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특집] 성탄절 동행르포/ 상계동 덕릉고개 마을, 사랑의 연탄배달 함께하다

연탄 3장 지게 지었더니 첫 딸 백일 무렵 몸무게
눈 내린 가파른 비탈길 곳곳엔 배달사고 ‘지뢰밭’
‘고마워서 어쩌나’ 진심어린 한마디에 행복 전염

▲ 자원봉사에는 이마트 사랑의봉사단이 참여했다. 5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은 연탄배달로 가난한 이웃을 한번 더 생각하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연탄 한 장 깨뜨릴 때마다 벌금 1000원씩입니다. 알아서들 하세요.”

당고개역에서 내려 큰길을 따라 5분여, 다시 좁은 골목길로 한참을 올라가서야 비탈길 한켠에 연탄더미가 보였다. 서울에 이런 동네가 있구나, 노란색 조끼를 입으며 자원봉사자들은 연신 가파른 산비탈 위 허름한 풍경들을 살폈다. 전날 내린 눈 때문에 길이 미끄럽다며, 연탄은행 허기복 대표는 먼저 안전을 당부했다. 연탄을 깰 때마다 벌금을 걷겠다고 웃음 섞인 으름장(?)도 곁들였다.

오늘 전달할 연탄은 총 2000장, 열 가구에 200장씩 나누어줄 양이다. “한 해 겨울을 나는데, 600장에서 800장까지 들어요. 한 달 정도는 따뜻하게 지내실 수 있을 거예요.” 함께 배달에 나선 연탄은행 간사의 말은 보람 반, 안타까움 반이다.

예정보다 30분 늦어 드디어 배달이 시작됐다. 연탄 두 개를 받아들고 비탈길을 오르는데, 벌써 몇몇 노란색은 골목 안쪽으로 사라졌다. 대형할인매장 직원들이라더니, 역시 손놀림이며 몸짓들이 날랬다. 첫 번째 배달할 집은 언덕 위 가장 꼭대기 집이었다. 채 녹지 않은 눈길을 피해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는데, 어느 순간 연탄재가 밟혔다. 문득 어릴 적 겨울 아침이 생각났다. 골목 첫 집인 까닭에 아버지도 눈 내린 아침이면 늘 연탄재로 길을 만들었다. 변함없이 누군가의 작은 수고가 다른 누군가에겐 행복이 되는 법이다.
“여자들도 넉 장 들잖아. 너도 넉 장 들어.”

▲ 상계동 덕릉고개 마을은 전날 내린 눈으로 곳곳이 빙판져 있었다. 조준영 기자(오른쪽)가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연탄을 나르고 있다.
검정이 묻고 제법 땀도 나지만 동료가 있다는 건 여간 힘이 되는 게 아니다. 청년들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으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그들을 따라 옆에 있던 연탄지게를 졌다. 연탄 한 개의 무게가 3.6킬로그램. 세 개를 실었더니 얼추 첫 딸 백일 무렵 몸무게와 맞먹었다. 초보 아빠처럼 지게를 짊어진 발걸음이 더 조심스러워졌다. 여간해선 안 떨어지니 걱정 말라는 간사의 말을 듣긴 했지만, 덜그덕 소리에 잔뜩 어깨가 구부러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울산에 계신 부모님 생각을 했어요. 지금도 연탄을 때시거든요.”

자양동 매장에서 왔다는 김성훈(28세) 씨는 꼭대기 집에서 혼자 사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부모님 생각이 났다고 했다. “어디에나 가난한 사람은 있네요.” 말하는 모습이 대견해, 봉사 마치고 전화나 한 통 드리라고 했더니, 싫다고 했다. 전화드릴 때마다 자기 걱정만 하셔서 속상하다며 씩 웃었다.

두 번째 집은 좀 더 가까웠으나, 계단이 난관이었다. 거기다 연탄창고로 가려면 대문 옆 비탈진 담을 넘어야 했다. 몇 번 오르내렸더니, 제법 다리가 묵직해졌다. 세 번 짼가 계단을 올랐을 때 담 위로 따뜻한 커피가 든 종이컵들이 작은 쟁반에 놓여 있었다. 썩 춥지는 않았지만, 한 시간 가까이 한뎃바람을 쐰 탓에 연탄을 내려놓는 몇 초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고금자 할머니(70세)는 주방 겸 부엌 가운데 놓여있는 연탄난로 불을 가시며, 연신 함박웃음이셨다. 자식이 있어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이 안 돼, 노령연금과 국민연금 몇 푼으로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사시는데, 연탄이 모자라 한동안 춥게 지내셨단다. 평지에서는 한 장에 500원이지만, 지대가 높아 600원은 줘야 연탄을 들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집은 1000원을 줘도 배달을 안 해준다고 그나마 다행이라고 덧붙이셨다.

“고마워서 어쩌나. 커피가 아니라 라면이라도 끓여줘야 하는데….”

봉사자도 손님으로 생각하셨는지, 화장까지 곱게 하신 할머니의 인사에는 진심이 가득 담겼다.

10년 동안 연탄은행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해온 류동림 집사(순복음노원교회)를 따라 반대편 골목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한 명이 겨우 들어가 연탄을 내려놓아야 할 작은 집, 좁은 창고였다. 낡은 목도리의 집주인 할머니는 연신 미안하고,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다. 할머니의 빠진 앞니가 유난히 시려 보였다. 나라는 벌써 선진국이라는데, 아직도 누군가에겐 연탄마저 귀한 세상이다.

▲ 자원봉사자들이 줄을 지어 연탄을 전달하고 있다. 제법 요령이 생겨 속도가 빨랐다.
연탄더미가 있는 공터로 돌아오자, 어느 틈엔가 피자 파티가 열렸다. 자원봉사팀 회사에서 준비해 준 간식이었다. 크게 한 입 베어 무는데, 손톱에 연탄재가 까맣게 끼었다.

“이거 신제품이야? 피자에서 연탄 맛이 나네.”

누군가의 이야기에 너나없이 웃음을 터뜨렸고, 그러고도 주저 없이 까만 손으로 피자를 떼어 서로에게 권했다. 사랑과 섬김이 행복을 낳고, 행복이 아름다운 유대를 낳는 순간이었다.

마지막집은 바로 공터 건너편 집이라 줄을 지어 연탄을 나르기로 했다. 공터에서 2층 높이의 좁은 골목까지 줄을 지어 연탄을 전달했다. “잘 받아, 깨져.” 막바지에 이르러서 그런지 제법 흥이 나고, 웃음소리도 간간히 들렸다. 드디어, 마지막 연탄 한 장이 배달되기 시작했다. “마지막!”이란 소리에 “와!” 누구랄 것 없이 함성을 질렀다.

골목을 내려오다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봉사자들은 둘러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양이었다. 두 시간 반 정도 함께 있었지만, 악수를 나누고 헤어지는 순간이 제법 훈훈했다. 오늘 저녁 우리가 방문한 열 집도 갓 들여놓은 연탄 200장으로 따뜻하고 배부를 터였다. 발갛게 타올라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는 일. 해질녘 상계동 덕릉고개 마을은 제법 성탄절 풍경이었다.

한 사람이 겨우 드나들 수 있는 좁은 길 끝에 작은 양철문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움푹 꺼진 바닥에 왼쪽으로 작은 방 하나, 앞으로 오래된 싱크대가 보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 연탄난로 하나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수돗물이 다 얼었어. 우리같이 못사는 사람들한테는 여름이 좋아.”

신봉선 할머니(74세)는 방바닥이 차다며, 굳이 방석을 내놓았다. 방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낡은 침대 하나에, 선풍기형 전기난로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방은 기름보일러이지만, 비싼 기름 값이 엄두가 안나 전기난로로 겨울을 나는 중이었다. 신 할머니는 그 집에서 40년을 넘게 살았다. 그러나 보증금 10만원에 월세 3000원인 시절부터 시작해,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만원인 지금까지 세상은 많이 변했지만, 삶이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남편이 집을 나간 지가 49년째야. 그때부터 쭉 혼자 살았지.”

어린 4남매를 먹여 살리기 위해 신 할머니는 안 해본 일이 없었다. 파출부부터 시작해, 노점상, 막노동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사무소에서 하는 공공근로사업에 나가 일을 했다.

“20만원씩 받았는데, 그것도 6개월밖에 못해. 10월에 끝났어.”

때문에 신 할머니의 고정적인 수입은 노령연금으로 받는 7만원이 전부다. 자녀가 있는 탓에 영세민 혜택도 못 받아, 월세를 내고나면 2만원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한다. 점심을 근처 복지회관에서 해결하고, 애써 생활비를 아끼지만, 주위의 도움이 없이는 생활이 어려운 형편이다.

“작년에 동사무소에서 쌀 한 포대 받고, 이번에도 통장한테 부탁해서 연탄을 받은 거야.”

고생이야 당신보다 더할 사람이 드물텐데, 신 할머니는 자식들을 생각할 때면 늘 걱정과 안쓰러움이 앞선다. 일정치 못한 직장에, 자신처럼 월세로 살고 있는 자식들을 볼 때마다 모두 당신 탓인 것 같아 눈물이 앞선다.

“추운데 어떻게 지내느냐고 전화는 자주 오는데, 그때마다 돈이 없어 잘 가르치지 못한 게 한이 되고 가슴이 아파.”

신 할머니는 연탄 200장이면 두 달을 땔 수 있다고 했다. 자원봉사자들이 져다 나르는 연탄을 보며 “마음까지 푸근하다”고 함박웃음을 보였다.

“내가 줄 건 없고, 복들 많이 받아요.”

자원봉사자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신 할머니는 난로에 새연탄을 넣었다. 한 평 남짓한 작은 부엌이 벌써 훈훈해지는 듯 했다.

 

성탄특집 도표 / 전국 연탄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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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원의 사랑을 나눠주세요”

전국 연탄은행, 저소득 10만 가구에 사랑 배달한다

제 몸뚱이에 매겨진 가격은 500원입니다. 애들 과자 값도 안되죠.

저도 왕년엔 잘나가는 ‘귀하신 몸’이었습니다. 동짓날 어머니들은 저를 꺼뜨릴까봐 새벽녘에도 몇 번이고 저를 보러 오셨죠. 모두가 어렵던 시절, 명절 때 저만한 선물도 없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사명을 다한 뒤에는 동네 꼬마 녀석들의 발차기 놀이감이 되어 주었습니다. 빙판길에 미끄러지는 이들을 위하여서는 제 몸을 처절하게 내어 주기도 했지요.

그러나 어느 날인가부터 사람들은 저를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검은 재가 묻는다며, 냄새가 난다며, 관리가 힘들다며 외면했습니다. 결국 기름보일러와 도시가스가 저의 자리를 꿰차고 말았습니다.

그래요. 저의 이름은 ‘연탄’입니다. 수십 년 인간의 삶 중심에 섰던 제가 이제는 달동네에서나 만날 수 있는 희귀한 존재가 됐습니다.

이런 저에게 새 삶을 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그들은 저의 검은 얼굴만 봐도 옛 애인을 만난 듯 마냥 기뻐합니다. 그리고 제 몸이 상할까봐 두 손으로 조심조심 만져줍니다. 이들은 더 이상 저를 연탄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사랑’이라는 고귀한 단어를 붙여 줬습니다.

사랑의 연탄은행. 제가 새로운 삶을 찾은 곳입니다. 2002년 12월 원주에서 첫 모습을 드러낸 이후 지금은 전국 30곳에서 사랑을 배달하고 있습니다.

연탄은행은 차가운 동전이 오고가는 곳이 아닙니다. 이웃을 위해 따뜻한 마음을 저축하는 은행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습니다. 원주에서 시작할 때도 허기복 목사님과 교회 성도들이 중심이 됐죠. 30개 지부도 교회가 주축이 되어서 사랑을 배달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저를 ‘사랑의 메신저’로 바꿔 주셨습니다.

올해도 저는 사랑을 전달하러 떠납니다. 저의 사랑을 애타게 기다리고 계신 가정이 10만 가구나 됩니다. 이들에게는 단돈 500원인 제 몸뚱이가 그렇게 소중할 수 없습니다.

저는 오늘도 기다립니다. 당신의 따뜻한 손 기운을, 등줄기의 뜨거운 땀내음을. 그리고 아랫목에 둘러 앉아 웃음꽃을 피우는 이웃의 환한 미소를….

참, 제 모습 바뀐 거 아세요? 예전에는 구멍이 19개 이었죠. 그래서 구공탄이란 별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22개로 늘어났답니다. 구멍이 늘어난 만큼 화력도 세졌답니다. 저의 뜨거운 사랑, 한번 경험해보지 않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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