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마음 속 단단한 장벽부터 허물어야”

적대적 고정관념은 한반도 평화통일의 걸림돌 … 분단 아픔 치유하는 통일세대 다짐

 

▲ “울지마. 그리고 사랑해.” 통일세대 프로젝트 기간에 탈북민 박지훈 청년의 부친이 돌아가셨다는 비보가 날아왔다. 북한이라는 장벽 때문에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아쉬움과 서러움으로 눈물이 복받쳐 오르자 동료들이 위로의 기도와 격려를 전하고 있다.
미안(未安) : [명사] 남에게 대하여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러움.

“미안하다.” 한국 청년들이 탈북 청년과 대화하면서 처음으로 내뱉는 단어다. 북한에서 내려온 청년과 한국 대학생 20명은 지난 6월 24일부터 7일간 ‘통일세대 프로젝트’를 독일에서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도 “미안하다”는 사과가 잇따랐다.

마음의 장벽을 넘어라

청년세대의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러운 이유는 뭘까? 우선은 한반도의 평화, 즉 남북통일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았음을 미안해 한다. 김윤수 청년은 “그동안 남북통일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다”면서 “주변에 탈북한 친구도 없고 해서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실 꼭 통일이 되어야 하나라는 부정적인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막상 탈북한 또래를 만나고 보니까 그동안 내가 정말 잘못된 생각을 했구나하고 반성이 되더라고요. 이들을 만나면서 반드시 통일이 되어야 한다, 그것도 빠른 시일에 성취되어야 한다는 간절함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윤수만의 고백일까? 흥사단이 대학생 111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학생의 절반(52.1%)이 북한을 같은 민족이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 경계대상으로 보고 있다.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다음세대의 공통적인 생각일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세대가 내려갈수록 더 심각해진다. 청소년 평화통일기자단이 우리나라 청소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반드시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응답은 32.8%에 불과한 반면,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은 42.1%나 됐다. 통일이 절대로 되지 말아야 한다(6.2%)는 응답과 통일에 대해 관심이 없다(17.1%)는 입장도 적지 않았다.

청년세대가 같은 또래의 탈북자들을 보면서 미안해하는 또 다른 이유는 마음의 장벽 때문이다. 이병국 청년은 “내 자신도 모르게 북한 사람에 대한 색안경이 있었다”면서 “북한에 대한 그릇된 고정관념이 통일을 막는 장벽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윗세대는 북한에 대한 적대적인 이미지를 우리에게 물려주었죠. 그래서인지 탈북자라고 하면 이름도 촌스럽고 생김세도 떨어질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제 안에 장벽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세대가 만들어 낸 허상이 통일세대로 가는 길목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통일의 시작점은 서로가 만나서 함께 호흡을 하는 것이다. 탈북자 사역을 하고 있는 임용석 목사(한꿈교회)는 “통일은 막연한 것이 아니다. 탈북자와 함께 삶을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남북한 기독청년들은 6월 24일부터 7일간 통일세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서울신대 박영환 교수(오른쪽)가 독일 현지인에게 남북 평화통일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사랑해” 속에 통일이 있다

“사랑해” 속에 통일이 있다

미안한 마음만으로도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왜냐고? 서로의 마음이 통했으니까.

미안이라는 단어는 자연스럽게 사랑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이진경 청년은 “나름대로 통일을 원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해 왔지만 그저 막연한 생각이었음을 고백한다”면서 “서로를 너무 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냥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이 답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통일이라고 배웠습니다. 통일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서로를 더 잘 알고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박유경 청년도 “모든 문제는 서로를 알지 못하는 데에서 발생하는 것 같다”면서 “서로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통일, 마음의 무릎으로

꿈에도 소원인 통일은 언제쯤 될까? 여기에는 의견이 엇갈렸다. 일부 청년들은 “멀지 않았다”라는 입장이지만 일부 청년들은 “언젠가는” 이라는 표현을 썼다.

김예훈 청년은 “독일은 45년 만에 통일을 경험했다. 당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면서 “우리도 빠른 시일 내에 통일의 날이 올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유성민 청년도 “어른은 통일에 대한 꿈을 꾸는 세대였다면 우리는 통일을 이루는 세대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반면 한반도 통일이 쉽지만은 않다는 입장이 우세했다. 이서희 청년은 “북한은 다른 공산국가와 달리 주체사상으로 세뇌되어 있다. 따라서 쉽게 통일이 되지 않을 것 같다”면서 “어른들이 전쟁세대라면 우리는 통일을 준비하는 가교역할을 하고 다음세대에서야 통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지훈 청년은 “우리는 직접 총부리를 겨눴기 때문에 통일이 쉽지 않을 것 같다”면서 “막상 통일이 되어도 하나가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 시기에 대한 입장차에도 불구하고 복음통일에 대한 의지만은 하나가 되어 있었다. 윤도희 청년은 “복음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북한주민들을 위해서라도 빠른 시일 내에 통일이 되어야 한다”면서 “지금부터라도 한국교회가 한반도 복음통일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진 청년은 “동서독 교회의 기도가 있었기에 독일이 통일될 수 있었다”면서 “그러나 북한에는 교회가 없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지금보다 몇 배 이상의 기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우리는 정치적으로 한반도 평화통일을 구상해 왔다. 그러나 예상과는 반대로 언제나 ‘갈등’으로 끝맺음을 했다. 한반도 평화통일은 정치가 아닌 마음의 무릎으로 풀어야할 숙제인 것이다.

 

▲ 니콜라이교회 관계자가 독일 통일의 단초가 됐던 평화시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독일 속담에 “연습은 최고의 전문가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타고난 재능가도 연습이라는 훈련이 없으면 최고의 자리에 앉기 어렵다는 뜻이며, 반대로 누구든지 열심히 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다는 말이다.

통일세대를 기획하고 취재하면서 자주 들은 단어 중에 하나가 “통일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기독교북한선교회 사무총장 이수봉 목사는 “젖먹이 아이들도 말문을 트기 위해 수없이 연습하고 훈련을 한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말로는 남북통일을 말하면서 어떠한 준비도 없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어쩌면 도둑놈 심보를 가졌는지도 모른다. 입으로는 쉽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노래하고 “북한 땅에도 십자가를 세워 달라”고 기도하지만 정작 삶에는 열매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 2만3000명이 넘는 탈북자들이 있지만 이들에게 따뜻한 말이라도 건넨 적이 있었던가.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복음통일을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탈북자들과 통일을 연습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임용석 목사(한꿈교회)는 “우리가 연합하지 못하고 통일되지 않는데 남북통일이 가능하겠는가? 먼저 한국인 성도들과 탈북민이 하나되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용석 목사는 탈북자를 보호나 케어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했다. 서로가 몸으로 부딪쳐 깨지고 다듬어져 결국 한 몸이 되어야 하는 부부와 같은 존재라고 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사상을 지닌 남한과 북한의 성도들이 만났기 때문에 갈등은 당연한 산물이며, 이 갈등을 극복하는 연습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동족상잔이라는 아픔을 겪은 전쟁세대에게 “사랑으로 북한을 품어라”는 주문은 지나친 요구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62년 이상 흘러 이 땅에는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더 많아졌다. 이들에게까지 분단을 강요하는 것은 역사의 또 다른 아픔일 것이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전쟁세대의 이후, 즉 통일세대를 준비해야 한다. 통일세대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북한 땅을 향한 애통함이 있어야 한다. 정치로는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지난 60년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배웠다.

통일세대는 탈북자들과의 연합에서 완성된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탈북자는 예방주사와 같다. 남북통일이 이뤄졌을 때 얼마나 잘 견뎌내느냐는 탈북자들과 얼마나 하나가 되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이 통일세대가 결국 한반도에 평화를 선포하고 복음통일을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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