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재정난·주일학교 쇠락에 사명의식도 흔들
임시목사 신분 불안까지 겹쳐 ‘목회의 봄’ 멀기만

전북 김제에서 사역하는 백영현 목사는 전도사 시절 섬겼던 평사교회로 담임목사가 되어 돌아왔다. 전도사 시절만 하더라도 평사교회에는 일정 규모의 주일학교가 운영되고 있었고, 젊은 층도 형성되어있어서 농촌교회치고는 소망이 있는 교회로 꼽히던 바였다.

그러나 5년 사이에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갈수록 기울어가는 농업 말고는 할 일이 없는 주민들은 살 길을 찾아 도회지로 흩어져갔다. 교구 인구 자체가 줄면서 교인들 숫자도 크게 줄었다. 가끔 이사 오는 세대도 있지만 그마저도 대부분 여생을 정리하러 귀향한 고령자들.

도시교회에서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제자훈련도 의욕적으로 시도해보았다. 그러나 60대 이상 노인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훈련시킬 자원을 찾기란 막막했다. 때문에 제자훈련 첫 기수를 배출한지 한참이 되도록 후속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

“부임한지 몇 년 만에 유치부가 없어졌어요. 동네 자체에 아이들 울음소리가 사라진지 오래되었으니까요. 농촌교회가 부딪치는 현실을 요즘 들어 더욱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는 농촌교회 자체적으로 해결 방법이 없는 듯합니다.”

전남 고흥에서 9년째 사역 중인 윤규남 목사(풍양서부교회)는 지나온 세월들과 앞으로 지내야할 시간들이 쳇바퀴를 돌리는 것처럼 생각된다. 처음 부임할 당시 목회자 사례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어려웠던 교회를 열심히 부흥시켜 자립교회로 만들었다.

전도도 열심히 했고, 한글학교 등을 운영하며 지역주민과도 많이 가까워졌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자 지독히 발버둥을 쳐도 교회는 현상유지를 하는 것이 고작이다.

오히려 교회를 지탱해줄 일꾼들은 크게 줄어 이제는 무슨 새로운 사역을 펼치고 싶어도 일할 사람이 없어 포기해야 하는 지경이 됐다. 게다가 든든히 뒷받침을 해주었던 시무장로들도 대부분 정년을 앞두고 있는데, 아래 연령대에는 대신 세울만한 사람이 없다. 윤 목사는 머잖아 임시목사로 자신의 신분이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까지 지니게 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재정형편에 여유가 있는 평사교회나 풍양서부교회의 상황은 상당수 다른 농촌교회들에 비해 나은 편에 속한다. 충남 보령에서 사역하는 전광준 목사(빙도교회)는 교회의 재정능력이 사실상 상실된지 오래라고 고백한다.

10년 넘게 온갖 몸부림을 다해봤지만 줄어드는 교인수와 그에 비례해 나타나는 교회 재정감소를 막을 수는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전 목사는 동료 목회자 몇 명과 함께 약간의 소득이라도 얻어보고자 은행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한편으로는 나무에 그림을 새기는 서각기술을 배워 작품판매에 나서보고도 있다.

목회자가 목회에만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 전 목사에게는 적잖은 자괴감을 불러일으킨다. “주변 농촌교회 형편들이 거의 비슷합니다. 다른 목회자들 또한 어떻게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중입니다. 몇 년째 말만 무성한 교단의 최저생계비 제도는 대체 언제부터 시행되는 건지. 다들 답답해하고 있습니다.”

전남 해남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나타난다는 소식이다. 목회자들이 교회만 돌보기 어려울 정도로 살림살이가 어려워지자, 사모들이 손수 직업전선에 뛰어드는 현상이 마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윤건상 목사(해남 어란교회)는 “먹고 살기 위해, 혹은 자녀들 학비를 벌기 위해 복지시설 등에서 일하는 사모들이 적지 않습니다.

 만약에 이런 활동이 봉사차원에서 전개되었다면 교회의 위상을 높일 수 있었겠지만, 단순히 돈벌이를 위한 것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주민들 사이에 ‘교회도 별 것 아니구나’라는 인식이 퍼져나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라고 밝힌다.

전북 부안에서 사역하는 박용근 목사(옹중교회)는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해오는 일이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부임한지 11년 동안 교회규모는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애써 키워놓은 일꾼들이나 그나마 형편이 괜찮았던 교우들은 기회가 닿는대로 농촌을 등지고 떠나갔다.

가난한 영세농민과 장애인들만 교회에 남은 상황에서 재정 압박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난방비라도 아껴야 했다. 덕택에 박 목사는 손수 땔감을 얻기 위해 산에 오르는 일을 반복한다. 

주일학교의 쇠락과 부재는 농촌교회들이 피부로 느끼는 대표적 위기의식 중 하나이다. 충청노회의 경우는 매년 열어오던 주일학교 교사 강습회를 폐지해야 하지 않느냐는 조심스런 의견까지 나올 정도이다. 서천 원동교회를 시무하는 허영준 목사는 답답한 심정을 고백한다.

“한창 때는 50명까지 출석하던 중고등부는 이미 문을 닫았고, 80여명을 헤아리던 어린이주일학교에도 이제 7~8명 정도만 출석할 뿐입니다. 그나마 결손가정 아이들이 태반이지요. 교사를 맡아줄 자원도 더 이상 없고요. 18년간 목회생활이 허무하게 느껴질 지경입니다.”

커나가는 자녀들 교육문제도 농촌 목회자들의 마음을 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13년째 농촌사역에 임하고 있는 박종환 목사(연곡반석교회)는 “평생을 농촌목회에 헌신하겠다고 마음먹고 열심히 해왔지만, 이제 대학생이 된 두 자녀를 생각하면 솔직히 도시로 임지를 옮기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된다”고 털어놓는다.

취재 중 만난 대부분의 농촌목회자들이 가장 큰 고뇌의 원인으로 자녀교육 문제를 꼽았다. 한 목회자는 교단 차원에서 농어촌 목회자들의 자녀교육비 대책만 세워주더라도, 많은 농촌사역자들이 안심하고 목회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부환경도 이처럼 힘든데 최근 들어 또 다른 문제가 농촌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바로 임시목사들의 신분과 권리에 대해 가혹할 정도로 ‘규칙’만을 내세우며 몰아 부치는 총회의 냉정한 분위기이다.

오랫동안 전남 함평에서 목회하다 최근 서울로 임지를 옮긴 유구의 목사는 “임시목사 문제는 그렇지 않아도 기가 죽어있는 농어촌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에게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빼앗은 격”이라며 시급한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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