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도 교회도 세금 고지서 만지작

원천적 반대 입장서 ‘논의할 수 있다’ 태도로 선회
“재정 투명성 높여 사회 신뢰 회복” 목소리도 높아

#1 서울 강남구 개포동 상가에서 개척교회를 하고 있는 P목사는 작년 연말 역삼 세무서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일정한 수입이 없는 것 같은데 힘들면 매월 30만원 내외를 받을 수 있도록 영세민 등록을 도와주겠다는 것이었다. P목사는 하도 어이가 없어 먹고 살 만하다고 말했지만 썩 유쾌한 전화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리고 큰 수입은 없지만 정중히 목사라고 밝혔다고 했다.

#2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소재한 J교회는 매년 예산을 수립하고 공동의회를 거치면 장로와 안수집사 대표로 구성된 재정위원회가 모든 예산을 집행한다. 예산과 관련, 담임목사는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 물론 결산도 마찬가지다. 목회자가 갑종근로소득세, 주민세 등의 세금을 납부하는 것은 당연지사로  세무사를 통해 소득을 정확히 신고하고 세금을 원천징수 한다.

 

▲ 종교인 과세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와 다른 것은 ‘반대’에서 ‘논의’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19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종교인 과세를 언제까지 미룰 수 없다”며, “올 가을에 발표하는 세제 개편안에 종교인 과세를 포함할지 검토 중이다”고 밝혔다. 또한 “종교인 과세는 종교인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단계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박 장관의 이와 같은 발언은 일파만파 퍼져 기독교 목회자의 과세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의견들을 내놓았다. 가톨릭은 1994년 천주교 주교회의 결정에 따라 자발적으로 소득세를 내고 있으며,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1996년부터 사제들의 급여에 소득세를 원천징수 하고 있다.

따라서 사실상 박 장관의 종교인 과세는 기독교 목회자를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종교인의 과세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1968년 국세청이 성직자 과세조사를 시작으로 1992년, 2006년 등 사회 분위기가 바뀔 때 마다 몇 차례씩 요동을 쳤다. 2006년 종교비판자유실현시민연대는 “국세청장이 종교인의 세금을 제대로 거두지 않았다”며 직무유기로 고발한 적도 있다.

지금까지 기독교는 목회자 납세와 관련하여 “목회자는 근로자가 아닌 성직자로서 소득세를 내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다”고 말하거나 “성도의 헌금을 이중과세 한다”며 교회가 국가권력에 예속되어서는 안된다는 견해가 높았다. 하지만 지금은 6년 전과는 사뭇 다르다.

보수적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홍재철 목사는 “종교인의 소득세 과세는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만 교회의 실상을 고려하지 않고 여론에 밀려 졸속으로 적용해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홍 목사는 “목회자들이 자발적으로 납세하고, 다른 방향에서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옳다”며, “종교인 과세를 언급하면서 반 기독교 정서를 조장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마디로 종교인 과세는 교회가 자율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기총의 이러한 발언은 과거에 비해 상당히 달라진 태도다.

한국교회언론회 대표회장 김승동 목사는 “종교인 과세를 목회자 흠집내기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며, “목회자의 80% 정도가 생활보호대상자 수준이기 때문에 소득세를 내면 정부가 목회자에게 보조나 혜택을 줘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납세는 국민의 의무이고 국가를 위해 늘 염려하고 기도하는 성직자들이 굳이 반대할 사안은 아니다”고 밝혔다. 한국교회언론회는 ‘반 조건부’인 셈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김영주 목사는 “오는 4월, 실행위원회에서 목회자의 세금납부를 공식 안건으로 상정하겠다”며 한국교회가 과세와 관련하여 더 이상 머뭇거려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렇게 목회자 과세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는 분위기다.

하지만 목회자 과세에 앞서 현재 소득세를 납부하는 목회자에 대한 차별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높다. 목회자가 세금을 내면 근로자나 자영업자가 아니기 때문에 산재보험이나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역으로 사회보장제도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종교인에 대한 별도의 세목을 신설하여 종교인이 낸 세금으로 어려운 사람들 돕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견해는 목회자 80% 정도가 면세 이하의 소득을 올리고 있는데 국가의 지원없이 기독교가 미자립교회를 지원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목회자 과세는 아직도 논란 중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예전과 달리 보수적인 교회에서도 차츰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세정의 차원에서 목회자 과세가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지금은 교회의 재정투명성을 높여 사회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예장합동 총회장 이기창 목사는 목회자 과세와 관련하여 “이미 교인들이 세금을 냈고, 소득의 십일조를 제사장에게 돌리는 것이 당연한데 목회자가 별도의 세금을 내는 것은 불가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여론에 밀려 목회자 납세를 주장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못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세수입 증대보다 목회자 보호 강조

목회자 납세 외국 사례

미국=미국 정부가 성직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일은 세금을 통해 세수입을 늘리겠다는 것보다는 성직자들을 보호하겠다는 의지가 더 강하다. 즉 목회자 과세는 세금이 아니라 사회보장제도의 기틀이 된다. 미국 목회자들은 사역현장에서 은퇴하면 사회보장기금과 연금을 동시에 받게 된다. 성직자와 자영업자들은 소득세를 내는 것이 아니라 연방정부가 관리하고 있는 사회보장기금을 납부한다. 이렇게 기금을 일정 기간 동안 납부하면 은퇴 후 사회보장기금을 받을 수 있다. 또한 교회가 목회기간 중에 연금을 납부하면 은퇴 후 목회자는 이에 상응하는 연금을 받는다. 이렇게 수령한 연기금은 은퇴 목회자의 삶을 지탱해 주는 근간이 되고 있다.

독일=오랜 기독교 정통을 갖고 있는 독일의 경우, 목회자는 공무원과 유사한 개념을 갖고 있다. 따라서 국가가 급여를 지급하고, 월급에 대해 원천징수를 하고 있다. 교회 유지나 건축비도 국가에서 세금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렇게 목회자 급여와 교회 유지를 세금으로 지원하게 되면 관리상의 장점이 있다. 반면 교회는 국가의 관리를 받아 능동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교회가 국가에 귀속된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독일은 십일조를 폐지하고 ‘교회세’라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 교회세는 성도들이 납부하는 소득세의 8~10%를 과세하는 세금을 뜻한다. 이 세금을 교인의 수에 따라 각각 종교단체에 분배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독일교회의 급격한 하락으로 교회세를 징수하는 국가나 교회가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캐나다=캐나다의 경우, 성직자와 일반인의 구별이 특별히 없다. 즉 목회자도 일반인과 동일하게 소득세를 납부하고 있으며, 소득이 없는 경우에도 보조금 수령 등을 위해 무조건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일본=일본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즉 성직자에 대한 법규정이 별도로 없다. 차이점은 성직자들도 일반적인 소득신고를 하고 있다는 점이며, 대부분의 성직자들이 과세 기준 이하로 신고하고 있어 실제로 세금을 납부하지는 않는다.

성직자에 대한 과세체계는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대부분이 성직자의 근로소득세를 과세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신고 자체를 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

 
‘성직수행론’에 ‘과세형평론’ 제기

‘목회자 과세’ 찬반논쟁

목회자 과세논쟁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목회자 세금납부에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먼저 목회자는 성직을 수행하기 때문에 월급을 받고 일하는 노동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성직수행론’이다. 세금을 납부하면 성직의 세속화를 인정하는 것이고, 국가와 종교를 분리한 정교분리의 원칙에도 위배돼 교회가 국가의 지배를 받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이미 1992년 고 한명수 목사가 언론을 통해 주장한바 있다. 한 목사는 “하나님의 영광과 관계된 성직수행은 다른 정신노동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면서 “성직자의 성직 수행을 근로로 본다는 것은 일반직과 성직을 동일시할 위험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목회는 공익을 추구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과세하면 안된다는 ‘공익론’도 있다. 종교단체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를 대신해 공익적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조세우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성직자의 행위 자체가 정신적 유익을 위한 자선활동으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과세는 불가하다는 주장이다.

‘이중과세’라는 주장도 있다. 목회자의 급여와 교회운영은 성도들의 기부금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미 과세가 되었다는 것이다. 과세된 것에 또다시 세금을 매기는 것은 이중과세라는 논리다.

마지막으로 100년 가까운 세월동안 성직자에게 과세를 하지 않았다는 ‘관행론’도 있다. 종교단체는 공익적인 일을 하고 있으나, 정부로부터 보조를 받지 않는다. 이러한 종교단체와 성직자에게 과세하는 것은 불합리하며, 역사적으로도 실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론도 만만찮다. 헌법 제38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납세의무가 있기에 성직자도 예외는 아니다라는 ‘과세형평론’이 나오고 있다. 즉 성직자에 대한 비과세는 다른 국민과 과세형평이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세금은 공공재에 대한 ‘대가론’도 있다. 세금은 단순히 나라에 바치는 돈이 아니라, 도로이용 공공시설 사용, 국방, 의무교육 등 국가의 공적인 업무를 위해 내는 비용이라는 것이다.

성직에 대한 인식도 다르다. 과세를 교회 내부에서 이해할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이해하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학생을 가르치거나 나라를 지키는 일 어느 것 하나 성스럽지 않다고 주장한다.

관행론에 대한 반박도 크다. 성직자가 자진해서 납부하는 경우, 관세청에서는 이를 받아주고 있기 때문에 관행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최근에는 교회 재정투명성 재고를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국교회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은 교회의 재정 투명성이 원인이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과세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목회자 납세에 대한 국가의 판단은 어떨까. 서울행정법원은 2005년 “교회에 소속된 부목사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또한 2006년 종교비판자유실현시민연대가 국세청장을 고발한 사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은 “종교인에 대한 과세의무가 명문화 되어있지 않다”며 무혐의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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