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한국교회 문화유산 답사기(15)] 전북 서부
[연속기획/ 한국교회 문화유산 답사기(15)] 전북 서부
  • 정재영 기자
  • 승인 2011.10.04 2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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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조국의 강력한 심장이었다

서슬퍼런 일제와 수난의 민족사에 희망된 신앙유적 곳곳에
군산 구암교회·익산 남전교회에 서린 순국정신, 자긍심 일깨워


한국교회에 ‘조국’이라는 단어가 특히 그리웠던 시절이 있었다. 나라 잃은 설움, 국권을 반드시 되찾겠다는 열망이 목 언저리까지 차오르던 바로 그 무렵이다. 신앙과 애국심이 점점 동떨어진 개념처럼 인식되어가는 시대, 때로는 그런 분리를 강요하는 듯한 시대에 우리가 찾아갈 도시는 군산과 익산이다.
새만금간척지와 옛 군산의 도심이 만나는 접점, 한 때는 기독교환경운동가들이 성지처럼 여기며 즐겨 찾던 내초도에서 오늘의 여행을 시작한다. 과거 만선을 기원하는 어선들이 무시로 출항하고, 던지는 그물 가득 고기가 펄떡이던 시절은 아스라이 멀어지고, 이제 무성한 갈대밭과 즐비한 공장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터전에 아펜젤러순교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다.

① 한국인을 목숨 바쳐 사랑한 아펜젤러 선교사를 기념하기 위해 군산 내초도에 건립된 아펜젤러순교기념교회와 기념관.
② 익산 황등교회 ‘사랑의 종’은 한국선교가 시작된 1884년에 주조되었다.
③ 군산 구암교회 옛 예배당을 개조해서 건립한 군산삼일운동기념관.
④ ‘ㄱ’자 예배당을 간직해 문화재로 지정된 익산 두동교회.

아펜젤러순교기념교회

한국 최초의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 정동제일교회의 설립자로, 성서번역가로, 출판가로, 청년운동가로 잘 알려진 그 이름 앞에는 또 다른 수식어가 필요하다. 식민지 조선 백성들의 한과 분개를 누구보다 잘 이해했던 그는 독립운동의 숨은 조력자이기도 했다. 일제의 서슬퍼런 압제가 우리 민족을 옥죄기 시작하던 무렵, 독립신문과 서재필 같은 존재들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의 공로 덕이었다.
성경번역 회의를 위해 서울을 떠나 목포로 향하던 중 석연치 않은 해상사고로 목숨을 잃은 그의 죽음을 단순한 순직으로 부르지 않고, 순교 혹은 순국으로까지 평가하는 것은 그런 개인사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최후를 맞은 군산 어청도 앞 해상은 이미 2005년 감리교단에 의해 해상성지로 선포된 바 있다.
그리고 2년 후 어청도 해상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국교회, 그리고 한민족이 잊지 못할 고마운 은인을 향한 정성스러운 선물 같은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아펜젤러순교기념교회에는 우리 민족을 자유의 빛으로 안내한 미국인 선교사,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와 운명을 함께한 한국인 조성규의 아름다운 광채들이 채워져 있다.
독립된 건물로 세워진 순교기념관은 물론이고, 교회당 쪽의 카페, 복도, 계단 등에는 아펜젤러 가문이 이 땅에 남긴 자취들과 그에게서 비롯된 한글성경의 변천사, 그리고 옛 한국교회 선진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유물들을 풍성하게 마주할 수 있다. 아펜젤러가 완성했던 ‘누가복음뎐’ 영인본을 이곳에서 구해간다면 좋은 추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군산 구암교회

이제 해안선을 타고 북쪽으로 이동해보자. 충청도 땅을 굽이굽이 돌아온 금강이 서해바다와 마침내 조우하는 자리, 금강하구둑 곁에 옛 장로교 선교사들의 터전이었던 구암동산이 나타난다. 옛 학교와 병원들은 이미 다른 동네로 떠나거나 사라져버리고, 군산지역 최초의 교회로 불리는 구암교회만이 외롭게 남아있다.
호남선교 100주년을 기념해 건축한 새 예배당은 웅장한 위용과 달리,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을 건물 곳곳에 담고 있다. 꼭대기층 전망대를 시작으로 한 층씩 차례차례 아래로 내려오면서, 우리는 빛바랜 전시물들을 통해 민족의 수난기에 겨레와 애환을 함께 했던 한 교회의 뭉클한 사연들 속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새 예배당을 마주보고 있는 옛 예배당은 현재 군산삼일운동기념관으로 개조되어 사용되는 중이다. 한강 이남에서 벌어진 최초의 민족적 거사, 바로 군산 3·5만세운동의 발현지인 이곳의 뜨거운 함성을 거두어 모은 역사창고이다. 방문객들은 이 작은 공간에서 조국을 위해, 신앙을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여겼던 이들의 거친 숨소리를 듣는다.
특히 옛 군산 영명학교의 교사로 군산과 익산에서 각각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박연세와 문용기라는 인물들의 이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한 사람은 옥중에서, 다른 한 사람은 만세운동을 벌이던 장터 한 가운데서 처참히 목숨을 잃었지만, 그들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어린 후세들에게 고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의 서야할 자리를 바로 짚어주었던 참 스승들이었던 것이다.


익산 남전교회

▲ 기장 총회에서 유물 3, 4호로 각각 지정되어 있는 익산 남전교회의 교회록과 당회록(위). 익산시 주현동 구 시장에 마련된 순국열사비(아래)에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친필 휘호를 볼 수 있다.
삼일운동기념관에서 문용기 열사의 옷에 배인 선혈의 기억을 아로새긴 채, 우리는 그의 흔적을 쫒아 익산으로 향한다. 전주 군산 익산 김제 등 전북의 네 도시가 만나는 길목인 익산시 오산면 남전리에 자리잡은 남전교회가 익산 여행의 첫 행선지이다.
100년도 훨씬 더 된 옛날, 기독교로 개종한 후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주일마다 50리길을 마다않고 구암교회까지 찾아던 남전리 주민 7명이 한 가정집에서 예배를 시작했고 그것이 남전교회의 출발이었다. 그들로부터 신앙을 대물림한 문용기 박영문 장경춘 등의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군산 3·5만세운동으로부터 한 달 후, 익산장터에서 4·4만세운동을 일으킨 것이다.
만세행렬의 선두에 섰던 문용기는 일제가 짐승처럼 휘두른 총칼 앞에 두 팔을 먼저 잃고도, 목놓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기어이 목숨마저 앗기고 말았다. 당시 그가 입고 있던 옷은 현재 천안독립기념관에 전시되어 있고, 해마다 삼일절이면 그의 의거를 재현하는 퍼포먼스가 군산과 익산에서 신앙의 후배들에 의해 펼쳐지며 기억을 이어간다.
남전교회는 조국과 동포를 먼저 생각했던 선조들의 정신을 훌륭하게 이어받고 있다. 늙고, 가난하고, 병든 이웃들을 위해 섬기는 공간을 꾸미고 알뜰하게 이어가는 한편, 본당 현관에는 역사전시실을 마련하고 만세운동 당시의 역사자료집을 발간해 앞서 가신 님들을 추모하는 작업에도 게으르지 않은 모습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는 남전교회를 교단 최초의 유적지 교회로 지정하기도 했다.


▲ 오산면사무소 입구에 건립된 충혼비에는 문용기 장경춘 박영문 등 기독인 열사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오산면사무소·구시장터

남전교회에서 자동차로 몇 분 거리에 있는 오산면 소재지에서도 남전교회 교우들의 피맺힌 흔적들은 찾을 수 있다. 면사무소 입구에 건립된 충혼비에는 문용기 박영문 장경춘 등 세 사람의 이름이 뚜렷이 새겨져, 지금도 이 지역 사람들의 민족애와 자긍심을 일깨워주고 있다. 해방 직후 건립된 이 충혼비는 전쟁을 겪고,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지내며 훼손되었다가, 최근 새롭게 단장되어 산뜻한 모습으로 순례객을 맞이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은 문용기 열사가 숨을 거둔 현장인 익산시 주현동 구시장터이다. 이곳에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의 친필 휘호로 순국열사비가 건립되었다. 매년 4월 4일이면 이 지역 성도들과 시민들이 모여 추모행사를 벌이고 있으며, 초라한 기념비만 남아있던 주변도 익산시가 얼마 전 대대적으로 정비해 소공원이 단정하게 조성된 상태이다.
짧은 여행을 끝내며 우리는 스스로에게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인생에 신앙이란 어떤 의미이며, 조국은 또 어떤 존재인가.’ 거창하게 역사 강의를 듣거나, 애국계몽영화 같은 것을 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해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여행은 어쩌면 현재의 나를 있게 한 뿌리를 찾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더 둘러보아야 할 익산의 유적지들


두동교회 기역자 예배당

익산시 성당면의 두동교회는 익산시 문화관광 홈페이지의 첫 머리를 장식할 정도로 이름난 유적지다. 김제 금산교회와 마찬가지로 ‘ㄱ’자 예배당을 잘 보존해 희소성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불가능해 보였던 예배당 건축을 가능케 했던 전설 같은 일화로 인해 많은 관심을 모은다. 70년대와 최근에 건립된 교회당까지 나란히 이어져 있어 교회 건축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좋은 모델이 되기도 한다.


황등교회 사랑의 종

익산시 황등면에 소재한 황등교회는 높이 솟아오른 종탑이 명물이다. 이 종탑 안에 간직된 종은 1884년 미국에서 주조되었다. 미국 리스펙제일교회가 신앙 안에서 형제애를 표시하는 의미에서 황등교회에 기증했으나, 전쟁 발발로 일본에 잠시 머물러 있다가 1951년 6월 10일이 되어서야 황등교회에 도착했다. ‘사랑의 종’이라는 이름처럼, 이 일대 수많은 영혼들에게 평화와 안식을 전하는 싱그런 소리를 전해주고 있다.


고현교회 당회록

이리시와 익산군이 통합되기 전, 고현교회는 이리 시내에 설립된 최초의 교회로서 명성을 간직해왔다. 주소 이전과 설립 100주년을 기념한 현대식 예배당의 건축으로 옛 모습은 거의 찾을 수 없게 되었지만,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당회록이 잘 보존되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남전교회의 당회록이 해당 교단으로부터 유물로 지정된 것처럼, 고현교회 당회록에 대한 우리 교단의 공인과 보존 움직임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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