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닿는 곳마다 애국애족의 숨결이

‘농촌계몽 산실’ 상록수공원·일제 만행 현장 ‘제암리’서 민족긍지 배워
총신양지캠퍼스 내 소래교회·기독교역사박물관에서 신앙선배 숨결


안산을 시작으로 화성, 수원을 거쳐 양지, 이천으로 이어지는 경기 남부에는 다양한 기독교 문화유산이 터를 잡고 있다. 역사박물관부터 복원한 초기 교회와 미션 스쿨, 민족을 품고 떠나간 이들의 발자취를 아로새긴 역사에 흔적들이 우리를 손꼽아 기다린다. 때문에 지체할 새 없이 우리의 여정은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안산 상록수 공원

▲ 최용신기념관에는 심훈의 <상록수> 초판본을 비롯해 시대별 <상록수>가 전시되어 있다.
첫 번째 만남은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농촌계몽가와 약속했다. 서울에서 4호선 오이도행을 타고 상록수역에서 내려 그녀의 터전이었던 상록수공원으로 향한다.
최근 안산시는 상록수역에서 상록수공원에 이르는 길을 심훈의 소설 <상록수>의 실제 모델 최용신의 삶을 그려 조성했다. 이 길을 따라가면 어느새 상록수공원에 도착한다.
도시 개발로 인해 아파트촌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원 안에 일제시대의 농촌계몽가로 알려진 최용신의 생애를 기억하는 기념물이 보존되어 있다. 그녀의 농촌활동의 기반이었던 샘골교회와 샘골강습소터, 2007년 신축한 최용신기념관, 그녀의 묘역, 심훈문학기념비 등이 눈에 들어온다.
1907년 사리교회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샘골교회는 최용신이 마을 사람들에게 공부와 성경을 가르친 장소지만 현재의 건물은 수차례 증축을 거듭해 초기 교회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행히 교회를 마주보고 있는 최용신기념관에 우리의 아쉬움을 달랜다. 기념관 전시실에는 옛날 샘골강습소 풍경을 재현한 디오라마, 당시 사용했던 교가 악보와 교재, 심훈의 <상록수> 초판본, 생존한 제자의 인터뷰를 담은 영상물이 남겨져 있어 농촌계몽을 위해 헌신한 최용신의 삶과 열정을 곱씹게 한다.
기념관 부근에 있는 최용신 묘역에는 못 이룬 사랑에 가슴 아파했던 약혼자 김학준 장로가 함께 잠들어 있어 외롭지 않다. 1995년 정부는 최용신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고 그의 무덤은 향토유적 18호로 지정됐다.


화성 제암리 일대

안산을 나와 우리가 향하는 목적지는 3.1운동 당시 가장 격렬한 시위운동이 일어난 곳이자 일제에 의해 집단학살이 행해진 비극의 장소 화성 제암리다. 일본 육군중위 아리타 도시오가 이끄는 일본군이 1919년 4월 15일 제암리에 들어와 동네주민들을 제암교회에 가둔채 불을 지르고 사격을 가해 23명이 희생됐다. 당시 이곳에 들어와 고아와 난민을 도왔던 스코필드 박사 등 선교사들에 의해 일본의 만행이 국제사회에 알려졌다.
2001년 정부가 이 일대를 순국유적지로 지정하면서 제암교회를 현대식 건물로 다시 짓고 3.1운동순국기념관을 세워 공원형태의 성역으로 조성했다. 기념관 제1전시관에는 3.1만세운동과 제암리 학살의 사건배경, 증언자들이 말하는 제암리 사건에 대한 전시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제2전시관은 경기도와 전국의 3.1운동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고 시청각실에서는 제암리 사건을 목격한 증언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제작된 동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항일 독립운동의 정신을 널리 알리는 이곳은 역사의 현장이자 청소년들의 학습공간으로 꼭 한번 찾아봐야 하는 문화유산이다.
제암교회 뒤편 언덕에 있는 묘역은 제암리 사건 당시 학살된 23인의 유해가 발굴되어 1982년 합장묘역으로 조성한 공간이다. 그곳에 서서 옷깃을 여미고 기도를 드림으로 선열의 애국정신을 기린다. 순간 목 메이고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낀다. 그리고 또렷이 기억하겠다고 다짐하며 떠나는 발걸음에 순국23인 상징 조형물이 찾아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보낸다.

① 수원과 중부권 선교의 본거지로 꼽히는 수원종로교회 전경.
② 삼일중학교 내에 위치한 아담스기념관은 미국 아담스교회에서 설계하고 중국인 왕영덕이 공사했다.
③ 1988년 복원된 한국 최초의 자생교회인 소래교회.
④ 23명 순교자들의 얼이 숨쉬고 있는 화성제암교회와 3·1운동순국기념관.

수원종로교회·매향·삼일학교

제암리를 떠나 우리의 여정은 다음 목적지 수원으로 향한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화성행궁 앞마당을 찻길 너머에서 바라보고 있는 수원종로교회다. 수원종로교회는 수원 성안에 설립된 최초의 교회로 수원읍교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1900년 스웨어러 선교사 부부가 북문안 보시동에 기와집 10여 칸을 매입해 복음 전파를 시작한 후 1907년 현재 위치로 이전했고 1913년 새 예배당을 건축했다. 이 예배당 터는 원래 관가 소유로 천주교인들을 처형하던 곳으로 두 번의 증축에 이어 1969년 현재의 예배당을 신축했다. 수원종로교회는 수원지역 뿐 아니라 제천, 음성 등 충북지역과 여주, 이천 등의 경기 동부 지역까지 기독교를 전래한 본거지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수원종로교회 뒤편 수원천이 흐르는 화홍문 근처 110번지에는 매향중학교, 매향여자정보고등학교, 삼일중학교, 삼일상업고등학교 등 여러 학교가 몰려 있는데 이 학교들은 모두 북감리회의 미션스쿨로 문을 열었다. 매향학교(현 매향중학교, 매향여자정보고등학교)의 초기 학교 건물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지만 개교 100주년을 맞아 마련한 매향역사실을 통해 매향학교의 세월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이곳에는 개항기 선교사들이 사용한 악기인 앙금과 초기 교사와 학생, 체육대회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또 경기도 기념물 제175호로 지정된 삼일학교 아담스기념관도 눈 여겨 볼 만 하다. 1923년 미국인 선교사 노블 감리사가 미국 아담스교회에서 재정과 설계를 지원받아 세운 2층 벽돌조 양옥으로 서구적인 감각과 세련미가 물씬 풍긴다. 현재는 방송실과 재단사무실로 사용 중이다.


소래교회·순교자기념관

이제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는 차편에 몸을 싣고 총신대학교 양지캠퍼스를 찾아가자. 기숙사동 뒤쪽 나지막한 언덕 위에 복원된 소래교회가 우리를 반긴다. 소래교회는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 1883년 5월 서상륜, 서경조 형제가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솔래에 세운 한국 최초의 자생교회다. 처음에는 초가였지만 두 차례 증축을 거쳐 1896년 기와집 교회가 되었다. 1988년 예장합동 황해노회가 중심이 되어 복원한 소래교회는 1896년 증축된 예배당의 모습 그대로 팔작지붕을 지닌 ‘ㄱ’자 모양의 한옥이다. 현재는 총신신대원 대학원생들의 교제 장소로 이용되고 있으며 교회 마당에는 최권능 목사의 기념비, 설립자 서상륜의 기념비, 한국교회의 선각자인 이수정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어 초기 교회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총신대학교 양지캠퍼스 뒤쪽으로 1km 떨어진 야산에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기념관으로 오르는 길에 순교자들의 이름과 성경구절을 새긴 자연석들이 늘어서 있어 눈길을 끈다. 1989년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회가 순교자들의 신앙과 정신을 기리고 한국교회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관했다. 1층 중앙홀과 계단에는 한국교회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역사화 40점이 전시돼 있고 2층 예배실에는 초기 한국 교회와 사회상이 담긴 120여장의 사진을 볼 수 있다. 순교자들의 존영과 유품이 전시되어 있는 3층에는 2,600여명에 달하는 한국 기독교 순교자 중 600여명의 순교자 명단이 이 곳에 헌정되어 목숨과도 바꿀 수 없었던 이들의 숭고한 신앙에 진수를 체험할 수 있다.


기독교역사박물관

①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2007년에 축소 복원한 장대현교회.
② 순교신앙을 가슴에 새길 수 있는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 전경.
③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에는 1887년 언더우드,아펜젤러 선교사가 공동으로 번역해 출간한 <마가의 젼한 복음셔 언해> 등 희귀본 출판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경기남부 여정의 마지막 목적지는 이천이다. 경기도 이천IC에서 남쪽으로 나와 초지리에 이르면 노인요양원 한나원 옆에 3층 벽돌건물과 만나게 된다. 바로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이다. 기독교문사 대표 고 한영제 장로가 사재를 털어 개관한 사립박물관으로 무려 10만여 점의 기독교역사 관련 자료를 갖추고 있다. 소장 자료는 초기 기독교 잡지와 희귀한 출판간행물이 주류를 이룬다. 5개의 상설전시장이 있어 기독교 역사의 전개에 따라 변천사를 한 눈에 알아보게 전시되어 있고 특별 기획전시회도 열기도 하는데 오는 9월부터 ‘민족의 횃불을 든 기독여성’이라는 주제로 개관 10주년 기념 기획전시회가 열린다.
박물관 뒤편에는 축소된 크기로 복원한 평양장대현교회가 서있다.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듯 남성도와 여성도 출입구가 따로 있는 한옥 예배당 앞에 서니 평양대부흥운동의 뜨거운 울림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소래교회 장대현교회 등 선교 초기 교회만 복원할 것이 아니라 위기를 접한 한국 교회가 초기 교회의 정신마저 복원해 선지자적인 역할을 감당하기 바란다는 소망을 그곳에서 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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