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곤 목사(열린교회)

▲ 김필곤 목사
2009년 8월 클린턴 전 대통령이 평양에 가서 북한에 억류된 두 미국인 기자를 데리고 귀국하였습니다. 8월 5일 새벽 버뱅크의 밥호프 공항에 특별기가 착륙하였고, 141일 만에 풀려난 두 여기자는 가족과 눈물의 상봉을 하였습니다. 그 때 클린턴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5분쯤 비행기 안에 있다가 조용히 나타났고, 풀려난 기자들과 그들의 소속사인 커런트TV 엘 고어 회장이 인사말을 하는 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그는 도착 성명을 뉴욕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했습니다. “북한 감옥에서 오랜 시련을 겪었던 두 여기자가 풀려나 가족들을 만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다”는 짧은 내용이었습니다. 도착 다음날, 기자들은 클린턴 재단의 에이즈 관련 행사에서 방북에 대하여 수많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 때 클린턴은 “나의 임무는 하나였다. 미국인으로, 아버지로서 젊은 여성들을 구해내고 싶었고 그 임무가 자랑스러웠다… 나는 더는 정책결정자가 아니다. 미국에 대통령은 한 명뿐이다. 내가 입을 열어 현 정부가 일을 다뤄가는 데 제약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며 도움도 안 되고 필요하지도 않다”라고 말을 아꼈습니다. 말 잘하는 클린턴이 말을 절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전직 대통령으로 아름다운 절제의 덕을 보여 주었습니다.

오늘 성경은 신앙인의 삶을 마라톤 경기, 권투 시합 등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목표를 분명히 해야하고(26)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최대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24). 무엇보다 절제하여야 합니다(25,27). 절제란 ‘알맞게 조절하고, 방종에 흐르지 않도록 감성적 욕구를 이성으로써 제어하는 일’을 뜻합니다. 절제는 활화산처럼 솟구치는 식욕, 성욕, 명예욕, 권력욕을 잠재우게 할 수 있는 무기입니다. 절제는 욕심을 다스리고, 낭비를 방지하며, 타락을 차단합니다. 절제는 자기관리의 큰 틀이며, 긍정적 포기입니다. 삼손은 큰 용사였으나 자기를 다스리지 못하여 패배자가 되었습니다. 유다가 머리가 나빠 실패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욕심을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돈이 없어 망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탐욕을 절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롯의 아내는 보지 말아야 할 것 보다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절제는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자제력입니다. 잠언 25장 28절에서는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지식에 절제를 더하라”(벧후 1:6)고 했습니다. 절제는 성령께서 내 마음속에 계시면서 나를 다스리실 때에 순종하면 나타나는 열매입니다(갈 5:22∼23).

각자 절제할 내용을 한 가지씩 기록하여 식탁에 올려놓고 식사기도 때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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