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뛰어넘는 ‘통일신학’ 정립 시급하다

“동서독교회, 성경 입각한 신학 공유 … 조용한 협력·이해가 통일 밑거름 돼”

▲ 6월 25일 독일에서 진행된 통일세대 프로젝트에 참석한 남북한 기독청년들이 625장의 손수건을 하나로 묶으며 통일을 소원하고 있다.
1990년 10월 3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동독 정부의 최고 지도자 에리히호네커는 “독일이 통일되려면 40~50년은 더 있어야 할 것”이라며 호언장담을 했을 정도다. 그러나 에리히호네커는 이 발언을 한 지 한 달도 안 돼 권력의 자리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독일교회, 철옹성 무너뜨리다

그렇다면 철옹성과 같아 보였던 베를린 장벽은 어떻게 무너졌을까. 냉전의 해빙 분위기, 동서독의 경제력, 독일 민족성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겠지만 독일교회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라이프치히 광장에 있는 니콜라이교회는 독일 통일의 뇌관이 된 곳이다. 독일 통일 1년 전, 1989년 니콜라이교회는 매주 월요일 민주화와 통일을 간구하는 기도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9월 4일 기도회를 마친 수십 명의 성도들이 광장으로 뛰쳐나갔다. 경찰은 교회를 봉쇄하고 강경진압에 들어갔지만 시위는 확산돼 한달 뒤인 10월 16일에는 12만명으로 늘어났다. 나중에는 시위를 막아야할 경찰들까지 기도회에 참여해 통일을 요구했다. 이처럼 월요기도회는 독일 통일을 갈망하는 전국민 평화시위로 확대됐으며, 이들의 기도는 결국 기도는 베를린을 넘어 동독과 서독을 하나로 만들었다.

독일 통일에서 동서독 교회의 협력 스토리는 수없이 많다. 독일 통일 직전, 동독 주민 7000명이 헝가리를 통해 서독으로 망명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 이면에 동서독 교회의 협력이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서독교회는 동독에 갇힌 사상범 1명을 구출하기 위해 10만 마르크, 즉 우리나라 돈으로 1억 원을 지불하기도 했다.

백석대학교 주도홍 교수(기독교통일학회장)는 독일의 통일을 “조용한 개신교 혁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독일교회는 성경에 입각한 통일신학을 정립하고 있었다”면서 “독일 사회가 이념으로 갈라져도 교회는 특별한 공동체를 이루어 나간다는 신학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통일신학은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서독교회는 형편이 어려운 동독교회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인권문제가 터질 때마다 두 교회는 뒤에서 조용히 도왔다. 통일신학은 동서독의 협력으로 이어졌고, 결국에는 독일 통일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 한반도 평화통일 선언식에 참석한 독일 현지인이 남북한 통일을 함께 기원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통일지수는 몇 점?

독일교회가 한국교회에 주는 가장 큰 메시지는 “행동에 앞서 신학부터 정립하라”는 것이다. 남북분단이라는 현실을 뛰어 넘기 위해 한국교회는 수많은 통일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가 오래가지 못하거나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어보자. 한 선교단체가 20년 전에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이었다. 북한에 재건되어야 할 교회가 3040개”라며 북한교회 재건운동을 벌였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북한교회 재건을 위해 막대한 헌금을 사용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북한 지하교회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실효성을 비판하기도 했다.

서울신학대학교 박영환 교수(한국기독교통일연구소장)는 “통일운동과 사업은 많지만 이를 받쳐줄 신학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통일사역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통일신학이 정립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렇다 할 신학이 없다는 것이다.

“통일신학 정립이 시급합니다. 우리가 왜 복음으로 통일을 이뤄야 하는지 신학적으로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한국교회의 양면성도 극복해야할 과제다. 주도홍 교수는 “서독교회의 경우 비정치적인 모습으로 동독교회를 바라봤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겉으로는 도와주면서도 속마음이 다른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어려운 북한교회를 돕겠다는 손길에 이중성이 있다는 뜻이다. 결국 한국교회와 북한교회의 협력은 정치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 남북한 기독청년들이 한반도 평화통일을 염원하며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영토 통일보다 사람 통일이 우선

사람의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독일 뫼돌라로이트 박물관장 로베르트 로데게르는 “통일이 이뤄진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동독과 서독 주민들 사이에 왕래가 적다”면서 “지역적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려면 한 세대가 지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70년 가까이 다른 이념과 문화를 가지고 나눠져 살고 있는 한반도는 더 심각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독일과 달리 우리는 총부리를 겨눈 앙금이 사라지지 않아서 영토의 통일보다 민족의 통일이 더 어렵다는 지적이다.

기독교북한선교회 사무총장 이수봉 목사는 “한반도에 통일이 와도 사람의 통일이 되지 않아서 더 불행한 결과가 올 수 있다”면서 “그러기에 한국교회는 북한 복음화와 함께 남한 내 탈북자와의 통일을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올해 4월까지 국내 탈북자는 2만3568명에 이른다.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북한 복음화를 원한다면 이들과 먼저 통일을 연습해야 한다. 이수봉 목사는 “탈북자는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한국교회에 주신 북한선교의 씨앗”이라면서 “통일이 되었을 때에 북한을 변화시키는 주체는 북한의 현실을 가장 잘 아는 탈북자다. 따라서 한국교회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이들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만 명과 통일을 이루지 못하면서 2000만 북한주민과 하나가 되겠다는 주장은 말 그대로 ‘구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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