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공적특성 무시 획일적 개발정책 문제

시행요건 지나치게 폭넓게 규정, 관련법 개정 시급
‘비영리 기관’ 가치 인정 못 받고 대지·건물만 보상
교회 위상 제고 더불어 재개발 발상 전환 이뤄져야


▲ 재개발로 인한 원주민과 지역교회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 변화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사진은 높은 빌딩을 배경으로 더욱 황폐한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서울 우면동 재개발 지역의 모습.
재개발로 지역 교회들이 턱없이 낮은 보상비를 받고 대책 없이 쫓겨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법적인 문제 때문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현행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이하 도촉법)의 시행령을 보면, 현행법은 재개발을 시도하는 시공자의 입장에 유리하게 되어 있고 거주민들에게는 불리하게 정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촉법 제2조 3항에는 주거환경 개선 사업을 할 수 있는 ‘노후 불량 건축물’이 3가지로 규정돼 있다. 즉 재개발을 해도 되는 건축물은 첫째 건축물이 훼손되거나 일부가 멸실되어 붕괴 그 밖의 안전사고 우려가 있는 경우, 둘째 주거환경이 불량한 곳에 소재하거나 철거할 경우 효용이 현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셋째 도시 미관의 저해 등으로 철거가 불가피한 경우 등이다. 또 제2조 2항 1호에는 ‘건축물이 준공된 후 20년이나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재개발을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문제는 이러한 재개발 요건 가운데 한 항목만 해당돼도 재개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촉법 제10조 1항은 “주거환경개설 사업을 위한 정비계획은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지역을 수립한다”고 적혀 있다. 시나 도 차원의 재개발 주체가 마음만 먹으면 어느 한 요건을 문제삼아 재개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구조다.

이에 대해 부천의 오성계 변호사는 “건축물이 노후했다고 하더라도 튼튼한 경우가 있을 수 있으며, 재개발이 아니라 구조 변경만 해도 되는 곳도 있다”면서 “건물에 따른 특성을 무시하고 어느 한 가지 요건만 해당되면 재개발을 시도하는 것은 분명 위헌요소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재개발 요건에 대한 광범위한 규정은 이미 대전고등법원에서도 위헌이라는 판정까지 받은 바 있어 조만간 개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2010년 7월 대전고등법원은 ‘주택재건축사업정비구역지정 처분 취소 사건’에 대해 “수용이라는 강제적인 절차로 이뤄지는 주거환경개선사업의 경우… 건축물이 노후 불량인지에 대해 일반인이 통념상 수긍할 만한 정도의 조사과정을 거쳐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었다.

오성계 변호사는 “도정법은 특별법이므로, 국토해양부가 폭넓은 재개발 범위를 부여한 현행 특별법의 문제를 시정해 내용을 수정해 주무장관의 허락을 받으면 쉽게 해결될 수 있다”면서 교계가 재개발 대책의 한 방법으로 국토해양부에 청원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재개발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교계는 또 한군데의 정부기관인 문화관광부의 문도 두드려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문광부 차원에서 관심을 기울여, 교회를 ‘문화시설’로 분류한다면 재개발로 인한 피해는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교회는 ‘공공시설’로 분류되어 있는데 이는 목욕탕이나 슈퍼마켓과 동급이다. 이 때문에 교회는 재개발 지역 내 초 중 고교는 물론이고, 원주민이나 심지어 외부 벤처기업보다 훨씬 못한 대우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실례로 학교는 무상, 원주민이나 외부 벤처기업은 조성원가의 80% 수준으로 토지를 구입할 수 있는데 반해 교회만은 100%를 다 내야 구입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이에 대해 예장합동 재개발대책위원장 최병남 목사는 “교회는 원주민으로 구성된 단체이며 지역에서 문화 교육 봉사 등을 하는 비영리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교회 사역을 다루는 문광부 종무실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교회의 특수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기 때문에 교회는 내부 시설이나 목회자 사택 등 부대 건물 등에 대한 가치 인정은 아예 받지 못한 상태에서 대지와 건물 부분만 보상을 받고 정든 터를 뜨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세의 절반 수준의 보상비를 받고 토지구입은 조성원가의 100%에 해야 되기 때문에 쫓겨난 교회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지 못하고 일부 폐쇄되기까지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지적이다. 또한 종교부지를 지나치게 적게 부여하고 있다. 그나마 재개발지역 외곽에 밀집 배치하는 현재와 관행 역시 시정돼야 할 문제점이다.

교계는 이러한 국토해양부와 문광부 차원의 시행령 개정과 교회에 대한 위상 제고와 더불어 무엇보다도 정부의 재개발에 대한 발상이 전환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기독교사회책임 김규호 목사는 “달동네라고 할지라도 그 안에 삶과 역사와 개인가치가 있는 것”이라면서 “단순히 개발의 잣대로만 삶의 터전을 평가하는 재개발 발상은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포한강신도시 종교용지 대책위원회 총무 정요섭 목사 역시 “획일적이고 강제적인 재개발 정책은 하루 속히 시정돼야 한다”면서 “외국의 경우 우리나라처럼 75% 주민 동의로 재개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일이 오래 걸려도 전체 주민의 동의를 받는다”고 말했다.

관계자들은 “한꺼번에 쓸어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재개발 방식은 전근대적인 것”이라면서 “이제는 선진국 형으로 부분적으로 재개발을 해 나가는 도시재생형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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