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회·교권에 갇힌 교회정치

원리 되찾아 일치·화합 나서라

성경적 대의정치 회복, 제대로 된 권위 작동해야

 

▲ 교회정치는 일반정치와 구별되어야 한다. 교회의 직분자들은 자신이 가진 사상에 따라 민의를 실현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좇아 봉사자로서 섬겨야 한다.

 

교회정치는 세속의 일반적 정치와 원론적으로 구별되어야 한다. 일반 정치는 통치자가 권력을 갖고 국가를 대표하여 자신의 정치이념이나 민의를 따라 정치를 펼친다. 하지만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임을 분명히 직시해야 한다. 직분자들은 자신이 가진 이념이나 사상을 민의를 따라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대로 주님의 뜻에 따른 봉사자로서 섬김으로 교회를 다스리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세속적인 정치를 닮게 되면 늘 문제가 되고 분란이 일어난다.
한국 사회는 왕정시대와 일제시대를 거쳐 민주사회로 전환되면서 교회도 민주정신이 도입되었다. 교회는 한 나라가 민주정치를 시행하기 이전부터 민주정치에 대한 건전한 성경적 모범을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한국교회는 안타깝게도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민주화 운동이 전개된 이후, 교회 내에도 도전적이고 비판적인 형태의 민주정신이 유입되어 혼란이 가중되었다.
이와 같은 문제는 주로 장로를 중심으로 한 목사에 대한 저항이나 축출로 전개되어 원활한 목사와 장로의 협력관계를 파괴하는 주 원인이 되어 왔다.

교회정치의 개혁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의 구조적인 모순만을 지적하고 이의 쇄신을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보다 근본적인 신학과 교회의 전반에 대한 개혁을 요구했다. 왜냐하면 교회의 조직이나 제도 또는 복음에 대한 이해, 교회에 대한 신학적인 견해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교회의 제도와 개혁을 두고 루터와 칼빈의 생각은 달랐다. 이는 교회관을 바라보는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루터는 교회를 성도의 모임으로 이해했으나 칼빈은 교회가 성도의 모임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기관으로 인식하였다. 루터의 경우, 로마 가톨릭에 반발하여 그랬는지 몰라도 칼빈과 달리 교회가 제도임을 그다지 강조하지 않았다. 그래서 교회의 제도를 소홀히 하여 별로 의식하지 않은 점 때문에 가톨릭의 감독제도를 그대로 답습하여 예배의식도 소극적으로 개혁한 것으로 여겨진다.
칼빈은 종래의 교직자인 장로와 집사를 폐지하고 평신도의 대표를 장로와 집사로 세움으로서 목회자가 평신도와 더불어 치리하는 교회제도를 세웠다. 칼빈의 이러한 개혁은 평신도가 참여하여 교회를 치리하고 운영하는 모든 교회의 시작이 되었다. 스위스를 중심으로 칼빈에 의해 일어난 종교개혁은 바로 개혁주의 신학과 장로교 정치제도의 근간이 되었다.
이러한 개혁주의 신학과 교회의 제도적 전통은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폴란드, 헝가리, 스코틀랜드, 영국 등 전 유럽에 확산되었고, 개혁주의 신학과 정치제도를 계승한 영국은 청교도적 장로교회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를 탄생시켰다. 이들이 1620년 미국에 건너가 미국장로교회를 그리고 19세기에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장로교를 전파하였다.

한국장로교의 정착

한국장로교회의 정치원리는 미국 장로교의 정치원리와 동일하다. 1907년 독노회가 장대현교회에서 설립되고, 장로교 전통인 신앙고백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축약인 12신조와 정치규칙을 채택하면서 한국장로교회의 면모가 갖춰졌다. 이 때 조직한 7개 대리회를 노회로 개편하여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가 설립되었다. 한국장로교회는 당회, 노회, 총회의 3치리회가 세워져 교회정치의 원리인 대의정치를 하게 되었다.
1884년 복음이 전래된 이후, 한국교회는 의료, 교육, 남녀평등사상, 조혼 폐습 등 개화운동의 선구자였다. 이와같은 사역은 점진적으로 농촌계몽운동, 민족운동, 사회운동으로 전개되어 국권회복운동까지 확산되었다. 삼일운동과 독립운동에는 어김없이 한국교회가 있었고, 군사정권에는 비록 보수와 진보로 나뉘긴 했지만 민족복음화와 민주화운동의 매개체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교회는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장로교회가 장로교 정치를 바르게 이해하는 가운데 그 특성을 살려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종파적인 문제와 개교회중심의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당회에 해당하는 교회의 각종 위원회 이 외에 다른 권위나 개교회 내의 협의체가 막강한 권력를 행사하여 교회화합을 해치는 경우도 있다. 개교회주의는 대교회를 지향하여 적자생존의 약자를 도태하여 이기적이고 다른 기관의 제재나 감독을 받지 않고 무정부적인 교회정치를 잉태하고 있어 매우 위험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감리교에서는 교회를 위해 세움을 받은 감독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례이고, 장로교회는 이와같은 권위가 노회와 총회인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명이 서지 않고 있다. 오히려 노회나 총회의 권위가 대교회의 개교회주의에 밀려 자본주의를 닮은 교회로 빠지고 있다. 그래서 교회의 일치와 화합은 지금으로서 요원해 보이는 것이다.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각종 기독교 연합단체의 부정적인 모습도 다분히 교권주의 정치에 함몰되어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지적들이 높다.

 

▲ 일러스트=강인춘

H교회는 최근 5년새 목사가 3명이나 바뀌었다. 청빙공고를 내기가 바쁘게 담임목사가 교체된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목회자 자질이었지만 실지로는 장로들이 너무 거세 담임목사가 견딜 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요즘 교회의 분쟁은 목회자와 장로의 갈등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총회 재판국에 올라오는 상소나 소원 70~80%는 교회갈등이 주류를 이룬다. 물론 목사와 장로의 불화가 대부분이다. 지난 2년간 예장합동의 정치적 소용돌이도 교회분쟁에서 야기된 문제가 많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현상은 목회자의 재정적 비리였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목사와 장로의 갈등에서 파생된 문제가 대다수였다. 대형교회인 K교회, J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독교는 인간을 사회적 신분에 따라 차별하는 것을 죄악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나 만인이 평등하다고 가르치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정치적으로 입신양명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인에게 신분은 매우 중요하며, 그 직함에 따라 사람을 규정하는 것 또한 공공연한 사실이다.
사도행전 15장 23절을 보면 목사나 장로 모두 한 형제일 뿐이다. 그러나 상하구별과 신분주의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성경적인 직분이 제대로 수용되기는 어렵다. 한국교회에서 장로는 이미 하나의 신분으로 자리를 잡았다. 한번 장로가 되면 장로라는 직함은 영원한 장로가 되어 신분이 정당화 된다. 특히 장로를 장로교의 전통과 결부하여 항존직으로 판단하여 임기제를 시행하자는 제안에 상당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장로뿐만 아니라 권사나 집사의 직분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사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만큼 직분 과잉현상이 심하다. 전교인 과반수가 직분자이며, 심지어 장로는 평신도가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신분으로 생각하여 장로가 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한다. 거기엔 표현하기가 어렵지만 헌금 능력도 내포되고 있는 것이 우리 교회의 현실이다.
이러한 신분적인 사고는 섬기는 자세보다 군림하는 권위를 만들고 교회의 세속화를 재촉하는 양상를 보인다. 직분 문제는 장로만의 문제가 아니라 목사나 다른 직분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교회는 세속적인 원리에 빠지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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