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 목사(성명교회·대신대 교수)

 
도도한 개혁주의 물결 미래로 흐르게 하라

한국 장로교 신학 역사적 전통, 칼빈·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대소요리문답에 기반
지대한 영향 미친 선교사·신학자 개혁신앙 유산 재무장, 역동적 신학으로 발전시켜야

▲ 정준모 목사
장로교 신학적 전통과 뿌리는 초대 교회, 그리고 칼빈(1509)과 그 후예들인 개혁자들에게서 찾는다. 장로교의 개화와 전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8)에서 시작된다. 장로교의 신학원리는 칼빈에서 시작되나, 장로교라는 정치형태는 영국에서 본격적 태동이 이루어졌다. 스위스와 프랑스에서는 칼빈주의로, 네덜란드 등 유럽에는 개혁교회로, 영국 및 미국에서는 장로교라 통상적으로 불린다.

칼빈신학과 한국 장로교 신학 형성 과정

박형룡 박사는 한국 장로교 신학의 역사적 전통을 칼빈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으로 본다. 칼빈의 신학사상은 <신학지남>를 통해 한국 장로교회에 소개되었다. 1934년에 발간된 제16권 4집(통권 76호)에 7편의 칼빈에 관한 글이 실렸다. 남궁혁의 ‘칼빈 신학과 현대 생활’, 송창근의 ‘요한 칼빈의 일생’, 박형룡의 ‘칼빈의 예정론’, 채필근의 ‘칼빈의 교회관과 교회 정책’, 이눌서(William D. Reynolds)의 ‘칼빈 신학과 그 감화’, 라부열(Stace L. Robert)의 ‘성서 주석가로 본 칼빈’, 곽안련(Charles A. Clark)의 ‘강단의 칼빈’ 등이다. 1953년 신학지남이 복간되었고, 1954년 명신홍의 ‘칼빈주의적 근본정신’이 발표되었다. 1962년에는 <칼빈 특집호>가 발행되었다. 박형룡의 ‘칼빈의 현대적 의의’라는 권두언과 칼빈신학의 기본 원리가 실렸다. 또한 안용준의 ‘칼빈의 생애와 사업’, 오병세의 ‘칼빈의 신국관’, 명신홍의 ‘칼빈의 윤리사상’, 김희보의 ‘목회자로서 칼빈’, 조동진의 ‘교회 통일과 분리에 대한 칼빈의 해설’, 한철하의 ‘칼빈의 정치론’, 신복윤의 ‘신학용어 해설: 칼빈주의’, 한철하의 ‘반틸(Cornelius Van Til)의 칼빈주의 문화개념’과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의 ‘칼빈주의 강의에 대한 서평’이 실렸다. 그 이후 칼빈의 <기독교 강요>와 <성경주석>이 번역 출간되었다. 또한 휴 톰슨 커(H. T. Kerr)의 <기독교강요선>(1960년)이 번역되었다. T. H. L. 파카의 <존 칼빈의 생애와 업적>, F. L. 베틀즈(Ford Lewis Battles) <칼빈의 기독교 강요 분석> 등이 번역되었다.

그 후 칼빈에 관한 연구서들이 많이 한국교회에 소개되었다.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의 <칼빈주의>(1971), 뵈트너(Loraine Beitner)의 <칼빈주의 예정론>(1972년), 헨리 미터(Henry Meeter)의 <칼빈주의>(1976), 반틸(Cornelius Van Til)의 <칼빈주의 문화관>(1972), 니젤(Willhelm Niesel)의 <칼빈의 신학>(1973), 존 머레이(John Murray)의 <칼빈의 성경관과 주권사상>(1976) 등이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1970년대에 이르러 한국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칼빈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 이후 칼빈학회를 비롯하여 수많은 개혁신학과 관련된 학회가 생기게 되어 칼빈에 대한 연구, 논문 등이 많이 소개되었다. 특별히 2009년 칼빈 탄생 50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 학술제 등을 통하여 칼빈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한국교회가 칼빈 신학에 대한 이해가 매우 폭넓어졌다.

초기 한국 장로교 선교사의 신학적 특성

한국 장로교회 신학적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선교사들은 마포삼열(1890년 파송), 이눌서(1892년 파송), 곽안련(1902년 파송), 라부열(1907년 파송), 함일돈(1920년 파송) 등이다. 이들의 신학적 특성은 칼빈주의, 개혁신학과 신앙을 가진 자로서 칼빈주의 전통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절대 신봉한 자들이다. 이들은 출신에 따라 크게 3개의 신학교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마포삼열, 곽안련 등 메코믹(Mecomic) 신학교의 출신자들이다. 마포삼열(Samuel Austin Moffet)은 한국장로교회의 아버지라고 불리웠고, 평양조선장로회 신학교 초대 교장(1902~1924), 1907년 최초 독노회의 노회장을 지냈다. 곽안련은 40년 동안(1902~1941) 평양신학교 교수로서 목회학과 설교학을 가르치며, 51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이들은 구 프린스톤 신학교의 A.A 하지(A. A. Hodge)와 워필드(B. B. Warfield)의 신학사상을 이어받은 철저한 칼빈주의 보수신학자들이었다.

둘째, 이눌서와 구례인 등 유니온 신학교 출신자들이다. 이들은 미국 남장로교 출신으로 평양신학교의 조직신학 교수로서 성경의 신적권위를 강력하게 주장한 칼빈주의 보수주의자들이었다. 이눌서는 구 프린스톤 신학교의 A. A. 하지가 쓴 신학 교재(An Outline of Theology)를 번역하여 사용할 정도로 보수성이 강했다. 구례인 역시 프린스톤 신학교가 좌경된 이후의 변질된 신학을 비판하면서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를 적극 변호하였다.

셋째, 라부열, 어도만(Walter C. Erdman), 함일돈(F. E. Hamilton) 등 구 프린스톤 신학교 출신이다. 1920년 후반부터 메코믹(McCormic) 신학교 출신인 마포삼열과 곽안련 선교사 뒤를 이어 평양신학교를 이끌어갔다. 변증학 교수인 함일돈은 워필드와 메이첸의 신학적 전통을 따랐다. 이들은 성경의 절대적 권위, 무오성 및 유기적 영감설을 강조하였다.

한국 장로교 신학 형성과 미국 장로교 신학자들

한국 장로교 신학은 미국 장로교 신학자들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미국 장로교의 신학적 맥락은 칼빈의 후예인 조나단 웨드워즈(Jonathan Edwards)와 존 위더스픈(John Witherspoon)에 의해 1746년 설립된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시작된다. 찰스 하지(Charles Hodge), 벤자민 워필드(B. B. Warfield), 메이첸(Machen), 반틸(Van Til), 게할더스 보스(Geerhardus Vos), 에드워드 영(Edward J. Young), 벌코프(Louis Berkhof), 존 머레이(John Murray) 등의 영향을 받았다. 그 중 대표적인 한국 장로교 신학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몇 신학자들의 신학적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찰스 하지(Charles Hodge, 1797~1878)이다. 그의 생애 전부를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변증학과 조직신학을 가르키면서, 로마서 주석 외 몇 가지 주석을 쓴 19세기 최대 칼빈주의 신학자이다. 그는 성경 영감설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칼빈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철저히 신봉한 신학자였다.

둘째, B. B. 워필드(B. B. Warfield, 1851~1921)이다. 그는 찰스 하지(Charles Hodge) 를 이어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변증학과 조직신학을 가르쳤다. 그는 당시 슐라이엘마허(Schleiermacher)의 주관주의와 성경에 대한 고등비평에 대한 자유주의 신학을 방어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성경의 무오성과 신적 권위, 성경축자영감 교리로 자유주의 성경관의 침투를 철저히 막았다.

셋째, G. 보스(Geerhardus Vos, 1862~1949)이다. 그는 화란의 칼빈주의 신학자인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의 신학을 전수받아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개혁주의 성경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울 만큼 독보적인 존재로, 약 40년간 교수 생활을 하였다. 한국의 개혁주의 주경신학자인 박윤선도 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넷째, G. 메이첸(Gresham Machen, 1881~1937)이다. 그는 1906년에서 1929년까지는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신약학을 가르쳤다. 학교가 좌경화되자, 1929년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세웠다, 또한 1936년에는 미국 북장로교를 분리하여 정통장로교회(PCA) 창립하여 초대 총회장을 역임하였다. 그는 철저한 신조주의자였고 성경의 영감과 무오성,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신봉하고 교리의 순결성을 위해 투쟁하였다. 한국의 박형룡과 박윤선, 그리고 선교사들이 그의 신학적 영향을 받았다.

다섯째, 코넬리우스 반틸(Cornelius Van Til, 1895~1987)이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신학적 전통을 함께 하며 철저한 칼빈주의 입각한 기독교 철학의 기초를 놓았다. 그는 메이첸의 요청으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변증학 교수직을 감당하였다. 그는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를 철저히 비판하고 경계하였다. 그는 영감된 성경말씀으로 철저히 기독교 신학과 신학을 변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섯째, 존 머레이(John Murray, 1898~1975)이다. 그는 메이첸, 반틸과 함께 1930년부터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조직신학 교수로 봉직했다. 그는 철저한 칼빈주의 주석가요 성경신학자이다. 그의 대표저서로 <칼빈의 성경관과 주권사상>, <구속론>, <로마서 주석> 등이 있다.

일곱째, 에드워드 영(Edward J. Young. 1907~1968)이다. 칼빈주의 구약신학자로 한국 교회에 <구약총론>(1972)을 통하여 잘 알려졌다. 그는 성경 영감과 무오성에 대하여 성경 자체로 변호하고 옹호하였다.

여덟째,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of, 1873~1957)이다. 칼빈신학교 조직신학자로서 성경에 기초한 조직신학을 전개하였다. 그는 개혁주의 조직신학의 사명은 역사적 칼빈주의 신학의 전통에 따라 성경의 진리를 포괄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진술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성경은 신학의 유일한 원천이고 교리에 대한 최종 판단 규준이며 항상 신학의 중심은 교회라고 보았다.

한국 장로교의 대표 신학적 인물과 그 사상적 특성

한국교회 신학 형성, 전개는 그리고 공헌을 한 대표적 목회자와 신학자은 길선주, 박형룡, 박윤선, 명신홍, 정규오 등을 손꼽을 수 있다. 이들의 신학적 특성과 공헌을 약술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길선주(1869~1935)이다. 그는 한국 최초 평양신학교 졸업생이요, 한국교회 최초의 한국인 목사로 장대현교회의 목회자로 마포삼열을 비롯하여 선교사 교수들의 신학적 영향력을 직접 받았다. 그는 1912년 제1회 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 부총회장 겸 전도국장을 맡아 해외 선교 사업에 앞장섰다. 그는 한국교회의 최대 전도자이며 열정적 목회자이며 투철한 애국자이며 한국교회의 행정체계와 신앙체제의 정초를 놓은 한국 장로교 100년사 중 최초 대표적 인물이다.

둘째, 박형룡(1897~1978)이다. ‘한국의 메이첸’으로 한국 개혁 정통 신학의 보루이며 기초자이다. 그는 찰스 하지, A. A, 하지, B. B. 워필드와 루스 벌코프 등 칼빈주의 정통 신학과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의 교리와 규례를 표준으로 삼아 그의 신학을 체계화하였다. 그는 한국 장로교 보수 신학을 정립시켰고 자유주의 신학과 WCC의 도전을 철저히 막아내었다. 그는 <교의신학>(전7권), <박형룡박사저작전집>(제14권)으로 ‘한국신학의 고전’을 집필하였다.

셋째, 박윤선(1905~1988)이다. 그는 한국이 낳은 보배로운 주경신학자이다. 그는 어학의 천재로서 성경원어와 신학에 필요한 외국어에 능통했다. 그는 그레삼 메이첸, 반틸과 같은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영향을 깊이 받았고 스킬더, 흐레이다너스, 리델보스 같은 신학자의 영향을 많이 많은 칼빈주의 신학자요 목회자였다. 그의 성경주석의 원리는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서 제1장 9항에 근거하여 성경의 해석의 모오한 법칙을 성경 자체로 보았다.

장로교 교회의 내일을 위한 발전적 제언

첫째, 장로교에 소속된 목회자가 장로교 목회원리를 따르지 않고, 소위 교회 간판은 장로교, 목회는 순복음식으로 한다는 목회 현장을 본다. 말씀 중심으로 장로교 신학과 목회 원리는 배제하고 방언, 예언, 치유 등 신비주의나 영적 체험에 몰입하는 목회는 배제되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과 교리의 절대성을 보수하고 사수하되 개혁주의 신학의 본질인 하나님의 주권 사상이 교회와 신학교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전반에 흘러가도록 역동적인 신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셋째, 종교다원주의 시대, 절대 진리와 그리스도의 유일성 진리가 훼손되지 않도록 평신도와 차세대를 위한 교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특별히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 문답서>를 가지고 이 시대의 영성을 극복할 수 있도록 신앙 연조와 연령의 눈높이에 맞는 교리교육 방법론을 개발하여야 한다.

넷째, 비진리와 이단 교리가 범람하는 영적 전투장에서 교회가 개혁신학과 신앙으로 재무장할 수 있도록 목사 재교육, 당회원 교육, 평신도 및 주일학교에 맞게 장로교 정체성 교육이 절대 요청된다.

다섯째, 정치적 분파주의를 극복하고 복음과 진리 안에서 형제 교단간 깊은 교류와 연합운동으로 대사회문제, 대국가문제에 대하여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처가 따라야 한다.

여섯째, 개혁주의 신학이 시대적 조류를 극복하고 신앙과 삶의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생활지침서를 발간하여야 한다. 장로교인다운 장로교인 생활지침서로 개인, 가정, 교회 공동체에서 다음세대에 전수될 수 있는 전략적 방안이 요청된다.

일곱째, 남북통일시대를 대비하여 개혁주의 신학의 선교 정책과 비전, 북한 교회 재건과 건립을 위한 목회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여야 한다.

여덟째, 개혁주의 장로교 정체성을 가진 교회 살리기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교단 산하 농어촌 교회와 미자립 교회가 더불어 상생할 수 있는 총체적 기구를 만들어 구체적으로 실제적인 효과가 나타나도록 시급하게 대처하여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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