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 목사(계산장로교회)

 
예수 부활을 믿으면 담대해집니다

변화된 제자의 모습이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진 것을 말하더라”(눅24:35)

 

▲ 김태일 목사
들어가는 말

2013년 부활 주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 사건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저녁에 있었던 사건으로 추정됩니다. 예루살렘에서 11km 정도 떨어진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성경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님 만난 사건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우선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과거에는 예수님을 열심히 따르던 제자들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에도 사도들과 끝까지 함께 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13절)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지금 예루살렘 성을 등지고 떠나 서쪽 엠마오로 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두 제자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갈릴리로 가야했던 사람들이었다는 점입니다. (마 28:7, 10) 갈릴리는 이스라엘 땅 북부 지역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가자면 동쪽에 있는 여리고 성으로 돌아가거나 북쪽 사마리아 성을 지나서 가야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제자는 이와는 전혀 반대 방향인 서쪽의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이 두 제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들었으나 (22절~24절) 믿지 못하고 동쪽이나 북쪽이 아닌 서쪽 엠마오로 갔던 것입니다. 이 두 제자는 과거에 예수님을 열심히 따르던 제자들이었는데 이것이 어찌 된 일입니까?

이제 이런 질문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과거에 얼마나 열심히 주님을 따르셨습니까? 교회 다니는 분들께서 과거에는 열심이 있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변함없이 주님을 끝까지 헌신하며 따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인생 끝날까지 변함없이 따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현재 절망과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과거에 그들은 예수님을 열심히 따르던 제자들이었으나 지금은 절망과 실의에 빠진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17절 말씀에 보면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섰다”고 되어 있습니다. 두 사람은 예수님께 대한 자기들의 기대가 무너지자 절망과 실의에 빠져 슬픈 빛을 띠고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이 절망과 실의에 빠진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2절~24절) 25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런 두 사람을 꾸중하십니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경이 증거하는 대로 예수님의 부활의 사실을 믿는 사람들로서 어떤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도 절망과 실의에 빠질 수 없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눈이 밝아져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게 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성령님의 역사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확실히 믿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우리가 현재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중 글로바 이외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한 제자가 만일 나라고 하면, 식탁에 앉았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나의 모든 근심, 걱정, 염려가 다 한 순간에 봄 눈 녹듯이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어떤 고통이나 아픔이나 실망거리가 있다 할지라도 소망과 기쁨과 감격에 사로잡히지 않겠습니까?

부활의 사실을 믿으면 이처럼 낙심과 슬픔이 사라지고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2013년 부활절 기간에 이런 놀랍고 기쁨이 넘치는 은혜를 맛보아 아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이제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33절에 보면 이 두 제자는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35절에 보면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부활을 믿게 되자 그 즉시 부활의 증인이 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틀림없이 이후에 갈릴리로 가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것입니다. 36절 이하에 보면 이 두 제자는 열한 제자와 함께 부활하신 예수님을 한번 더 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후에 오순절 날에 성령을 받은 120여 명 중에 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던” 초대교회 성도들 중 대표적인 성도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은 이제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으로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사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되돌아 간 예루살렘 성은 그들에게는 무시무시한 도시입니다. 예수님을 죽인 대제사장이나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이 아직 그대로 권세를 잡고 있었고 예수님을 죽인 로마의 군병들이나 그 군중들이 그대로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면 이처럼 담대해집니다. 이것이 성경적'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용사들이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다”고 증거했습니다.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해서 말입니다. 사도 베드로나 바울이 왜 그렇게 담대했습니까? 부활 신앙 때문 아닙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예수님의 부활의 사실을 믿으므로 믿음의 선조들처럼 담대한 신앙인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맺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과거는 어떠했으며 현재는 어떻습니까?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겠다고 생각하십니까?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변화된 모습은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며 우리의 이야기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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