반드시 필요했던 이유는 생명과 연결된 피를 제단 뿔에 바르는 것 때문이었다. 대제사장과 이스라엘 전 회중의 피를 제외하고 일반 백성들의 속죄의 피는 모두 바깥 번제단 뿔에 발라야만 했다. 그 피가 번제단의 뿔, 즉 최고의 신적 권위를 상징하는 것에 발려지면 그것은 죄의 댓가로써 생명을 드렸다는 표시가 된다. 그래서 히브리 관점에서 번제단은 ‘죄를 해결하고 생명을 다시 얻는 곳’이란 개념을 갖고 있다.


4.예수, 우리의 코르반

히브리서에서는 예수의 정체성을 여러 가지로 표현한다. 그 중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하시는 분이라는 점은 명백하게 코르반의 의미를 반영하고 있다.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히 7:18~19)

그렇다. 성전의 제사법이 아니고도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하시는 코르반이 계신다. 바로 우리 구주 예수시다. 우리가 예수의 피를 철저히 의지하고 기대면 예수는 우리의 코르반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게 하신다.

예수, 그 이름이 세세토록 찬송 받으셔야 마땅하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