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샤머니즘에 혼합된 교회

 
‘축복 어음’ 남발에 교회는 ‘부도 위기’

곳곳에 스민 샤머니즘적 기복주의·강신 위주 체험신앙 기독교 정신 갉아먹어

#1  11월 초 경기도 한 대형기도원의 예배 풍경.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일주일 여 앞둔 때여서 그런지 설교자는 연신 수능을 들먹이며, 부모의 기도가 수능점수와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설교가 마친 후에는 안수기도를 하겠다며 수능을 보는 자녀를 둔 부모들을 앞으로 불러냈다. 우르르 몰려가는 사람들에게 설교자는 부모가 안수기도를 받으면 그 능력이 자녀에게도 임할 줄 믿는다고 열변을 토했다. 이어 자녀 이름을 헌금봉투에 적게 한 후 봉투를 드는 사람들을 향해 축복기도도 보탰다. 의도했든 아니든, 그 순간 설교자는 분명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영적 매개자이자, 복을 관장하는 영험한 제사장이었다.

#2  서울에 사는 주부 A씨(39세)는 오늘도 친정어머니의 잔소리에 머리가 혼란스럽다. 교회 권사인 친정어머니는 A씨를 향해 서둘러 집을 사라고 성화다. 가뜩이나 이웃한 친척집에 비해 출세한 자식이 없는데 제 자식이 번듯한 집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A씨는 돈은 없어도 가족과 형제 모두가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더 복이지 않느냐고 대꾸하지만, 친정어머니의 생각은 다르다. 불신자를 전도하기 위해서라도 기독교인이 먼저 돈을 벌고, 출세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친정어머니의 말에 A씨는 기독교인이라면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마땅하고, 이제라도 재물을 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하는 건 아닌지 슬그머니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구약의 바알과 아세라를 비롯해 성경 전체는 이방신과 우상 숭배에 대한 경계가 가득하다. 하나님 이외의 것과 뒤섞이는 혼합주의를 금지하는 명령들이다. 오늘날도 인본주의, 실용주의, 현대철학, 명상, 신비주의, 종교다원주의 등 온갖 혼합주의적 형태가 교회를 위협하고 있다. 이중 한국교회의 경우 샤머니즘과 혼합된 기복주의가 기승을 부리며 기독교의 정신을 훼파하고 있다.

샤머니즘의 기원에는 여러 설이 있지만, 샤머니즘에 대한 정의는 비슷하다.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의 질병, 재난, 부귀영화를 관장하는 온갖 정령들이 있으며, 샤만이라는 이름의 주술사가 이들과 인간 사이를 중개한다는 것을 믿는 원시종교다.

샤머니즘은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불교, 도교, 유교 등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쳐왔으며, 기독교마저도 예외가 아니다. 샤머니즘이 교회에 미친 악영향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기복신앙이다. 기복신앙 개념 전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김영재 박사(전 합신대 교수)는 “기복신앙은 사람이 자기의 안녕을 위해 복을 구하는 신앙이지만, 종교적인 신앙의 출발이고 핵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으로서 가지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주장이다. 문제는 한국교회 내에서는 기복신앙이 철저히 현세적이고, 물질적이며, 이기적이라는 점이다. 또한 이때 추구하는 복 개념이 성경이 말하는 복에서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샤머니즘적 기복신앙은 교회 출석에 대한 생각부터 변질시킨다. 많은 교인들에게 교회에 가는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세의 복을 받기 위해서다. 남편의 사업문제나 자녀의 입시문제, 건강문제를 위해 점(占)집을 찾듯 교회를 찾는다. 주일예배에 빠지는 날에는 하나님께 벌을 받지 않을까 두려워하기도 한다. 무속에서 신의 미움을 사면 벌을 받는다는 생각이 하나님을 무속의 신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교회 출석은 무당이 쥐어주는 부적과 다를 바 없다.

설교에 있어서도 기복신앙은 팽배해 있다.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한다’, ‘기도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헌금 바치면 복 받는다’ 등 무조건 복을 강조하는 설교가 만연하다. 교인들도 강해설교보다는 이처럼 돈 벌고, 병 낫고, 복 받는다는 신비적이고 카리스마적 설교를 더 환영하고, 자연히 설교자는 교인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기복 설교를 이어간다. 더 심하게는 재앙을 운운하며 교인들을 겁주는 설교도 자행된다. 버젓이 성경을 왜곡하는 설교자도 있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이 영혼의 구원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성공과 육체의 건강까지 포함한다는 논리다. 때문에 가난과 질병은 구원받기 전의 상태이고, 구원받은 사람은 영혼과 육신은 물론 범사에 걸쳐 복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설교한다.

기복신앙은 기도와 헌금 생활도 변질시킨다. 입시철만 되면 전 교회적으로 수능생을 위한 100일 작정기도를 하는가 하면, 부도덕한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이 성공하도록 기도하고 복을 빈다. 기도를 자신에게 복을 달라고 올리는 결재서류쯤으로 생각하는 셈이다. 헌금 역시 하나님이 하신 일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에서 바치기보다 복을 받기 위해 바치는 경향이 많다. 갖가지 제목의 헌금을 만드는가 하면, 심지어는 봉투에 소원을 적어 바치는 소원헌금도 있다. 소원의 크기에 따라 헌금도 차이가 나야함은 물론이다.

기복신앙과 함께 한국교회에 두드러지는 샤머니즘 요소는 강신위주의 체험신앙이다. 샤머니즘에서 중요한 것은 신적 체험이다. 신이 자신의 몸속에 들어오고, 그 증거로 맨발로 시퍼렇게 날이 선 작두를 타고, 감춰진 무구를 신통하게 찾아내고, 신의 목소리로 말을 전해야 영험 있는 무당으로 인정받는다. 한국교회에서도 이러한 신비한 체험을 해야만 은혜를 받는 것이고, 성령을 체험하는 것이라 생각해 입신, 환상, 방언, 체험 등을 추구하는 일이 만연해 있다. 이런 강신위주의 체험신앙으로 인해 이른바 철새교인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은사집회나 기도원을 찾아다니며, 체험만 추구하는 교인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김세윤 교수(미국 풀러신학대)는 최근 한 강연에서 “성령의 역사랍시고 부흥사나 목사라는 사람들이 장풍을 쏘아대고, 신도들은 뒤로 넘어가면서 데굴데굴 구르는 것을 성령의 역사라 할 수 있느냐”며 잘못된 성령 해석을 꼬집었다. 김 교수는 이어 “우리 민족에게 복음이 들어와서 모든 귀신의 공포로부터 해방이 됐는데, 이제 성령의 카리스마를 받았다는 사람들로부터 성도들은 다시금 귀신공포증을 느끼는 현상에 이르렀다”고 강신위주의 체험신앙을 비판했다.

샤머니즘은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종교와 문화 속에서 끈질지게 이어져왔다. 전래된 지 120여 년 밖에 안 된 기독교마저도 심각한 변질을 초래할 정도로 그 영향력은 대단하다. 샤머니즘적 기복주의와 강신체험은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개독교’라고 지탄받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저급한 샤만의 신이나 바알신으로 추락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를 곪게 만드는 뿌리 깊은 샤머니즘을 뽑아내는 각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 일러스트=강인춘

 

“결국 살길은 개혁주의 회복”

샤머니즘 극복 위해선 ‘성경적 복’ 정립부터

“한국교회가 타락한 중세교회로 회귀하고 있다.”

최근 한 공개강연에서 김세윤 교수의 지적이다. 김 교수는 그 근거로 “목사들이 자신들이 제사장이라고 가르치고, 평신도들에게 충성과 순종을 요구한다”며 “목사들이 이런 사제적 권위주의가 한국의 기복신앙과 연결된다”고 비판했다.

루터가 가톨릭교회를 비판하며 ‘오직 성경만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종교개혁을 단행했듯, 샤머니즘에 뒤섞인 한국교회의 살 길은 개혁주의의 회복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샤머니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성경적 복(福)의 개념을 확실히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의 개념은 기복신앙에서의 현실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인 것과는 다르다. 김의환 박사(전 총신대 총장)는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 백성이 받는 축복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에 근거하는데, 그 축복은 아브라함의 씨에서 장차 태어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복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모든 축복의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완성되었고,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예표적 축복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가시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김영재 박사도 “예수님은 부와 권세를 가진 자에게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등에게 복이 있다고 가르치신다”며 성경이 말하는 복에 대한 올바른 개념 정립을 주장했다.

설교의 변화도 필요하다. 교인들의 비위에 맞춘 기복적인 설교를 없애고,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만을 분명하게 증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설교자가 성경적인 신학을 정립하고, 성경적인 설교관을 적립해야 한다. 류응렬 교수(총신대)는 “기복신앙을 부추기는 설교는 주로 본문의 해석 없이 적용을 통해 나타난다”며 본문의 의미를 벗어난 적용에 주의할 것을 촉구했다. 설교의 변화와 관련해 목회자들의 각성도 필요해 보인다. 이윤재 목사(별세신학연구원장)는 “우리는 우리를 예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죄 가운데로 인도하는 사사로운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죽어야 한다”며 목회자들이 먼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변화될 것을 강조했다.

성경에 입각한 올바른 제자 양육도 요청된다. 현세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복을 추구하는 기복신앙 대신 십자가와 부활 신앙이 필요한 것이다. 박철수 목사(전 분당두레교회 담임)는 “예수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영광의 메시아로 오신 것이 아니라 고난의 메시아로 오셨다”고 밝혔다. 박 목사는 또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우리가 받을 고난의 십자가가 나온다”며 “두 가지 십자가 중 어느 한 가지만 알아서는 안 되며, 여기에 진정한 기복주의의 대안과 제자의 모습이 있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