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희 목사 (신창동교회)

▲ 김동희 목사
선교지에서 다민족교회를 개척하여 사역할 때의 일이다. 같은 지역에서 한인교회 사역을 하던 선교사님 한 분이 갑자기 사역지를 옮기게 되었다. 그러자 그 교회를 대표하는 분들이 찾아와 그 교회를 맡아 설교를 해달라고 했다. 그런 일을 계기로 다민족교회와 한인교회를 동시에 사역하게 되었었다.

다민족파트는 30여 명의 성도로 그리 많지 않은 규모였지만 11개 나라의 사람들이 모인 다민족 공동체였고, 한인파트는 우리 한국인 성도 약 200여 명이 모이는 단일 공동체였다. 

주일마다 같은 예배당에서 시간을 달리하여 두 공동체를 섬기던 그 사역은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크신 은혜였고 특별한 경험이었고 보람된 사역이었다. 굳이 두 사역을 비교해 본다면 다민족 사역보다는 한인 파트의 사역이 몇 배 더 힘들었었다. 그것은 ‘말’ 때문이었다.

외국에서 한 문화를 배경한 같은 민족이 같은 말을 자유롭게 하며 함께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게 구사하는 ‘말’ 때문에 한인파트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계속 일어나는 것이었다. 교인들 간에 말 때문에 상처를 주고, 말 때문에 상처를 받고, 말 때문에 시험에 드는 일들이 많았다. 이에 반해 다민족 파트에서는 7년 여 동안 한 번도 말 때문에 교인들끼리 상처를 주는 일도 없었고, 말 때문에 시험에 드는 일도 없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말을 조심 없이 하기 때문이다. 말은 양날을 가진 칼과도 같다. 그러기 때문에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수록 조심해야 한다. 말 때문에 받는 상처는 말을 불편하게 하는 사이에게가 아니라 말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가까운 사람에게 받는다.

요즘도 교회마다 단체마다 ‘말’ 때문에 문제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 환경에 익숙해질수록 말을 조심해야 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을 조심해서 해야 한다. 우리말이지만 외국어로 말하는 것처럼 좀 불편을 느끼며 꼭 필요한 말만 하려고 했으면 좋겠다. 그러지 못하겠거든 차라리 입을 다물고 반벙어리가 되어 사는 것이 어떨까? 조심 없이 자유롭게 내뱉는 말 때문에 자신도 무너지고 공동체도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바벨탑을 쌓던 당시의 사람들이 사용하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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