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섬 돌며 사역하던 목회자 질병·경제난에 암울한 내일
사명감 하나로 지키기엔 버거운 터전… 체계적 대책 급하다

낙도의 영혼들을 위한 등대. 오늘도 외딴 섬의 작은 교회들은 외롭게, 그러나 오순도순 정답게 서로를 어루만지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복음사역자들은 누구나 고통과 아픔을 감내할 각오로 현장에 뛰어들기 마련이지만, 낙도의 사역자들은 그 스트레스의 강도가 훨씬 심하다. 사명감이 아니면 갈 수 없는 자리, 그곳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이들 덕택에 한국교회는 소외된 이들을 향한 긍휼과 사랑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낙도교회, 그리고 그곳에서 섬기는 사역자들로부터 절박한 응급신호가 전해지고 있다. 사회적 양극화가 더욱 심해진 최근 몇 년간 그 신호들은 더욱 잦아지는 중이다. 우리가 잊고 사는 사이, 바짝 시들고 여위어버린 그들의 자취를 다시 되돌아보고 복음 안에서 진정한 연대를 회복해야할 때이다.<편집자주>

새해 벽두, 수많은 낙도사역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부고가 남해안 흑산도에서 올라왔다. 총각 전도사 시절부터 32년간 낙도사역에 몸바쳐온 정삼섭 목사(수리교회)의 소천 소식은 그를 기억하는 동역자들에게 깊은 충격과 슬픔이었다.

특히 그의 별세 이유가 뒤늦게 발견한 종양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만약 도시교회, 하다못해 육지의 작은 교회에서라도 사역했더라면 중견목회자가 그토록 자신의 건강을 방치한 채로 지냈겠느냐는, 한탄과 자조 섞인 목소리가 퍼져나가고 있다.

▲ 낙도는 한국 교회가 함께 한 마음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선교지이다. 낙도교회 관계자들이 종탑을 수리하며 복음전파의 소명을 다하고 있다.
특히 처음에 몸에 이상을 느끼고 찾아간 병원에서 영양실조라는 판정을 받았고, 본인도 이를 의심하지 않았다는 뒷이야기는 더욱 가슴을 저리게 한다. 이웃 동네에서는 양식으로 큰돈을 버는 풍족한 섬에 살면서도, 그는 언제나 가난한 섬교회 목회자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동네사람들을 위해 손수 우물을 파고, 방과후 할 일이 없는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던 교회당은 고인의 유언에 따라 아내인 김정자 사모가 지키고 있다. 가족과 친척들은 이제 고생 그만하라며 육지로 나올 것을 권했지만 남편이 평생 사랑과 헌신으로 일군 터전, 그리고 마지막 남은 유해가 뿌려진 그 바다를 지키기로 했다.

생전에 남긴 글을 통해 자신의 목회생활을 ‘귀양살이’에 비유하기도 했던 정 목사는 결국 이렇게 마지막까지도 섬을 떠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 목사만이 겪는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전국에는 400여개의 크고 작은 유인도가 있고, 그 섬들을 지키는 600여개의 교회들이 있다. 그리고 이곳은 심신의 고통과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자신의 목회지를 사명감 하나로 지키는 수많은 사역자들이 섬기고 있다.

23년간 낙도에서 사역해온 이지환 목사(흑산제일교회)는 정삼섭 목사의 사연이 전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비교적 가까이서 동역자인 정 목사의 활동모습을 지켜본 이유도 있지만, 그 역시 못지않은 쓰라린 고통 속에서 사역을 감당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복음화율이 가장 높다는 신안군에서도 무교회지역으로 남아있던 상태도와, 흔히 ‘여트미’라고 불리는 오지인 흑산도 천촌리에서 사역하며 젊은 날을 낙도선교에 통째로 바쳤다. 그를 통해 교회가 세워지면서 마을에는 풍어제와 당산제 같은 풍습이 사라지고, 무당과 술꾼들이 회심하며 돌아오는 등 영적 변화들이 기적처럼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승리의 기쁨 뒤에서 이 목사가 감내해야할 무게들은 너무 컸다. 기껏 어렵게 전도해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교우들이 자녀교육문제로 혹은 생업을 찾아서 훌쩍 뭍으로 나가버리는 일이 반복되면서 느끼는 상실감은 가벼운 것에 불과했다. 

동네 사람들로부터 쌀과 반찬을 얻어서 식사를 해결하는 생활고로부터 교회당을 세우는 과정에서 겪은 온갖 난관들까지 그야 말로 뼈를 깎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급기야 그 자신은 전립선비대증과 당뇨병 등 심각한 질환을 앓으면서도 제대로 치료조차 받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더욱 참담한 것은 평생의 동반자로 함께해 준 아내가 얼마전 폐암진단을 받은 것이다. 일단 급한대로 수술부터 했지만, 계속 되는 치료에 드는 비용과 재발가능성에 대한 염려 때문에 이 목사는 딱히 하소연할 데도 없이 가슴만 타들어가고 있다.

“사실 육지에서 겪었던 고난들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혹독했던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단순히 섬목회에 대한 의지와 열정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들었지요. 하지만 매일 가족들과 함께 밤새 눈물로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가 나타나 마을에 복음의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된 것을 기쁨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목사는 앞으로도 자신의 여정에 동행하실 주님을 의지하며 어려움을 이겨내겠노라고 다짐한다. 사도 바울을 손짓해 부르던 마게도냐 사람들처럼, 복음의 기쁜 소식을 기다리는 갈급한 영혼들이 섬에 존재하는 한 복음사역자인 자신이 언제까지고 지켜야할 자리는 바로 이곳 흑산도라는 것이다.

완도 일대를 복음선을 타고 순회하며 사역중인 이상현 목사(한빛교회)도 그곳 교회들의 아픈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병원 치료비나 자녀교육비 문제로 한숨을 쉬는 이들이 한두군데가 아니란다.

“횡간도에서는 목사님에 이어 사모님이 심각한 안과질환을 앓고 계십니다. 앞을 제대로 못보는 상황이어 치료가 시급한데, 수술비 800만원을 마련할 길이 막막한 겁니다. 게다가 한 번 수술로 완치된다는 보장도 없고... 그래서 사실상 치료를 포기하고 있답니다.”

역시 완도에서 사역하는 또 다른 목회자의 사연도 기구하다. 어려운 환경에서 아들을 열심히 공부시켜 대학에 합격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어마어마한 등록금이라는 다른 벽이 나타났다. 결국 목사의 체면과 품위를 내려놓은 채 한창 공사판이 벌어진 다른 섬을 찾아가 막노동으로 일당을 벌기 시작했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아내까지 직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들의 심신이 얼마나 만신창이가 되어있을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문제는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며, 어느 누구도 이런 상황에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한국교회에는 낙도선교에 대한 인식전환과 함께, 교단 차원 혹은 후원교회 차원의 장기적이고 체계적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당장은 눈앞의 불부터 끌 수 있도록 섬교회를 향한 애정과 응원의 힘을 모으는 것이 시급하다.

·한국섬선교회(http://ksum.org)
  후원계좌: 농협 100061-51-029303 (예금주:한국섬선교회)
·낙도선교회(www.nakdo.org)   
  후원계좌: 우체국 013540-01-001250 (예금주:낙도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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