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문화유산 답사기(23)] 충북
[한국교회 문화유산 답사기(23)] 충북
  • 정재영 기자
  • 승인 2011.11.29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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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대하는 자세가 미래 결정한다

청주읍성터 주변으로 민족 자긍심 일깨운 신앙유적 곳곳에
존경과 사랑 받던 교회문화유산 계승은 지금의 태도에 달려


이른 겨울의 기운이 느껴지는 청주 무심천에는 눈부시게 파란 하늘빛과 급하게 비행하는 구름들이 물결 위로 고스란히 비친다. 오늘은 기독교유적과 문화유산들을 따라 전국을 숨 가쁘게 달려온 여정을 마무리하는 날, 선비동네를 찾아가는 발걸음도 마음가짐도 차분하다.


충북 최초의 신대교회

▲ 충북지역에 처음으로 교회가 설립된 청주시 신대동의 기독교전래기념비.
청주 서편을 흐르는 미호천 제방을 따라가다 보면 신대리라는 동네가 나온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면 마을 한 가운데를 차지한 비석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1985년 한국교회 100주년을 기념해 충북지역 교회들이 힘을 모아 세운 ‘기독교 전래 기념비’이다. 당초 신대교회 마당에 세워졌어야 할 이 비석은 교회 터가 좁아 고심하던 차에, 동네 사람들의 양해로 마을 중심에 세워질 수 있었다.

신대교회는 마을사람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세워진 교회이다. 경기도 죽산 둠벙리교회에서 열린 사경회에 참석했던 오천보 문성심씨가 은혜를 받고 돌아와, 가족들과 상의한 후 1900년 10월 시작한 교회가 이 지역 최초의 교회가 된 것이다. 한 때는 마을 근처 나루터의 주막에서 교회를 열기도 했던 특이한 사연도 지니고 있다.

신대교회에는 전설적인 인물 두 사람이 있다. 첫 번째 인물은 교회 설립자인 오천보의 아내 이춘성 전도부인이다. 선교사의 주선으로 평양신학교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이춘성 부인은 마을 인근은 물론이고, 층청도 일대를 누비며 왕성한 전도활동을 했다고 알려졌다. 또 한 사람은 일제시대와 6·25동란을 거치며 교회가 몹시 어려움을 겪던 시절, 교회를 지키며 명맥을 이어온 오을석 장로이다.

교회당 입구에는 두 사람을 기념하는 ‘이춘성 전도부인 공덕비’와 ‘오을석 장로 추념비’가 나란히 세워져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신대교회가 운영하던 청서학교는 선비 동네이던 신대리가 개화하는데 큰 공헌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은 외형상 작고 평범한 농촌교회일 뿐이지만, 이 땅에 복음이 뿌리내리는 모판 역할을 한 교회라는 자긍심이 여전하다.


청주제일교회와 망선루

▲ 청주제일교회와 애환을 함께 해 온 중앙공원의 망선루.
무심천 동쪽으로 형성된 옛 청주읍성터 주변으로는 10여 곳의 기독교유적들이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있다. 한 마디로 기독교 문화유산의 보고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 먼저 찾아갈 곳은 옛 남문 부근의 청주제일교회이다.

신대교회가 이 일대 최초의 교회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충북지역 기독교의 산실 역할을 한 곳은 1904년 설립된 청주읍교회(현 청주제일교회)이다. 청주제일교회를 통해서 충북 일대는 물론 멀리 대전까지 수많은 교회들이 설립되었고, 훗날 부통령까지 지낸 함태영 목사를 비롯해 구연직 이쾌재 등 3명의 총회장이 배출되기도 했다.

청주제일교회에는 1939년에 세운 고딕양식의 붉은 벽돌 예배당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건축 당시 일본인 목조기술자와 중국인 조적기술자, 한국인 벽돌공이 공사에 참여해 독특한 양식의 건물이 완공되었다. 건축 당시 청주지역의 명물로 이름을 냈던 이 예배당은 1950년 개축작업을 벌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심지어 6·25당시 포탄에 맞은 흔적까지 예배당 벽면에 남아서 험난했던 세월을 증언한다.

예배당 뜰을 장식하는 여러 기념물들도 청주제일교회가 지내온 백 년 세월을 증언한다. ‘창립 100주년 기념비’ ‘로간부인기념비’ ‘충북지역 기독청년운동 기독여성운동 민주화운동의요람’ ‘1987년 6월 민주항쟁 기념비’ 등과 함께 지난해 세운 기장 총회 유적지 제6호 지정 기념비까지 곳곳에 서서 역사의 굴곡들을 되새겨볼 수 있게 한다.

이 중 눈에 띄는 비석 하나가 ‘망선루터’ 기념비이다. 망선루는 고려시대에 지어진 유서 깊은 건물이다. 고려 공민왕 때는 이곳에서 과거시험이 치러진 역사가 있다. 그런데 1921년 일제에 의해 망선루가 허물어질 위기에 처하자, 당시 함태영 목사가 주축이 되어 망선루 보존운동을 벌였다. 결국 망선루는 교회당 안쪽으로 이전되었고, 청주제일교회가 설립한 청남학교 교사로 사용되는 등 오랜 세월 교회와 애환을 함께 해왔다.

이후 건물이 노후화돼 붕괴될 위기에 처하자, 망선루는 2000년 12월 새로운 둥지를 찾아 옮겨졌다. 청주제일교회 인근의 중앙공원을 찾아가보면 복원된 망선루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청주제일교회와 망선루는 교회와 민족문화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청주선교부 양관과 선교사 묘지

청주시 탑동 일대에는 밀러(한국명 민노아) 선교사를 비롯해 초창기 청주선교부를 이끈 선교사들이 생활과 사역 공간으로 사용했던 여섯 채의 양관이 남아있다. 이들 건물은 1983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3호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주제일교회 예배당이 구한말 천주교인들의 순교지에 세워진 이력이 있다면, 이들 양관은 바로 그 천주교도들을 가두어둔 감옥의 화강석을 주춧돌 삼아 건축된 독특한 사연을 지녔다.

이 중 포사이드기념관, 민노아기념관, 던컨기념병원(소민병원), 노두의기념관 등 네 채는 기독교 명문인 일신여중고 교정 안에서 보존되어있다. 양관들 중 가장 역사가 오랜 포사이드기념관(1906년 건축)은 선교사들의 거처로 사용된 건물이다. 한옥 양식과 서양식 건축양식이 조화를 이룬 건물 형태가 이채롭다. 포사이드기념관 앞에는 민노아 부례선 선교사 기념비와 함께, 이 땅에서 숨진 선교사 가족 4명의 묘지가 조성되어 있다.

양관이 조성되면서 탑동 언덕은 한 때 한국인들에게 금기의 땅처럼 인식되기도 했지만, 청주시내에 홍수가 나서 피신해 온 이재민들을 선교사들이 몸소 돌보아주고 임시거처로 사용하도록 양관을 열어주면서 오히려 선교의 접촉점 구실을 하게 됐다는 일화도 있다. 지금도 네 건물은 학교의 기도실, 상담실, 양호실, 생활관 등으로 각기 제 구실을 하는 중이다.

일신학교 바깥에 위치한 부례선 선교사 기념 성경학원은 현재 예장통합 충북노회 회관과 청주성서신학원 건물로 사용되는 중이며, 솔투우(한국명 소열도) 선교사가 거주했던 마지막 한 채는 현재 개인 소유 저택이 되어있다.


삼일공원의 사라진 동상

탑동 언덕을 내려오는 길에 청주동부교회를 들르면 특이한 모양의 순교기념비 하나를 만날 수 있다. 교회 설립자인 홍정음 목사가 허원훈 곽경한 전용섭 등 충북 출신 세 명의 순교자를 기념하기 위해 1971년에 세운 비석이다. 비명이 측면에 새겨지고, 사연과 이력이 정면에 새겨진 독특한 형태도 이채롭지만, 새긴 글씨를 쓴 장본인이 한 시대를 풍미한 정치인 김종필씨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이 비석에 다시 한 번 눈길을 주게 된다.

이제 마지막 발걸음을 수동 삼일공원으로 향한다. 삼일공원은 기미년 만세운동에 앞장선 민족대표 33인 중 신흥식 신석구 정춘수 손병희 권병덕 권동진 등 청주 출신의 인사 여섯 명을 기리기 위해 1980년 조성된 공원이다. 여섯 명 중 신흥식 신석구 정춘수 등 3명은 감리교 목사였다.

때문에 삼일공원은 청주 시민들 뿐 아니라 이 지역 기독교인들에게 자부심의 상징이기도 했다. 당초 공원에는 여섯 사람의 모습을 조각한 동상이 세워져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문민정부 출범 후 ‘역사바로세우기’ 작업이 우리 사회 화두가 되면서, 민족운동가에서 변절한 후 친일행적이 밝혀진 정춘수의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1996년 2월 8일 시민들의 손에 의해 정춘수의 동상은 두동강이 났고, 이 모습은 TV뉴스를 통해 전국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후 이들 동상은 2010년 3월 1일 중건 작업을 거쳐 새롭게 단장된 모습을 세상에 드러냈으나, 정춘수의 동상은 끝내 다시 세워지지 못했고 그 자리는 횃불 모양의 조각품으로 채워졌다.

한 때는 존경과 추앙의 대상이었던 존재도 이처럼 경멸과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이 유산답사를 마치는 마지막 순례지에서 큰 교훈을 준다. 한국교회의 중흥기는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현재의 찬란한 유산들은 한 세기 후에도 자랑스럽게 계승될 수 있을까. 아마도 그 해답은 우리 자신, 한국교회의 현재와 미래의 태도에 달려있을 것이다.

▲ ①청주선교부 양관들 중 하나인 부례선 선교사 기념관. 현재 예장통합 충북노회 회관과 청주성서신학원으로 사용중이다.
②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진천 성공회교회 한옥예배당.
③청주 삼일공원에 건립된 청주 출신 삼일운동 민족대표들의 조각상. 함께 세워졌던 정춘수 목사 동상은 2006년 철거된 바 있다.


충북지역 성공회 교회들

충북지역에는 유난히 오랜 역사와 뛰어난 문화적 가치를 지닌 성공회 교회들이 많다. 초기 선교사들의 예양협정으로 지역별 선교지 분할이 이루어졌던 시절, 성공회는 장로교회나 감리교회가 미처 자리 잡지 못한 지역들을 적극적으로 공략했고, 그 결과 진천 음성 등 충북 북부지역에는 일찍부터 성공회 교회들이 자리잡을 수 있었다.

특히 진천에는 1905년 서울 정동교회 주임사제였던 윌프레드 거니(한국명 김우일) 신부가 내려와 선교를 시작하면서 이를 통해 충북지역 첫 성공회교회가 설립되었다. 진천교회는 애인병원과 진명학교 등을 통해 가난한 백성들 틈으로 파고들었고, 음성 충주 청주 등으로 선교영역을 확대하는 거점역할도 하며 전국 최대의 교세를 자랑하기도 했다.

1923년에 건축된 진천교회의 한옥성당은 교회당 위치를 옮기는 우여곡절 속에서도 꿋꿋이 보존되고, 성공적인 복원작업을 거치며 문화재청으로부터 등록문화재 제8호로 지정받기도 했다. 한옥성당 곁에는 옛 예인병원 수술실로 사용하던 석조건물이 자리를 옮겨와서도 건재하며 교회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1935년 건축된 청주 수동교회 성당도 우리나라 향교를 닮은 건물골격에 서양식 장식물과 문양 등을 갖춘 특이한 외형으로 충북 유형문화재 제149호로 지정받으며 많은 방문객들이 즐겨 찾는 순례지로 각광받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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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문화유산 답사기가 23회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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