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은 강단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중세 가톨릭 뒤따라간 한국교회, 욕망이 주인공 돼
목회자 영적 갱신에 초점 맞춰 성경으로 돌아가야


중세 가톨릭은 성경을 뒤엎었다.

환란과 핍박 속에서도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라는 진리를 꿋꿋이 지켜냈으나, 오히려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교회의 세속화가 진행됐다. 교권이 정권을 탐내면서 교황제가 생겨났고, 혼합주의가 교권수호를 위해 교회 안으로 침입했다. 아울러 성경을 변조하기에 이르러 100년, 1000년이 지나면서 가톨릭은 가짜 종교가 됐다. 말씀 중심의 종교가 아닌, 예전 중심의 종교로 변질된 것이다.

결국 종교개혁이 일어난 배경은 중세 가톨릭의 잘못된 신앙에 있었다. 성직매매가 성행했고, 신부와 수녀의 윤리적 타락이 극에 달했다. 무엇보다 성 베드로 성당 건축을 빌미로 교황청이 자행됐던 면죄부 판매가 직접적인 발단이 됐다.

1517년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교 교회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면서 종교개혁의 불꽃이 타올랐다. 95개조 반박문의 요지는 교리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성화의 삶을 권장한 것이었다. 루터는 구원을 돈으로 매매했던 면죄부 판매를 맹렬히 비판하면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그리스도에 의해 구원을 받는 것이다”고 강력히 선포한다.

▲ 칼뱅의 생가 전경.
21년 후 등장한 칼뱅에 의해 종교개혁은 완성된다. 목회자이자 강해설교자, 교육자였던 칼뱅은 철저한 교육으로 교회의 리더를 길러냈고, 경건생활을 위한 제도를 만들어 열정적으로 개혁을 추진해 나갔다.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주만 영광 받으심, 다섯 솔라를 제시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 그것이 종교개혁의 본질이었다.

그렇다면 종교개혁 495주년에 바라보는 한국교회는 어떤 모습을 갖고 있을까. 과연 종교개혁자들이 오늘날의 한국교회를 본다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정성구 박사(한국칼빈주의연구원)의 말이 걸작이다.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못할 것”이라는 그의 말이다. 그럴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이전 중세 가톨릭을 벤치마킹하는데 여념이 없다.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100년 만에 급성장을 이뤘지만 성장만큼의 분열도 겪어왔다. 성장과 분열이 반복되면서 초래된 것 중 하나가 개교회주의다. 개교회주의는 교회 간의 경쟁과 교회의 기업화에 불씨를 당겼다. 개교회주의를 지향하는 교회의 최종 목표는 다름 아닌 대형교회가 되어 버렸고, 그 대형교회가 뿜어내는 권위는 상당하다. 마치 중세 로마 교황청처럼 말이다.

대형교회 목회자가 교권의 주인이 되고, 그들의 속삭임에 노회와 교단이 끌려다니는 형국이 된 것이다. 이미 종교개혁 당시 칼뱅은 “목사는 야심을 가질 때 망한다”고 조언을 남겼으나, 한국교회는 선진의 가르침을 잊은 듯하다.

양적으로 치우친 한국교회의 기형적 성장이 낳은 또 하나의 폐해는 물질의 축복을 강조하는 ‘기복신앙’이다. 돈으로 구원을 매매했던 면죄부와 다를 바 없는 이 기복신앙이 교회 건축의 수단으로 등장해 교회 안에 물신주의가 파고들게 했다. ‘이신칭의’를 외쳤던 루터가 망연자실할 일이다.

성직매매는 도처에 깔려 있다. 수백 개의 신학교가 난립하고 있는 상황이고, 그 중 무인가 신학교들도 다수 판을 치고 있다. 특히 일부 교단에서는 돈만 받고 목사 안수를 주는 경우가 횡행하다. 무분별한 목회자 배출은 결국 목회자 윤리 문제로 연결되고야 만다. 하루가 멀다 하고 목회자 성범죄, 금품 비리가 터져 나오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과연 지금의 한국교회가 중세 가톨릭의 타락을 비판할 수 있을까. 물질과 권력에 지배당한 한국교회가 중세 가톨릭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종교개혁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오늘날 한국교회와 중세 가톨릭이 다를 바 없다고 언급하면서, 개혁의 기치를 올려야 할 때도 바로 지금이라고 말한다.

정성구 박사는 “60년 전 로이드 존스 목사는 야구선수가 강단에 설 날이 오고, 가수와 배우들이 강단에 서는 강단의 세속화를 예견했는데, 현재 한국교회가 그 꼴이다”며 “강단에서부터 개혁의 바람이 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은선 교수(안양대)도 같은 맥락의 조언을 했다. 이 교수는 “한국교회의 정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목회자들의 영적 갱신이다”며 “개혁의 시작은 강단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혁의 시작은 강단에 맞춰졌다. 즉 목회자가 바로 서야, 예배의 회복이 찾아오고, 설교의 회복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자신만 드러내고, 교권을 즐기고, 물질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목회자의 변화된 삶을 통해 예배의 개혁, 강단의 개혁이 일어나 교회개혁으로 이어진다는 말이다.

개혁교회는 개혁되어야 하고 개혁의 본질을 찾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그것이 개혁교회 본연의 가치다. 이은선 교수는 “개혁교회는 특정한 것이 아니라, 성경에 근거해 가장 성경다운 모습을 회복하는 교회이다”며 “교회의 개혁은 곧 성경으로의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한국교회의 개혁은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이 이해했던 복음의 진리를 통해 가장 성경적인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과제이다. 그런 개혁의 바람이 다시 불어야 한다.

 
개혁은 교회의 지속적 과업

신학과 삶 통전적 변혁 필요

개혁의 길 잃은 한국교회 과제는


종교개혁 당시 로마가톨릭교회는 가톨릭 자체의 신학적 오류뿐 아니라, 성 베드로 성당 건물을 위한 면죄부 판매, 성직매매와 친족주의, 성상숭배 등 세속주의와 물신주의에 빠져 타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가 지탄받고 있는 지점 또한 16세기 로마가톨릭교회와 유사하다. 교회건축을 위한 헌금강요, 목회세습, 교회재산 사유화, 목회자의 도덕적 타락, 기복신앙 설파 등. 세속주의와 물신주의에 압도돼 개혁신앙의 원칙을 저버린 교회를 향해 교회 안팎에서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오히려 개혁신앙의 대척점에 서 있는 가톨릭교회가 적극적인 사회참여와 봉사활동 등으로 사회적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있다. 왜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할 한국 개신교회는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일까?

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 배덕만 교수는 한국교회 타락이 한국의 정치사회경제적 변혁과 맞물려 있다고 지적했다. 개혁신학은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젤러 선교사 등 초기 선교사들이 한국 땅에 개혁신앙을 전하며 신분제와 가난에 억눌리고 고통 받던 민중에게 희망과 개혁의 종교로 자리잡았다. 이후 개혁신학은 신사참배 반대운동, 3·1운동 등을 이끌며 사회개혁에도 앞장서는 변혁의 종교였다. 그러나  남북분단, 6.25전쟁, 급속한 경제발전에 따른 교회의 급성장 등 복합적인 역사적, 정치경제적 요인들이 작용하면서 그 본질을 잃어갔다. 배덕만 교수는 “남북분단과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 한국 개신교의 기득권 세력과 정치경제의 기득권 세력이 유착하며 ‘반공 친미 이데올로기’를 기득권 유지의 근거로 삼고 있다”며 “그 결과 한국교회 내부에서 개혁의 소리가 높을 때마다 기득권들이 이들을 개혁세력이 아닌 친북좌파로 몰며 내부 개혁의 자정능력을 마비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교 교회 정문에 붙인 95개조 반박문.
신학적인 측면에서 총신대학교 안인섭 교수는 “개혁신학(Reformata)이 삶의 지속적인 개혁(Reformanda)으로 이어지지 못한 신학과 삶의 괴리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비록 정치경제적인 외적인 변화가 큰 영향을 미쳤을지라도, 그 핵심은 그러한 외적인 변화 속에서 한국 개신교회가 개신교회의 정신이자 핵심인 개혁신학을 ‘신학’이라는 학문으로만 받아들이고 이를 삶의 저변까지 적용하지 못한 점에 있다는 것이다. 다수의 목회자들이 세속적이고 물신적인 삶에 개혁신학의 원칙을 압도되도록 방치했을 뿐 아니라 이를 자신들의 권력과 부를 누리는데 악용해 왔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종교개혁자들이 주창한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semper reformanda quia reformata)”는 신념처럼 개혁은 교회의 지속적인 과업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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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기획 <종교개혁 495주년, 다시 개혁이다>은 2회로 마칩니다. 앞으로 한국교회의 세부적인 개혁과제와 실천방안은 1889호부터 신학면을 통해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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