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 목사(성명교회·대신대 교수)

 
장로교 예배는 장로교 뼈대 담아야 한다

예배모범 떠난 예배는 장로교 정체성 훼손…신조·신학에 근거해야
다음세대 위한 모범적 예식서 발간으로 성경적 신앙전통 전수하자

▲ 정준모 목사
장로교회의 정체성은 교리, 정치, 예배 등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중세 교회의 타락의 주요인은 교리와 예배의 오염과 탈선이었다. 종교개혁의 두 축은 교리개혁과 예배개혁이다. 종교개혁의 초점은 바로 오염된 비성경적인 교리의 개혁과 탈선된 반성경적인 예배의 개혁이다. 장로교회는 장로교회로서 예배신학, 원리, 의식이 있다. 장로교회에서 인위적 목적 성취를 위하여 장로교 예배모범을 떠난 예배는 장로교의 정체성이 상실되는 큰 오류를 범한다. 본 글을 통하여 장로교회의 예배원리와 예배의식, 장로교회의 예배모범 변천 역사, 한국장로교회의 예배 정착 변천 과정과 예배 모범 채택, 그리고 한국장로교 예배 갱신과 개혁을 위한 제언을 하고자 한다.

장로교회의 예배원리와 예배의식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예배원리와 예배의식은 신조와 신학에 근거한다.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예배신학에 따라 예배원리와 예배의식이 결정된다. 장로교 신학의 기반을 세운 칼빈은 예배개혁에 전념한 신학자요 목회자이다. 그는 그의 신학의 정수를 담은 <기독교 강요> 초판부터 예배신학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그는 예배의 기본 요소를 찬양, 설교, 기도, 성찬, 헌금이라고 하였다. 그는 예배와 성찬의 통일성, 설교와 성찬의 유기적 통합을 주창하였다. 칼빈은 목회자의 매주 행할 직무로 설교, 교육, 성찬집례 등을 강조하였다. 칼빈의 예배신학과 의식은 스트라스부르그 시절(1538-1541)에 부서(Bucer)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칼빈은 1540년 스트라스브르그에서 작성된 예식서와 1542년 제네바에서 작성된 예식서를 만들어 예배의 지침서로 삼았다.

이 두 예식서에서 칼빈은 성경에 근거한 예배, 개혁신학에 맞는 예배, 교육적 목적이 담긴 예배, 삶의 변화를 주는 예배, 과장된 허식을 버린 단순한 예배를 강조하였다. 칼빈의 예배신학은 화란 개혁파 교회의 예배의식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16, 17세기를 거치면서 예배의식에 대하여 어떤 대회 혹은 총회에서도 강요, 결정되지 않았다. 다만 도르트 회의(Synod of Dort, 1574)에서 예배의식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어떤 고정된 예배 순서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존 낙스는 영국 국교회 예식서를 거부하고 칼빈의 예식서를 활용하였다. 1562년 에든버러 총회에서 <제네바 예식서>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이때 채택된 예식서는 세가지 경우 즉 성례, 결혼, 장례를 위해서만 사용하도록 하였다. 또한 총회에서 채택된 예식서를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강요하지는 않았고, 목회자와 당회의 재량에 맡겨 사용토록 하였다. 1643년에 개최된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영국 교회 개혁이 완성되었다. 이때부터 신앙, 예배, 교회정치 등이 로마 천주교로부터 완전히 개혁되었다. 특히, 1643년에서 1644년간 예배와 교회 정치에 대한 깊은 논의 후, 장로교 신학과 신앙의 전수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채택하게 되었다. 이 때, 예배에 대한 지침서로 <공예배 지침서>가 마련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영국 청교도들은 예배개혁이 바로 교회개혁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고 <공예배 지침서>를 만들었다. 이것이 오늘의 미국 장로교회와 한국 장로교회의 예배모범의 모체가 되었다.

▲ 일러스트=강인춘

한국 장로교의 예배 정착 변천 과정과 예배 모범 채택

한국장로교회 예배 내용, 구조, 형식 등 모든 예배신학과 모범은 초기선교사들에 의해 기틀이 마련되었다. 초기 한국장로교회 예배는 선교사들에 의해 선교사들의 사랑방을 예배처소로 드려졌다. 당시 사랑방은 복음전도와 예배공동체 형성의 긴요한 역할을 하였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보고에 따르면, 가두전도와 예배(Street Evangelism & Worship)를 통하여 결신자들을 얻게 되었다. 또한 결신자들을 사랑방을 통해 예배, 기도회, 성경공부, 세례식 거행 등으로 양육하였다. 선교사들에 의해 드려진 초교파 예배가 예배당 건축 이후부터 비로소 교파별 특성을 지닌 예배로 특성화되기 시작하였다.

한국 최초 장로교 조직 교회는 1887년 9월 27일 서울 정동 언더우드 사택에서 시작되었다. 한국 최초 공식적 예배주보는 부활절 주일예배를 위해 만들어졌다. 현재 미국 하버드 대학교 예칭도서관(Yenching Library)에 보관되어 있는 이 주보에 따르면, 두 가지 놀라운 사실이 발견된다. 첫째, 교리문답이 실려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질문과 대답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바로 장로교회의 예배 정체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즉, 장로교 예배신학이 개혁주의 전통을 이어받아 교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성시교독으로 목회자와 회중이 함께 예배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사제 중심으로 예배의식을 탈피하여 개혁교회의 예배 전통을 보여 주는 실례가 된다. 셋째, 축도 순서가 있다는 점이다. 이는 예배진행이 안수받은 선교사들과 한국인들이 함께 진행된 절기 연합 예배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장로교 정치의 특징인 교회의 연합성이 잘 지켜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부활절 뿐 아니라 당시 성금요일 그리고 기타 절기 때,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연합으로 모였다는 사실은 오늘날 한국 장로교회의 개교회주의 현상과 연합모임의 무관심, 비협조 현상에 대하여 깊이 반성해야할 역사적 거울이 된다.

마펫이 소개한 초기 한국 장로교회의 예배순서는 설교 중심의 비예전적 예배 형식으로 매우 간단하였다. 이것은 한국 장로교회의 설교 중심의 예배 즉, 비예전적 예배 순서의 토착화에 기초가 되었다. 그 이유는 선교사들이 피선교자들인 한국인 중심의 예배 주도권을 가능한 빨리 넘겨주고자 했던 네비우스 선교 정책의 영향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예배 순서 중 첫 기도를 목회자가 아닌 장로나 평신도가 인도하는 것은 한국 장로교회를 굳건히 세우기 위한 정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초기 한국 장로교회에서 부흥성장기에 이르기까지 한국 장로교회의 예배의 특성 3가지를 볼 수 있다. 첫째, 성경과 설교 중심의 칼빈주의적 청교도 예배, 둘째, 복음전도, 회개 결단, 기적체험의 부흥회식 예배, 셋째, 교회 법규나 예식서로부터 자유로운 탈예전적 예배. 즉 복잡한 예전의식, 예식서를 탈피한 간단하고 반복형 예배, 회중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예배 등이다. 1907년 제6회 총회에서 헌법을 작정하기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결정하였다. 당시 미국 북 장로교회의 헌법을 대부분 그대로 채택하였다. 1918년 총회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나타난 예배 모범과 권징이 소개되어 1년 간 연구하기로 하였다. 그 이듬해인 1919년 제8회 총회 때, 한국 장로교 예배 모범이 최초로 채택되었다. 이때부터 한국 장로교회는 신경, 요리문답, 정치, 권징, 예배모범 등 다섯 가지 영역들이 모두 하나로 묶어지게 되었다. 1921년 제10회 총회 때, 하나로 묶어진 헌법으로 완전한 한국 장로교 헌법이 마련되었다. 1922년 최초로 <조선 예수교 장로회 헌법>이 발간되어 개정을 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 장로교 예배갱신과 개혁을 위한 제언

칼빈은 예배회복은 곧 하나님 영광의 회복으로 보았다. 하나님 영광의 회복은 바로 예배 회복에서 출발되어야 한다 인식하였다. 칼빈은 중세 기독교의 타락의 일차 원인을 오염된 예배로 보았다. 그는 종교 개혁의 일차 관심을 예배개혁과 회복에 맞추었다. 오늘의 한국교회 타락과 위기는 비성경적, 반교리적 예배에 있다. 장로교 예배는 장로교 신앙과 분리될 수 없다. 장로교회 목사는 장로교 예배신학과 정체성을 따라야 한다. 장로교 목사가 순복음식, 침례교식, 감리교식 예배를 따르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그 이유는 장로교 예배 정체성에 대한 몰이해, 인기 영합, 인위적 목적 달성을 위한 예배로 전락될 뿐만 아니라 장로교의 정체성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장로교는 모든 예배 순서, 형식, 내용에 장로교 신학과 신앙에 내포되고 반영되어야 한다. 바른 장로교 예배 원리와 순서에 따라 바르게 말씀을 증거하고 바르게 신앙교육을 시킨다면 얼마든지 오늘의 위기 한국교회를 바르게 세울 수 있다. 한국 장로교의 예배개혁과 회복을 위한 제언은 다음과 같다.

첫째, 말씀 선포와 성찬예식의 회복이다. 말씀이 간증 혹은 프로그램 등에 우선순위를 빼앗겨서는 안된다. 은혜 방편인 말씀을 성령의 감동으로 뜨겁게 증거하고 성찬에 대한 복음적 깊은 감동을 받도록 예배의 본질을 회복하여야 한다.

둘째, 예배의 사람 우상화, 기복화 및 세속화를 막아야 한다. 예배의 중심은 설교자 혹은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예배시간에 설교자 만능주의의 신격화 현상이나 하나님의 영광을 설교자가 탈취하는 불행스런 일은 절대 개혁되어야 한다. 또한 온갖 예배를 드리면서 사람을 영웅화시키고 사람을 칭송, 칭찬하는 일은 절대 삼가야 한다. 하나님 영광보다 사람 인기 내지 편의를 탈피해야 한다.

셋째, 예배모범 및 예배예식서가 개정 혹은 발간되어 적절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탈예전적, 반예배모범적 예배는 교회사에 나타나는 극단적인 모습으로 재례세파가 범한 오류였다. 예배모범과 예배의식서를 따른 예배가 때론 기계적이며, 성령의 역사를 외면하고, 획일적인 예배가 되는 단점도 있다. 반면, 탈예전적, 반예배모범적 예배가 되면, 오히려 예배가 무질서하고 반성경적, 비교리적, 탈복음적인 예배로 전락할 수 있다. 특히, 오늘날 장로교 교단 내, 낮 예배를 비롯한 모든 예배뿐만 아니라, 청년, 청소년, 어린이 예배 등 각급 예배에 특별한 예배모범 내지 예배지침서가 없어 장로교 예배 신학과 정체성이 없는 예배진행으로 장로교 정체성을 심각하게 손상시키고 있다. 특히, 최근에 복음주의적 예배라는 명분하에 장로교 전통의 예배가 사라지고 있다. 장로교 안에서 빈야드, 직통계시, 관상기도, 열린예배 등 극단적 신비주의, 감정주의, 인본주의 등 비성경적, 반교리적 예배운동 물결로 장로교 예배 전통이 무너지고 있다. 장로교 예배 정체성 포기는 장로교 교단의 포기이다. 다음세대를 위한 장로교 예배 모범과 예식서가 교단 차원에서 속히 마련되어 장로교 예배 정체성을 세워 다음 세대에 성경적, 신학적, 역사적 전통을 전수하여야 한다.

넷째, 장로교회 예배 정체성을 더욱 견고하게 세워야 한다. 장로교 예배신학과 정체성에 따른 예배 회복 운동, 예배 전통 세우기 운동, 예배 문화 유산 물려주기 운동, 예배 문화 개혁 운동을 교단 정책을 세워 지속적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교단 신학교에서 목회자 후보생들에게 장로교 예배 정체성을 가르쳐 목회현장에 보내야 한다. 또한 교단 산하 모든 목회자들이 장로교 예배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인식을 가지고 목회에 임해야 한다.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회중들에게 일시적 감동을 주고, 인위적 목적 성취를 위해 장로교 예배 신학과 정체성을 이탈한 예배는 절대 삼가야 한다. 특히 신학과 역사의식의 분별력이 없는 다음 세대들에게 장로교의 값진 예배 신학, 예배 전통과 문화를 굳건히 세워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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