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교단들 “성급한 행동” 거센 비판 쏟아내

“개인차원 합의일 뿐” 의미 축소…교회협 교단도 “정체성 훼손 우려”


▲ WEA총회 한국준비위원회 위원장 길자연 목사를 비롯해 홍재철 목사, 김영주 총무, 김삼환 목사가 공동선언문에 서명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홍재철 목사와 WEA총회 한국준비위원회 위원장 길자연 목사가 제10차 WCC부산총회에 협력하기로 13일 전격 합의했다.

홍 목사와 길 목사를 비롯해 교회협 김영주 총무, WCC총회 한국준비위원회 김삼환 대표대회장은 “교회협과 한기총이 2013년 WCC부산대회 개최에 대한 보수교단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공동선언문을 선언한다”고 발표했다.

공동선언문에서 주목할 부분은 △종교다원주의 배격△공산주의, 인본주의, 동성연애 등 복음에 반하는 모든 사상 반대△개종 전도 금지주의 반대△성경 66권은 하나님의 특별 계시로 무오하며 신앙과 행위의 최종적 절대적 표준 천명을 골자로 한 4가지 합의안이다.

종교다원주의, 공산주의, 동성연애, 개종 전도 금지주의, 성경무오설 등은 보수교단에서 줄곧 지적해온 WCC의 신학적 문제점이다. 또 WCC에 대해 무조건 반대할 것이 아니라, WCC의 잘못된 점을 계도해나가자는 일부 보수교단 목회자들이 지목한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그런 만큼 “그동안 보수교단들이 WCC의 신학적 문제로 지적해온 사항에 대해 합의하는 성과를 거뒀다”라는 홍재철 목사의 발언도 틀린 말은 아니다.


보수교단 비판 여론 높아

그러나 이번 공동선언에 대해 보수교단들의 거센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보수교단의 입장에 반한다는 점과 WCC를 반대해온 교단과의 ‘공동의 합의’ 없이, 홍재철 목사와 길자연 목사가 개별적으로 서명한 점을 문제 삼고 있다.

특히 홍 목사와 길 목사의 소속 교단인 예장합동 목소리는 단호했다. 예장합동 WCC대책위원회 위원장 서기행 목사는 “교단 내 연합사업을 중단하는 일이 있더라도 WCC와 협력은 안된다. 빠른 시일 내에 교단의 공식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1959년 WCC문제로 예장통합이 분리될 때 WCC를 영구 탈퇴키로 한 제44회 총회결의를 거론하며 한기총 대표회장이 합의한 선언문이 예장합동의 입장은 아니라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이미 한기총에 사임서를 제출했다고 밝힌 한기총 WCC반대대책위원회 위원장 김영우 목사는 “WCC중앙위원회가 공식적 루트를 통해 종교다원주의, 혼합주의, 성경무오설 등을 구속력 있는 결의로 발표해야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냐”며 반문하면서 “국내 연합단체가 WCC와 관련된 선언문을 발표했다고 보수교단의 입장을 전적으로 수용한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예장합동 총회장 정준모 목사는 “WCC는 정치적 사안이 아니라 신학적 문제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조만간 총회임원회와 실행위원회를 개최해 교단의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예장합동과 함께 지속적으로 WCC를 반대해온 예장합신과 예장고신 등에서도 공동선언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예장합신 박혁 총무는 “WCC 총회나 교단차원에서 결정한 것도 아닌, 일부 목회자의 합의라 효력이 없다고 본다”며 “WCC에 참여하지 않기로 한 우리 교단 결의가 우선이다”고 밝혔다.

예장고신 구자우 사무총장은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고 싶다면 보수진영 교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만든 다음 하는 것이 옳다”며 “이번 공동합의문 발표는 무리하고 성급한 행동이다”고 지적했다.


교회협 소속 교단 양분

이번 공동선언에 대해 교회협 소속 교단의 반응은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한국 교회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계기”라고 평가하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에큐메니칼 정신이 훼손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장통합 손달익 총회장은 “한기총이 WCC에 대해 더 이상 반대하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이제라도 반대를 철회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연합기관과 교단들이 협력하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

그러나 WCC가 주창하는 에큐메니칼 신학과 정신이 훼손되고 있다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 현재 교회협 소속 교단이 우려하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WCC 신앙고백과 반대되는 내용이라는 지적이다.

그동안 WCC는 개종 전도를 반대해 왔고, 올해 열리는 부산총회 선언문 초안에도 개종 전도를 반대한 문구가 삽입돼 있다. 그러나 이번 공동선언문에는 개종 전도를 찬성해 WCC가 주창해온 신학과 정면 위배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에큐메니칼 진영의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개종 전도를 허용할 경우, WCC의 1/3을 차지하고 있는 정교회와 갈등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또한 WCC부산총회를 준비하면서 불거졌던 교회협 소속 교단 내 갈등도 재현될 수 있다. 기장 배태진 총무는 “WCC부산총회를 준비하면서 예장통합의 독식이 지나쳤는데 이번 공동선언문도 일부 인사들의 독단에 의해 이뤄졌다”며 “연합과 일치라는 에큐메니칼 정신을 훼손한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이번 공동선언문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14일 한기총 실행위원회에서 홍재철 대표회장은 “이번 공동선언문은 한국 교회 진보와 보수가 화합하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화합의 초석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분쟁의 불씨가 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강석근 기자 harikein@kidok.com  정형권 기자 hkjung@kidok.com  송상원 기자 knox@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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